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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새 정부 이름 ‘참여정부’ 제안자는 삼성 아니라 나였다”

등록 2023-02-28 11:00수정 2023-04-05 03:43

[길을 찾아서] 참여정부 천일야화 4화-대통령직 인수위(하)

2003년 2월10일

당선자 주재 전체회의 때

원안은 ‘국민참여정부’ 올라왔으나

내가 줄이자고 했고,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한때 참여정부를 가리켜

‘토론공화국’ ‘위원회공화국’ 등등

비아냥거리는 풍조가 있었는데,

그것은 실상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위원회는 실제로 많은 일을 했다.

2003년 2월10일 노무현(오른쪽 둘째) 당선자가 제5차 인수위 전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이정우(왼쪽 앉은 이 중 옆모습) 위원의 제안으로 ‘참여정부’ 이름을 정했고 ‘3대 국정목표’도 선정했다. 사진 국회사진기자단
2003년 2월10일 노무현(오른쪽 둘째) 당선자가 제5차 인수위 전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이정우(왼쪽 앉은 이 중 옆모습) 위원의 제안으로 ‘참여정부’ 이름을 정했고 ‘3대 국정목표’도 선정했다. 사진 국회사진기자단
제16대 대통령직 인수위 안에서는 당선자의 신념에 맞게 개혁을 주장하는 학자들의 목소리가 대세였다. 재벌개혁, 민영화, 민영화한 공기업의 지배구조 등이 자주 화제에 올랐다. 전기, 전화, 철도, 수도, 가스 등 소위 망(네트워크)산업의 민영화 문제가 쟁점이 됐다. 국민의 정부 때는 국제통화기금(IMF)과 미국의 압력 속에 민영화가 적극 추진되었다. 망산업 민영화는 1990년대까지는 세계적 유행이었으나 무리한 민영화 과정에서 숱한 문제점이 발생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정전 사태, 영국의 철도 충돌사고 등이 대표적이다. 그 뒤 민영화에 대한 광범위한 반성이 일어났다. 인수위 경제1분과의 정태인·임원혁 박사는 망산업 민영화는 옳지 않다는 결론을 당선자에게 보고했고, 민영화를 더 이상 추진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다.

또 하나 중요한 문제가 케이티(KT), 국민은행, 한전, 포스코 등 민영화한 공기업 문제였다. 이런 회사는 공기업도 아니고 민간기업도 아닌 어중간한 성격인데, 기업지배구조에 문제가 많았다. 2003년 1월13일(월) 오후 당선자 주재 아래 경제1분과 위원 4명과 김효석 의원, 정세균 의원, 그리고 맥킨지의 도미닉 바튼이 참석해 한국경제 진단 토론을 했다. 김효석 의원은 지배주주가 없는 민영화 공기업 임원들의 ‘참호 구축’ 문제를 지적했다. 몇몇 개인이 ‘참호’를 구축하듯, 기업을 사유화해서 배타적 지배구조를 형성하는 문제다. 특히 그 무렵 포스코 회장의 임기 만료와 맞물리면서 후임 회장 인선을 놓고 긴장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인수위가 학자 중심으로 짜이다 보니 온갖 뒷말이 무성했다. 당선자는 관료들과 인수위의 협력을 강조했다. 재경부 어느 고위 공무원은 인수위에 학자들이 포진한 데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렇게 호기롭게 답해 화제가 됐다. “비록 지금은 학자들 세상처럼 보이지만 반년만 지나면 다시 재경부 세상이 될 겁니다.” 과거 정부에서는 맞는 말이었을 게다. 늘 그랬으니까. 그러나 이번 대통령은 달랐다. ‘학자군주’ 노무현 정부에서 학자들의 국정참여는 반년보다 훨씬 길었다.

2003년 12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한국상회 창립 10돌’ 기념 교류회에 참석한 박용성(단상 앉은 이 왼쪽 둘째)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참여정부는 나토공화국' 발언을 해 파문이 일었다. <한겨레> 자료사진
2003년 12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한국상회 창립 10돌’ 기념 교류회에 참석한 박용성(단상 앉은 이 왼쪽 둘째)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참여정부는 나토공화국' 발언을 해 파문이 일었다. <한겨레> 자료사진
2003년 1월14일(화) 회의에서 당선자는 토론문화를 강조하면서 한국을 ‘토론공화국’으로 만들자고 말했다. ‘토론공화국’이라는 말이 자주 언론에 오르내리자 2003년 12월 상공회의소 회장인 두산그룹 박용성 회장이 참여정부를 ‘나토(NATO)공화국’이라고 공개적으로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나토는 ‘노 액션 토크 온리’(No Action Talk Only)의 약자다. 행동은 하지 않고 말만 무성하다는 뜻이다. 재치있는 조어이긴 한데, 글쎄요? 동의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참여정부는 말만 한 게 아니고 일도 많이 했으니까. 게다가 과거 독재 시절을 생각해보라. 재벌 총수가 말 한마디만 잘못해도 혼나고 청와대 회의에 지각했다고 그룹이 해체되는 운명을 맞았다고 하던 그때 그 시절을 생각하면 참여정부는 신사였다.

인수위는 동북아시대, 균형발전, 정부혁신 등 12대 국정과제를 선정했다. 제목만 정한 것이 아니고 내용까지 채운 보고서를 만드는 것이 인수위원들의 주요 업무였다. 그 작업을 위해 학자들을 기용한 것이다. 2003년 2월25일 참여정부 출범 직후 국정과제를 추진할 주체로 대통령 산하에 12대 국정과제위원회가 발족해서 다수 국정과제를 실행에 옮겼다. 참여정부의 업적 중 상당수는 12개 위원회의 작품이다. 한때 참여정부를 가리켜 ‘위원회공화국’이라고 비아냥거리는 풍조가 있었는데, 그것은 실상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위원회는 실제로 많은 일을 했다.

그밖에 정부 각 부처의 업무보고를 받고 비판과 개선책을 제시하는 것도 인수위의 중요 업무였다. 그리고 국민참여 방식으로 장관 후보들을 뽑고 토론을 통해 그 범위를 좁혀 당선자에게 소수의 최종후보를 추천하는 것도 인수위원들의 할 일이었다. 시기적으로 보면 2003년 인수위 초기는 각 부처 업무보고가 중심이었고, 1월 하순에는 12대 국정과제 확정과 보고서 작성에 주력했고, 2월에 들어서는 인사 추천이 주된 업무였다고 할 수 있다. 세 개의 과정에 다수의 외부 학자, 전문가를 초빙해 많은 이야기를 듣고 의견을 수렴했다. 학자들의 의견을 경청하는 인수위였다.

2003년 2월7일치 <조선일보>에 실린 ‘인수위 25시’ 기사의 삽화. 이정우 위원이 결혼한 딸 부부와 함께 자는 것처럼 잘못 묘사한 ‘딸집’ 그림(가운데)으로 ‘정정보도’ 소동을 벌였다. 이정우 교수 제공
2003년 2월7일치 <조선일보>에 실린 ‘인수위 25시’ 기사의 삽화. 이정우 위원이 결혼한 딸 부부와 함께 자는 것처럼 잘못 묘사한 ‘딸집’ 그림(가운데)으로 ‘정정보도’ 소동을 벌였다. 이정우 교수 제공
노무현 정부의 명칭 논의가 2월10일(월) 아침 제5차 당선자 주재 전체회의에서 있었다. 국민 공모를 거쳐 원안이 ‘국민참여정부'라고 올라왔는데 나는 반대했다. 첫째, 이름이 너무 길어 부르기 불편하고, 둘째 국민의 정부와 혼동을 일으킬 우려가 있다. 줄여서 ‘참여정부’로 하자고 내가 제안했더니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김용철 변호사의 책 <삼성을 생각한다>에서 ‘참여정부’라는 명칭을 삼성이 정했다고 하는 주장은 옳지 않다. 그리고 이날 회의에서 참여정부의 3대 국정목표를 토론해서 정했다. 국민과 함께하는 민주주의, 더불어 사는 균형발전사회,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시대가 그것이다.

지역에서 올라온 인수위원들이 많다 보니 이들의 서울 생활이 더러 가십 기사로 나기도 했다. 나는 인수위 숙소인 프레지던트호텔에 주로 묵었지만 가끔은 큰딸 집에 가서 잘 때도 있었다. <조선일보> 기자가 시집간 딸로 오해를 해서 내가 딸·사위와 한방에서 자는 삽화를 신문에 실었다. 사촌누나가 전화를 했다. 딸 시집보내면서 연락도 안 해 섭섭하다고. 시집은커녕 대학생 딸의 원룸에 가서 잔 것인데, 만화까지 그려놓아 남의 집 혼삿길 막을 뻔한 오보였다. <조선일보>는 곧 사과하고 정정했다.

2003년 2월20일 노무현 당선자가 대구 지하철 중앙로역 방화참사 현장을 찾아 헬맷을 쓴 채 확인하고 있다. 노무현사료관 제공
2003년 2월20일 노무현 당선자가 대구 지하철 중앙로역 방화참사 현장을 찾아 헬맷을 쓴 채 확인하고 있다. 노무현사료관 제공

2003년 2월20일 대구 지하철 방화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찾은 노무현 당선자가 유가족을 위로하고 있다. 연합뉴스
2003년 2월20일 대구 지하철 방화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찾은 노무현 당선자가 유가족을 위로하고 있다. 연합뉴스
2003년 2월21일 16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마지막 전체회의를 시작하면서 노무현 당선자와 인수위원들이 대구 지하철 방화참사 희생자 추모 묵념을 하고 있다. 주간사진공동취재단
2003년 2월21일 16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마지막 전체회의를 시작하면서 노무현 당선자와 인수위원들이 대구 지하철 방화참사 희생자 추모 묵념을 하고 있다. 주간사진공동취재단
2월18일( 화) 오전 대구 지하철역 화재로 192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일어났다. 2월20일(목) 당선자와 이낙연 대변인, 문재인·권기홍 위원과 함께 대구로 갔다. 중앙로 지하철 참사 현장에 도착해 헬멧을 쓰고 지하로 내려갔다. 입구에 사람들이 놓고 간 추모 국화꽃이 수북이 놓여 있었다. 지하 1·2·3층이 모두 다 타서 시커멓게 변했다. 지하철 1호선은 평소 내가 출퇴근 때 자주 이용했고, 중앙로역은 대구의 도심 한복판이라 사람들이 북적대던 곳인데 괴괴 적막한 곳이 되어버렸다. 마지막 순간 매캐한 연기 속에서 시어머니에게 휴대폰으로 어린 남매를 부탁한다고 유언을 남긴 영천의 젊은 엄마가 생각났다. 앞으로 지하철 타고 이곳을 지나갈 수 있을까.

이어 당선자 일행은 영남대병원으로 가서 부상자들을 격려한 뒤 대구시민회관으로 이동해 2층에 모신 영정 앞에 조의를 표하고, 유족 대표와 면담을 진행했다. 복도는 사람들의 고함과 울부짖음으로 가득 찼다. 어렵사리 인파를 헤집고 2층 면담하는 방으로 들어가니 실종자 대표 5명은 앞줄에, 사망자 대표 5명은 뒷줄에 앉아 있었다. 주로 앞줄 사람들이 발언하고, 뒷줄은 침묵을 지켰다. 실종자 대표인 한 여성이 발언을 많이 했다. 30분 정도 면담을 마친 뒤 계단을 내려오는데 1층 홀을 가득 메운 군중이 당선자에게 발언을 요구했다. 당선자가 깊은 애도와 더불어 전국 지하철의 안전을 점검하되 대구를 제일 먼저 하겠다고 약속했다. 발언이 끝나자 여성 대표가 “길을 열어 드립시다” 해서 군중 사이를 헤치고 나올 수 있었다.

2월21일(금) 인수위 마지막 출근 날이다. 오전 9~10시 당선자가 주재하는 인수위 마지막(7차) 전체회의가 열렸다. 당선자는 대구 참사에 죄인이 된 심정이라고 말하며 사과했다. 그 나흘 뒤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다시 한번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었다.

이날 인수위원들이 두 달간 정성을 쏟은 ‘12대 국정과제 보고서’를 당선자에게 제출했다. 각 분과 간사는 제외하고 전 위원들이 돌아가며 한마디씩 발언했다. 여러 위원이 당선자에게 수구초심(首丘初心)을 부탁했다. 나는 마지막에 1분 발언을 자청하고 두 가지 이야기를 했다. 첫째, 심심한 대통령이 되어 달라. 우리나라 기관장이 모두 너무 바빠 생각할 시간이 없는 게 문제다. 둘째, 대구 지하철 참사 때 기관사가 응급조처를 외면하고 사령실과 통화하는 데 매달리는 바람에 화를 키웠는데, 이는 관료주의의 극치다. 그러므로 민주화와 개혁이 새 정부의 과제다. 이 발언은 이튿날 신문에 ‘심심한 대통령’론으로 소개됐다.

이정우: 1950년 대구에서 나고 자랐다. 1974년 서울대 경제학과 학·석사를 마친 뒤 1983년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7~2015년 경북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한 뒤 명예교수를 맡고 있다. 2003~05년 참여정부 초대 정책실장, 정책기획위원장 겸 정책특보를 지냈다. 공정하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고자 끊임없이 공부하는 경제학자를 자임하고 있다. ‘참여정부 천일야화’ 제목은 그의 친필이다.  진행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이정우: 1950년 대구에서 나고 자랐다. 1974년 서울대 경제학과 학·석사를 마친 뒤 1983년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7~2015년 경북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한 뒤 명예교수를 맡고 있다. 2003~05년 참여정부 초대 정책실장, 정책기획위원장 겸 정책특보를 지냈다. 공정하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고자 끊임없이 공부하는 경제학자를 자임하고 있다. ‘참여정부 천일야화’ 제목은 그의 친필이다. 진행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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