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거 우즈가 12번홀에서 티샷하고 있다. 올랜도/USA투데이스포츠 연합뉴스
[뉴노멀-혁신] 김진화 | 연쇄창업가
‘운명’이라는 별칭으로 널리 알려진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로 묘사되는, 고작 네개의 음으로 이뤄진 도입부는 고전음악의 대명사가 될 정도로 익숙하지만, 개인적으로 이 작품의 백미는 3악장에서 4악장으로 간단없이 이어지는 이행부 아닐까 싶다. 듣고 있자면, 다니엘 바렌보임이 강조한 ‘소리의 현상학’, 즉 예술로서 음악이 “소리로 환영을 만들어내는 기술”이라는 다소 추상적인 설명을 단숨에 이해하게 되는 마법 같은 순간이 펼쳐진다.
스포츠에서도 응축된 에너지를 공 같은 다른 무언가로 전이시키는 순간은 음악만큼이나 리드미컬하고 드라마틱하다. 특히 골프와 야구처럼 정적인 상태에서 강력한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종목에서는 더 인상적이다. 아시아인 최초로 마스터스 토너먼트를 제패하고 그린 재킷을 걸쳤던 마쓰야마 히데키는 골프채를 들어 올리는 백스윙 때 정점에서 잠시 멈추는 자세로 유명하다. 그 찰나의 멈춤을 통해 더 강력하게 응축된 힘을 공에 전달한다. 미국남자프로골프투어(PGA)에서만 5승을 거둔 임성재는 분절되듯이 이어지는 느린 백스윙으로 자신의 스타일을 차별화한다.
주말 골퍼가 드러내는 문제점 대부분은 잘못된 전환 동작에서 기인한다. 사회인 야구에서 난다 긴다 하는 고수들도 시속 120㎞ 이상 속구를 던지기 힘든 것은 프로 선수들과의 신체적 격차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립을 익히고 셋업 자세며 백스윙, 팔로 스루 동작을 흉내 내기는 어렵지 않다 해도, 단계별로 동작과 동작 사이에서 힘의 흐름을 제대로 이어주고 증폭시키는 건 또 다른 문제다. 숙련된 선수들이 취하는 동작 하나하나는 에너지의 응축과 뒤이은 폭발이라는 고도로 구조화된 일련의 흐름인데, 아마추어들은 그저 분절된 스틸컷이나 슬로모션을 따라 하기에 급급하다.
급변하는 시대를 살아내고 견뎌내는 우리 모두에게 이런 시행착오들이 좀처럼 낯설지 않다. 사장님이나 시장님, 총장님들은 어디선가 보고, 듣고, 스쳐 간 멋진 말들을 화두처럼 던지며 변화와 혁신을 주문한다. 임무가 불분명한 태스크포스가 꾸려지고, 최고변화책임자 같은 멋진 직책이 등장하고, 외국 유명 전시 행사에 몰려가는 21세기 신사유람단이 조직되는 이유다. 국외 이런저런 사례가 맥락 없이 도입되고 시행되다 흐릿해지는 과정은 타이거 우즈 스윙의 연속촬영 장면을 하나하나 따라 하다 엘보가 와 버린 초보 골퍼를 닮았다. 왜 하는지, 어떠한 에너지를 어떻게 응축시켜 어디에 풀어낼지 누구 하나 묻지 않고 설사 궁금해도 그냥 삼키고 만다.
다시 바렌보임의 얘기로 돌아가 보자. 그는 에드워드 사이드와 한 대담에서 지휘자 빌헬름 푸르트벵글러를 이렇게 평가했다. “그는 음악을 철학적으로 이해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음악이 표현이나 이미 존재하는(being) 것에 관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무엇이 되어가고(becoming) 있는가에 관한 문제였습니다. 그에게 음악이란 정말 중요한 프레이즈(악절)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그 프레이즈에 이르고, 어떻게 그 프레이즈를 떠나며, 어떻게 다음 프레이즈로 옮겨 가는가에 관한 문제였습니다.”
저출산, 그에 따른 인구구조 변화, 이를 통해 시급해지는 산업구조 재편 등 이행기 여러 문제에 직면한 한국 사회는 각각의 프레이즈를 죽어라 연습하며 그것에 매몰돼 곡 전체를 유기적으로 연결 짓지 못하는 초보 연주자를 닮았다. 87년 체제에서 이행하기는커녕 박근혜-문재인 정부를 거치며 팬덤정치와 갈라치기에 함몰된 한국 정치는 와인드업 동작만 반복하며 좀처럼 공을 뿌리지는 못하는, 공포증에 빠진 투수 같다. 이행에는 철학과 기술이 필요하다. 그걸 먼저 깨닫고, 자기부터 변화하는 게 리더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