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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소멸지수 말고 희망지수

등록 2023-02-26 18:07수정 2023-02-27 02:35

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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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말고] 권영란 | 진주 <지역쓰담> 대표

청년농부가 장터에서 떡을 돌렸다. 아이 백일떡이라 했다. 세상에, 산청군은 출생률이 0.9가 채 되지 않는 지역인데…. 장터에 모여 있던 주민들은 다 같이 축하노래를 불렀고 아이의 건강을 빌며 덕담을 나눴다. 어른들이 야단법석을 떨어도 주인공인 아이는 유모차에서 잘도 잤다. 벌써 몇달 전 일인데 잊히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산청 지리산 목화장터’니까 있을법한 일이다.

목화장터는 경남 산청군 신안면 소재지 공원에서 2주일마다 열리는 주민장터다. 직접 기른 농산물이나 직접 만든 수공예품, 집에서 쓰지 않는 여러 물품을 가지고 나와서 판매하거나 물물교환, 무료나눔 하는 자율적인 장터다. 3500명이 회원인 온라인 채널에는 생산 정보나 판매 등 활발한 소통이 이뤄져 인근 진주 함양 사천 하동 구례 주민들이 판매자로, 구매자로 참여한다. 산청군 주민들이 사부작사부작 시작한 움직임이 8년 동안 이어지면서 관계망으로 확대됐다.

신안면은 참 흥미로운 마을이다. 인구는 5700명쯤. 면 소재지인 하정리는 ‘원지’라고 불린다. 전국 어디서나 볼만한 전형적인 면소재지로 보수색 강한 마을이었다. 문화시설은 전무했고 유입인구보다 주거시설은 부족했고 식당 등 상업지가 대부분인 듯했다. 오랫동안 드나들었지만 특별히 주목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심상찮았다. 다양한 귀농·귀촌인 모임이 생기더니 30대 이주청년들의 소통과 협업도 눈에 띈다. 동네 카페나 도서관에 주민들이 붐빈다. 정치색을 드러내기보다는 여론을 모으고 공동체를 회복하고 지자체 정책과 사업에도 관심을 갖고 정보를 공유한다. 크고 작은 마을사업을 하지만 강제성이 없다. 몇사람이 나서서 봉사할 뿐이다. ‘느슨한 연대’라 했다. 공동체가 별 탈 없이 유지되는 비결이라고도 했다.

마을은 구석구석 바뀌었다.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자연·지리적인 환경에 문화·복지 인프라가 구축됐다. 경호강과 양천강 두물머리를 따라 산책로가 조성되고 지자체가 운영하는 작은영화관과 실내수영장이 생겼고 산청지리산도서관이 들어섰다. 대형마트만이 아니라 몇개의 병원과 한의원, 치과가 줄줄이 들어섰다. 골목골목에는 제법 이름난 맛집이나 카페가 생겼다. 버스터미널이 새로 정비됐고 대도시, 인근 지역과의 접근성은 훨씬 좋아졌다. 지난 10년 사이 ‘농촌도시’가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안면은 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된다.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지난 2021년 경남의 소멸위험지수는 주의 단계에 해당하는 0.56으로 광역지자체 중 여섯번째로 높게 나타났다. 산청군은 경남 18개 시군 중 소멸위험지수가 0.5 미만으로 소멸위험지역이다. 1972년 인구 10만명이 넘었지만 지금 인구 3만4000여명에 65세 이상 고령층 비율이 40% 가깝다. 1970년대 이촌향도 인구는 돌아오지 않았다. 정말 이러다간 사람이 살지 않는 지역이 되겠다 싶다.

하지만 신안면과 주민들을 살펴보면 여기가 소멸위험지역인가 싶다. 도서관 운영을 위해 매주 방문하고 대출하고 희망도서를 신청하고, 작은영화관이 휴관하지 않도록 공동체 상영을 기획하고, 마을버스 운행 중단을 막기 위해 한번이라도 더 마을버스를 이용하고…. 누가 강제하지 않아도 지역을 지키려는 의지를 내고 있다. 소멸위험지역이 아니라 주민들에게는 일터이며 삶터였다.

지방소멸을 사회 공론화하는 과정은 무책임할 정도로 일방적이다. 해당 지역 주민들이 가질 불안감은 어떨까, 오히려 ‘탈지역’을 부추기는 건 아닐까. 몇개의 지표로 도출해내는 소멸위험지수에는 지역 인프라, 주민공동체 등 지역의 삶이 빠져 있다. 소멸위험지수보다는 각 지역의 ‘발전지수’ ‘희망지수’를 공론화하는 게 서울수도권 집중화를 늦추는 길이 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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