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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일본 ‘장애인 강제 불임수술’의 역사…국가 폭력과 싸우다

등록 2023-03-01 19:00수정 2023-03-02 02:38

2022년 12월25일 일본 도쿄에서 옛 우생보호법 문제의 전면 해결을 목표로 하는 전국 집회에 참가한 시즈오카현 대리인이 80대 농인 여성의 사례를 전하는 모습. 영화사 고래 제공
2022년 12월25일 일본 도쿄에서 옛 우생보호법 문제의 전면 해결을 목표로 하는 전국 집회에 참가한 시즈오카현 대리인이 80대 농인 여성의 사례를 전하는 모습. 영화사 고래 제공

[숨&결] 이길보라 | 영화감독·작가

“남편은 강제 불임수술을 받은 게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죽을 때까지 절대 말하지 않겠다고 했지요. 옛 우생보호법에 의한 강제 불임수술에 대한 국가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면서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말하게 됐어요. 조금 부끄럽지만 열심히 하겠습니다.”

2019년 일본 후쿠오카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아사쿠라 노리코(가명)는 그 누구에게도 강제 불임수술에 관해 이야기한 적이 없다고 했다. 수어를 사용하는 농인 친구 중에는 아이가 없는 부부가 꽤 있었지만, 그 이유는 묻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으니 더는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 된 게 당연하다고 여겼다. 아사쿠라 노리코는 아이를 가질 수 없음이 부끄러웠다. 부모 손을 잡고 걸어가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아이 둘을 꼭 갖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럴 때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몇번이고 되뇌었다.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궁금했다.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강제로 불임수술을 받은 남편은 왜 그 사실을 숨기려 했는지, 어째서 폭력은 이해되지 않은 채로 그의 신체에 머물러야 했는지, 재생산의 권리를 빼앗긴 아사쿠라 노리코는 아이를 가질 수 없는 것에 왜 부끄러운 감정을 느껴야 했는지, 임신하지 못하는 여성의 몸에 대한 수치는 어디서부터 오는지.

재생산을 둘러싼 감정의 정치사를 다루는 책 <임신중지>에서 저자 에리카 밀러는 “어떤 여성은 임신중지를 해서, 어떤 여성은 아이를 너무 많이 낳아서 수치를 당한다”며 “수치는 공동체에서 공유하는 규범, 가치, 이상을 위반한 개인에게 신호를 보낸다”고 쓴다. 이는 여성이라면 모름지기 수행해야 하는 규범적 여성다움에 실패한, 재생산이 불가능한 신체에도 적용된다. 사회 구성원들은 수치라는 개인적이면서 동시에 사회적인 감정을 느끼며 자신이 모방하는 데 실패한 사회적 이상에 대한 애착을 갖게 된다. 그에 따라 공동체에서 공유하는 규범에 통합되고자 노력한다. 국가는 수치라는 감정을 통해 규범 체계를 유지하고 국민을 만들어낸다.

나는 수치라는 감정에 관해 물었다. 국가를 상대로 소송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소송에서 이기면 더는 아이를 가질 수 없는 것에 수치심을 느끼지 않을 것인지 질문했다. 아사쿠라 노리코는 한국어로 된 질문이 일본 음성언어로, 다시 일본수어로 통역될 때까지 기다렸다. 질문의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없어 한참을 고민했다. 이윽고 손을 움직여 수어로 말했다.

“지금까지 강제로 불임수술했다는 게 부끄러워서 비밀로 해왔는데 재판에서 이기면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이 없어질 것 같습니다. 깨끗하게 사라질 것 같아요.”

아사쿠라 노리코는 소송을 통해 더 이상 공동체에 속하기 위해 침묵하지 않을 것임을 보여준다. 고정돼 있는 규범에 질문을 던지고 사회적 가치에 균열을 냄으로써 수치라는 감정이 어디서부터 오며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정확하게 바라볼 것을 제안한다.

현재 일본 전역에서 옛 우생보호법에 의한 강제 불임수술에 대한 국가배상 청구소송 1심 판결이 내려지고 있다. 가장 최근엔 2월24일 시즈오카지방법원에서 80대 농인 여성이 승소 판결을 받았다.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네번째 판결이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받아들일 수 없다며 항소하고 있다.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강제 불임수술을 받았던 피해자들은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폭력의 맥락을 파악하고 국가를 상대로 한 싸움을 시작한다. 2월26일 효고현에 사는 60대 여성 농인 2명은 국가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장애인으로서 차별을 받은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왔지만 제소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는 함께하기로 했다는 설명이다.

평생을 안고 살았던 수치라는 감정에 관해 질문을 던지는 이들을 본다. 바깥으로부터 오는 수치를 직면하고 고정된 규범을 해체할 것을 요구하는 피해자들의 용감한 여정을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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