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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챗GPT에 인류가 통행세를? [장석준의 그래도 진보정치]

등록 2023-02-23 18:32수정 2023-02-24 02:06

한 사용자가 인공지능 챗봇 ‘챗지피티’와 대화하기 위해 글을 입력하고 있다. 다름슈타트/dpa 연합뉴스
한 사용자가 인공지능 챗봇 ‘챗지피티’와 대화하기 위해 글을 입력하고 있다. 다름슈타트/dpa 연합뉴스

장석준 | 출판&연구집단 산현재 기획위원

팬데믹에 이어 요즘 우리는 또 다른 세계사적 시간을 살고 있다. 작년 11월에 서비스를 시작한 인공지능 챗지피티(GPT)의 월 이용자 수가 두 달 만에 1억 명을 넘어섰다. 더불어 여러 우려도 들린다. 기존 교육 시스템 붕괴의 걱정부터 기술 발전이 이미 특이점을 지난 것 아니냐는 호들갑까지 쟁점은 참으로 다양하다.

하지만 갖가지 의혹에도 불구하고 기술 발전 자체를 악으로 볼 이유는 없다. 챗지피티와 마주한 식자들의 심정은 어쩌면 경전을 통째로 암기하던 사제들이 필사본 서적을 처음 봤을 때의 혼란 혹은 처음 금속활자 인쇄기 앞에 선 필경사들의 충격과 같은 것일지 모른다. 그때마다 인류는 어쨌든 일정한 퇴보를 상쇄할 만큼은 전진했다.

다만 대다수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지만 심각한 물음을 던지는 위험 요소들이 분명히 있다. 첫째는 대화형 인공지능의 화려한 얼굴 이면에 수많은 인간의 미세(micro)노동이 숨어 있다는 사실이다. 인공지능의 학습 자료는 인터넷이며, 따라서 학습 알고리즘을 아무리 잘 짜더라도 아직까지는 인터넷의 숱한 유해 게시물을 걸러내는 작업이 병행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일을 고학력이지만 일자리가 없는 남반구 빈국이나 난민촌의 노동자들이 푼돈을 받으며 떠맡는다. 영국의 노동연구자 필 존스는 <노동자 없는 노동>(김고명 옮김)에서 이를 ‘미세노동’이라 부르며, 인공지능 발전이 이렇게 일자리라 부르기 힘든 일자리를 양산하리라 전망한다. 이것이 챗지피티 너머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어두운 현실이다.

둘째는 챗지피티 같은 서비스가 인류의 공유자산에 울타리를 두르고 지대수익을 뽑아내는 수단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챗지피티는 대중적인 수준에서는 주로 기존 검색 엔진의 보완재나 대체재로 활용될 것이다. 검색 엔진은 네트워크에 올라온 정보들이라는 공유자산에 접근하기 위한 도구다. 그런데 챗지피티는 이런 서비스를 수행하면서 매월 정액의 요금을 받겠다고 한다.

구글을 비롯한 기존 검색 엔진은 서비스 이용자에게 요금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이조차도 실은 커다란 문제를 안고 있다. 구글은 무료 서비스인 대신에 대부분의 수익을 광고에 의존하며, 이 과정에서 일정하게 이용자 개인 기록을 활용한다. 이용자의 눈에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인류가 생산해낸 지식이라는 공유자산에 접근할 통로 하나를 만들어놓고 어떤 방식으로든 통행세를 받는 셈이다.

챗지피티의 대중화는 이런 ‘보이지 않는’ 통행세를 더욱 노골적이고 뻔뻔한 형태로 전환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보다 간편한 정보 접근을 위해 우리는 이제 인터넷 바닷속의 인간 지성도 아니고 그렇다고 근대인들에게 낯익은 저 창작자나 저자들도 아닌 ‘편집자’라는 이름의 문지기 로봇에게 돈을 바쳐야 한다.

기술 발전을 거부하지 않으면서도 이런 근본 문제를 해결할 길은 소유권과 통제권의 전환에 있다. 마땅히 사적 소유의 대상이어선 안 될 것을 제 자리에 돌려놓으면 된다. 필 존스의 동료인 또 다른 연구자 제임스 멀둔은 아직 챗지피티가 공개되기 전에 나온 저작 <플랫폼 사회주의>에서 구글 같은 검색 엔진을 사기업이 아닌 사회적 소유 형태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다고 특정 국가가 국유화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국제연합 산하의 초국적 기구를 만들어 이 기구의 관리와 지원을 받는 민간 재단으로 전환할 수 있다. 위키피디아를 모델로 하는 비영리 재단으로 말이다.

황당하게 들리는가? 그러나 이미 테크놀로지는 몇 달 전에 황당하게 들렸을 법한 일들을 속속 실현하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런 기술 발전 속도에 사회 제도 전환의 속도가 미치지 못하는 탓에 인간 세상은 점점 더 황당해지고 있다. 기술 발전에 반대하지 않는다면 이제 우리의 선택지는 하나밖에 없다. 그것은 점점 더 황당해지는 자본주의 질서를 넘어서는 과감한 전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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