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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대통령의 말에 대하여 [편집국에서]

등록 2023-02-22 18:31수정 2023-02-23 02:39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5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제13차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5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제13차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김진철 | 경제산업부장

급발진, 급선회, 공회전. 요새 정부가 돌아가는 모습을 이보다 잘 표현하는 말은 없다. 반도체 기업 세액공제를 추가하고 은행과 통신사의 독과점을 해소하겠다는 ‘정책’이 대표적이다. 윤석열 대통령 입에서 시작된 이런 방안이 어떻게 입안되어 진행되고 있는지 살펴보면 얼핏 일사불란한 듯하지만 실은 무질서와 혼돈 그 자체다.

대체로 정책에는 흐름이라는 게 있어서 정권이 큰 틀에서 지닌 정치철학에 비춰 가늠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장관들조차 우왕좌왕 손발이 맞지 않고, 정부 부처 실무진도 해당 정책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게 취재기자들의 일치된 목격담이다. 정책 문외한인 누군가가 어설프게 배후조종하는 게 아니냐는 허탈한 농담들이 오가기도 하는데 설마 그렇기야 하겠는가.

시원한 대목도 없지 않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가려운 데를 긁어주니 후련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날 좋을 때 우산 빌려줬다가 비가 쏟아지면 급하게 거둬들이는 은행이나, 비싼지 아닌지 가늠하기도 어려운 복잡한 요금 체계로 소비자들을 시험에 들게 하는 통신사들이나, 과점 체제의 폐해가 하루이틀 일은 아니다. 금융과 통신이 모두 공공재라는 말은 기이하지만, 공공성에 기반한다는 인식은 적절하다.

카카오 먹통 사태가 빚어지자 플랫폼 독과점까지 거론하며 국가가 직접 나서겠다고 대통령이 장담했으니 시민들은 그나마 안심하고 해당 기업은 더욱 긴박하게 수습에 나선 게 사실이다. 노조에 대한 대통령 발언도 개운하게 여기는 이들이 왜 없지 않겠는가. 노조의 정당한 파업조차,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3권 행사마저 ‘불법’이나 ‘폭력’이라는 수식어와 한 덩어리로 여기는 데 익숙한 이 사회에서 말이다.

복잡한 문제를 간단하게 표현하는 것은 능력이지만, 그렇다고 복잡한 문제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복잡다단한 구조를 제대로 파헤쳐 보지 못하면 문제는 더욱 어렵게 꼬이기 마련이다. 구조적 문제를 세밀하게 따져볼 의지와 능력이 이 정부에 있는지 모르겠다. 특히나 국가 최고지도자의 정돈되지 않은 말이 남길 후유증은 매우 심각할 수밖에 없다.

힘 좋고 머리 좋은 기업들은 적당히 맞춰주며 위기를 넘어갈 것이다. 대출금리와 통신요금 조금 낮춰주고 이른바 서민·취약계층용 상품 몇개 내밀면 그럴듯해 보인다. 노조에 대해선 ‘때려잡기’로 일관성을 보여줄 공산이 커 보인다. 그러나 적확한 진단 없이 대충 넘겨짚고 만병통치약이라고 내미는 이는 의사가 아니라 돌팔이다. 마음의 평안보다 불안 조성에 힘쓰는 것은 종교가 아니라 사이비가 하는 일이다.

대통령의 정제되지 않은 말 몇마디가 정교한 정책 수립과 시행으로 이어지기는 어렵다. 관료들은 말에 담긴 의중을 파악하고 눈치 보느라 분주할 뿐이다. 국무총리 이하 장관들조차 대통령 말을 쓸어 담거나 주워 삼키느라 바쁘다. 대통령실 핵심들이라고 대통령 말이 어디서 나왔는지 제대로 아는 것 같지도 않다. 옳고 그름이 명확한 사안은 줄어드는데,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체는 들여다보이지 않는 사안들만 늘어난다.

리더십을 수행하는 데 말은 대단히 중요한 도구다. 다만 너무 많은 말도, 너무 부족한 말도 각각의 문제들을 일으키곤 한다. 적당한 선이 어디쯤일지 자신 있게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수는 없다. 다만 대통령 지지율이 30%대에서 오르락내리락할 때, 대통령 말이 많아지는 것은 사실이다. 정치적 효능감을 탓할 일은 아니지만 경제는 좀 다르다. 대통령이 신봉하는 ‘자유’ 시장은 잘못된 말에 쉽게 오염되고 오작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한마디로, 위험하다.

나이가 들고 지위가 높아지면 말이 많아진다고 한다. 자신의 통제력을 확인하려는 심리 기제가 작동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외로워도 말이 많아진다. 대화 상대가 없으니 틈만 나면 말하고 싶어진다. 혼자 떠들면 더 외로워지고 말은 더 늘어난다. 배경도 맥락도 없이 대장 혼자 떠드는 것을 소통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해가 나고 안개가 걷히면 말의 근원들이 드러날 것이다. 당장의 말 한마디의 효과보다 3년 뒤도 생각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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