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동구 공무원이 행당동에 있는 한 반지하 주택 출입문 차수판을 점검하고 있다. 성동구 제공
[한겨레 프리즘] 김경락 | 전국팀장
지난 22일 인천 남동구 한 빌라에서 60대 남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생계·의료급여를 받으며 홀로 사는 이였다. 가난한 이들의 고독사야 새삼스러운 소식이 아니었지만
그의 죽음이 확인된 과정이 눈길을 끌었다. 그와 연락을 시도했으나 통화할 수 없었던 행정복지센터 직원들이 경찰을 불러 출입문을 따고 들어갔고, 그 덕에 오랜 기간 유폐될 뻔한 그의 죽음은 세상 밖으로 알려졌다.
남동구(구청장 박종효·국민의힘)는 지난달 30일부터 청장년 1인 가구 380명에 대한 특별조사를 진행하던 터였다. 당사자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안부를 확인했으며, 전화를 계속 받지 않으면 통장 등의 도움을 받아 방문조사에 나섰다. 남동구의 이런 발품은 그에게 생의 길을 열어주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했으나, 삶을 마무리한 뒤 인간의 존엄이 훼손되는 상황은 막았다.
서울에서는 최근 성동구(구청장 정원오·더불어민주당)가 관내 반지하 주택 등 취약 주거시설 전수조사를 완료했다.
<한겨레> 보도로 이 사실이 알려진 뒤 여러 매체에서 이를 집중 조명했다. 지난해 여름 수도권에 큰 수해가 발생했을 때 안타까운 사연이 적지 않았다. 입 달린 사람들은 모두 서울시의 미흡한 대응을 성토하거나 이런저런 대안을 떠들어댈 때 성동구는 전수조사 방침을 세우고 용역비를 책정했으며 조사를 맡을 전문가 집단을 물색했다. 3개월 만에 3823호를 모두 살폈고 그 과정에서 수해 취약점 1679건을 확인했다. 성동구는 올여름이 오기 전에 확인된 문제점들을 해결하기로 했다.
성동구 소식이 화제를 모은 데는 서울시가 못 한 작업을 일개 자치구가 해냈다는 시선도 작용했을 것이다. 서울시는 지난해 수해 직후 반지하 주택 전수조사 방침을 언론에 알렸다가 불과 두달 만에 예산 등 현실적 어려움을 들어 중도 포기했다.
물론 가구 수 등 조사 범위가 크게 다르기에 서울시와 성동구를 똑같은 저울대에 놓고 비교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수해 뒤 재발 방지를 위해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이를 묵묵히 추진해나간 성동구에 사람들의 마음이 더 가는 건 자연스럽다.
파주시는 지난달 31일 전국에서 가장 먼저 442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가구당 20만원의 지원금 지원을 발표했다. 파주시 제공
발품 팔아 박수받는 지방자치단체가 있는가 하면 돈으로 마음을 사려는 곳도 있다. 요즘 에너지 비용이 치솟자 민주당 소속 단체장이 있는 경기도 기초지자체에선
난방비 일괄 지급을 추진하고 있다. 파주시와 광명시는 가구당 각각 20만원, 10만원을, 안양시와 안성시는 1인당 각각 5만원, 10만원을 준다. 화성시도 가구당 일괄 지급을 검토 중이다.
주민들의 난방비 부담을 덜어주려는 단체장의 따뜻한 마음의 발로인지 모르겠으나, 어느 지자체도 지급 기준이 왜 가구 혹은 개인으로 나뉘는지, 금액은 5만원에서 20만원까지 춤추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김경일 파주시장은 <문화방송>(MBC) 라디오에 나와 “10만원 주려고 했는데 더 주자는 의견도 있어서 20만원으로 정했다” “난방비 폭탄은 계층의 문제가 아니다. 모든 국민이, 모든 가구가 고통을 받고 있는 재난 같은 상황”이라고 말한다.
같은 외부 충격에도 개인이나 가구별로 다른 고통의 크기나 지급 효과는 그들에겐 관심권 밖이다. 소득·자산이나 가구원 수, 거주 형태와 치솟은 에너지 비용의 상관관계는 알 수 없다. ‘보편적 난방비 지급’이란 깃발만 나부낄 뿐이다. 실제 라디오 진행자가 “없는 분들은 말 그대로 폭탄을 맞아 골절상 입고 있는 데 반해 돈 많은 사람은 따끔한 정도에 그치는 것 아닌가”라고 묻자 김 시장은 “(그런 시각은) 계층을 갈라치는 것밖에 안 된다” “보편적 복지가 맞다”고 답한다.
사회안전망은 기본적으로 예산과 제도로 구축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성긴 안전망을 좀 더 촘촘하게 만드는 건 현장 가까이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손과 발이다. 이를 담당하는 게 기초지자체인 시·군이다. 주민의 실제 삶과 맞닿은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일 말이다. 그렇기에 발품 팔아가며 바닥 상황을 파악하고 문제를 해결해가려는 성동구와 가만히 앉아서 선심 쓰듯 ‘돈 단추’ 누르는 파주시는 그 격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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