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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키스’와 ‘충돌’

등록 2023-03-22 19:59수정 2023-03-23 02:09

프로당구협회 피비에이(PBA)가 최근 당구 용어 ‘키스’를 ‘충돌’로 바꿀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경기운영위원회, 방송사, 기자단과 협의를 거쳐 6월 개막하는 2023~2024 시즌부터 사용을 권장하겠다고 한다.

당구에서 키스는 주로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 공이 진행할 때 생기는 접촉을 의미한다. 외국에서는 살짝 부딪힐 때 키스를, 쓸거나 문지르고 지나갈 때는 ‘브러시’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국내 당구장 이용자들은 공이 잘못 맞을 경우 오랫동안 ‘쫑’ ‘빡’ 등의 말을 써왔다.

피비에이가 용어를 바꾸려는 이유는 키스라는 말에 입맞춤이라는 단어의 1차 의미가 워낙 강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파생된 2차 의미로 당구공 간 접촉을 지시하게 됐지만 1차 의미의 잔상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충돌은 키스보다는 강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본디 두개의 물체가 부딪힌다는 정의 때문에 중계를 지켜보는 팬들에게 키스보다 더 명확한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

개화기 국내에 근대 스포츠가 소개되면서 관련 용어도 그대로 수입됐다. 축구, 농구, 야구, 배구 등의 종목 명칭은 일본의 것인데 이제 우리말이 됐다. 유도의 경우 오래전부터 손·발기술을 우리말로 바꿔 쓰기 시작했고, 한국이 세계에 수출하는 대표적인 문화상품인 태권도의 판정·품새 관련 용어는 한국어다.

대한럭비협회는 선수 위치나 경기 상황에 따라 명칭이 복잡한 럭비 용어를 이해하기 쉽도록 동물 그림을 이용해 설명하거나 만화 연재로 럭비 규칙을 소개하기도 한다. 반면 체조의 영어 명칭(artistic gymnastics)에는 예술이라는 말이 들어가 있지만, 대한체조협회는 기계적 움직임 등을 강조한 기계체조라는 명칭을 여전히 사용하고 있다.

언어는 고정된 실체를 지시하지 않는다. 맥락과 코드, 위치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스포츠 용어도 마찬가지다. 어떤 언어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팬, 시장과의 접촉면이 커지거나 줄어들 수 있다.

피비에이는 국어문화원연구회와 공동으로 진행한 이번 우리말 공모에서 큐볼이 역방향으로 올라오는 ‘리버스 엔드’를 ‘끝오름’으로 바꾼 작품에 가장 높은 점수를 주었다. 또 ‘스핀볼’ 대신 ‘팽이치기’를 대체어로 제시했다. 언어의 힘을 통해 한 종목의 이미지가 새롭게 구성되고 있다.

김창금 스포츠팀 선임기자 kim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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