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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모두의 밭, 건강하고 아름다운 생산공원 [배정한의 토포필리아]

등록 2023-02-26 18:07수정 2023-02-27 02:35

뭐하농의 심장 공간인 팜가든. 동반 식물을 생태적으로 경작하는 생산공원이다. 뭐하농 제공
뭐하농의 심장 공간인 팜가든. 동반 식물을 생태적으로 경작하는 생산공원이다. 뭐하농 제공

배정한 | 서울대 조경학과 교수·<환경과조경> 편집주간

아까운데. 6년 전, 대학원을 졸업하고 연구원에 근무하던 제자가 귀농을 결심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든 첫 느낌이다. 공감과 응원의 박수를 보냈지만 내심 안타까웠다.

그는 조경가로 활동하던 남편과 함께 충북 괴산군 감물면으로 내려가 유기농 표고버섯 농사를 시작했다. 낯선 농사일이 조금씩 익숙해졌다. 버섯 품질에 대한 호평도 얻었다. 서울의 고된 일상과는 다른 기쁨과 즐거움이 찾아왔다. 하지만 너희가 아깝다는 지인들의 반응은 달라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귀농 3년을 넘어선 2020년, 청년농부 여섯명이 힘을 합쳐 농업문화플랫폼 ‘뭐하농’을 창업했다. 농사의 가치와 농촌 라이프스타일의 매력을 알리고 나누기 위해.

농업 문화 플랫폼 ‘뭐하농’의 여섯 농부. 왼쪽부터 정찬묵, 김진민, 김지영, 임채용, 이지현(대표), 한승욱(이사). 뭐하농 제공
농업 문화 플랫폼 ‘뭐하농’의 여섯 농부. 왼쪽부터 정찬묵, 김진민, 김지영, 임채용, 이지현(대표), 한승욱(이사). 뭐하농 제공

겨울 끝자락의 고즈넉한 풍경 속에 새봄의 활력이 꿈틀대는 충북 괴산 뭐하농에 다녀왔다. ‘뭐 하는 농부들’을 뜻하는 뭐하농은 농업회사법인 명칭이지만, 팜가든, 채소디저트 카페, 로컬 디자인 편집숍, 농부도서관, 공유창작소, 공유주방을 아우르는 복합문화공간의 이름이기도 하다. 코로나 시대를 통과하며 뭐하농은 농업의 가치를 교육과 문화 콘텐츠로 확장하기 위해 정말 뭐든지 다 했다. 카페와 공간운영, 귀농·귀촌교육, 농촌축제 기획, 농업문화프로그램 컨설팅, 굿즈 디자인과 제작, 폐기된 과일을 활용한 비누 생산까지 다양한 사업을 펼쳤다.

행정안전부의 ‘청년마을’ 사업에 선정돼 두달 살기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예비 농부들을 길러내는 성과도 거뒀다. 종횡무진 펼친 활동의 중심에는 “함께 살아가는 일에 가치를 둔다. 즐겁게 사는 사람들이 만드는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지향한다. 농부의 영역을 확장한다. 사람과 자연을 건강하게 하는 일에 힘을 쏟는다”는 원칙이 있었다.

‘뭐하농하우스’는 충북 괴산의 제철 채소만 쓰는 디저트 카페이자 농업문화공원이다. 뭐하농 제공
‘뭐하농하우스’는 충북 괴산의 제철 채소만 쓰는 디저트 카페이자 농업문화공원이다. 뭐하농 제공

언론과 인스타그램을 통해 널리 알려진 시그니처 공간은 ‘뭐하농하우스’다. 괴산의 농부들이 기른 제철 채소와 과일만 쓰는 디저트 카페로 유명해졌지만, 사실 카페보다는 공원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ㄷ’자로 지은 투명한 건물 사이로 바깥 들판을 그대로 들여왔다. 건물과 자연의 경계가 흐릿한 이 공간은 여러 세대가 함께하는 지역 커뮤니티의 사랑방이자 청년농부들의 교실이며, 파티와 공연이 열리는 소극장이자 도시 아이들의 일일 놀이터이기도 한 멀티플레이어 공원이다. 내가 방문한 날은 몹시 추웠지만 예리한 겨울 햇살이 넓은 천창으로 쏟아져 꼭 작은 식물원 온실에 온 것 같았다.

뭐하농 농부들은 “뭐하농의 심장은 팜가든”이라고 말한다. 뭐하농 단지 한가운데 조성한 팜가든은 자연순환 농법을 기반으로 한 정원형 농장이다. 채소, 허브, 꽃을 함께 심어 생태적으로 상생하면서 아름다운 경관도 연출하는 식재 디자인 모듈의 실험장이기도 하다. ‘동반 작물’을 심기 때문에 농약과 화학비료를 쓰지 않아도 된다. 예를 들어 “비트와 루꼴라를 함께 심으면 루꼴라의 매운 향기가 달콤한 비트 잎을 감춰줘 야생동물로부터 보호받는다. 잎의 생장 시기와 속도가 다르고 뿌리의 크기도 달라 서로 생장에 방해되지 않는다. 비트 잎의 망간과 철 성분이 거름 역할을 해 루꼴라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고 한다. “바질과 토마토를 같이 심으면 바질의 향이 토마토를 괴롭히는 벌레를 쫓고, 바질 향에 지지 않으려고 토마토는 당도를 높인다. 바질은 잉여 수분을 잘 흡수해 비에 약한 토마토가 잘 자랄 수 있다”고 한다.

한해의 새로운 경작과 생산을 준비하고 있는 겨울 팜가든을 거닐며 정원의 원형적 의미를 다시 떠올렸다. <세컨 네이처>의 저자 마이클 폴란이 말하듯, 정원은 문화적 자연이다. 정원을 가꾼다는 건 자연을 정복하거나 신비화하는 행위가 아니라 노동을 통해 문화를 경작하는 활동이다. 정원은 자연 소품의 장식장이 아니다. 생태적 순환과 상생을 바탕으로 식물을 경작하는 뭐하농의 팜가든에는 생산경관의 미학이 짙게 배어 있다.

뭐하농의 공간 구성 다이어그램. 한가운데 팜가든은 올봄부터 ‘모두의 밭’으로 전환된다. 뭐하농 제공
뭐하농의 공간 구성 다이어그램. 한가운데 팜가든은 올봄부터 ‘모두의 밭’으로 전환된다. 뭐하농 제공

뭐하농 시즌 2의 목표는 “모든 이들이 ‘간지나는 농부’로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한다. 도시의 회사원도 일상의 어느 때엔 즐거운 농부적 삶을 누릴 수 있는 장을 마련해준다는 계획이다. 우선 올봄부터 팜가든을 1천평 규모로 확장해 ‘모두의 밭’으로 전환하고, 언제든 와서 함께 경작하고 수확할 수 있는 커뮤니티를 운영한다고 한다. 밭에 모여 신나게 땀 흘리며 놀아보자는 것. 나는 모두의 밭을 건강하고 아름다운 생산공원이라고 부르고 싶다. 참, 괴산을 넘어 전국을 무대로 멋진 농부의 삶을 알리고 있는 그의 이름은 이지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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