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이 지난해 10월7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여성가족부 폐지 내용을 담은 정부조직 개편 방안을 설명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세상읽기] 김혜정 |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지난 2월27일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여성가족부 폐지’는 빠졌다. 윤석열 대통령 후보가 에스엔에스(SNS)에 ‘여성가족부 폐지’라고 올린 지 1년1개월21일 만에 공약은 멈춰졌다. 전국 567개 여성폭력피해자지원현장단체 등이 여성가족부 폐지 저지와 성평등 정책 강화를 위해 나서고, 시민과 국내외 여론 등이 주시해온 결과다.
‘여성가족부 폐지’는 남초 온라인 커뮤니티의 반페미니즘 담론을 정치로 끌어오는 과정에서 등장한, 단 일곱 글자로 공표된 일종의 선동이었다. 그런데 여성가족부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이 ‘선동’을 진지하게 실행하겠다고 나섰다. 여러 언론 인터뷰에서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고 타 부처와 통합하면 양성평등 정책 집행력이 ‘강화’된다는 주장을 반복한 김현숙 장관은 겉으론 성평등 ‘강화’와 ‘대안’을 말하면서 실제 관련 정책 축소에 앞장섰다.
국회에 제출한 2023년 예산안에서 ‘디지털성범죄 인식 개선 홍보예산’은 2022년 배정액(2022년 1억600만원) 수준마저도 전액 삭감했고, 국회 여성가족위 예결위원들이 전년만큼이라도 예산을 잡으라고 제안해 복구됐다. 예결위원들은 디지털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 인력 충원, 대통령 공약인 지방자치단체 산하 디지털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 설치 예산 추가도 권했으나 여성가족부가 거절했다고 한다. 언론이 전한 여성가족부 소식이다.
결국 여성가족부 폐지는 ‘여성 지우기’로 확대돼 전개됐다. 지난해 12월1일 제3차 양성평등기본계획 수립 공청회에서 여성가족부 여성정책과장은 ‘여성폭력’을 ‘폭력’이라 했다. 피해자 80~90%가 여성인 의제인데 여성을 지우고 폭력만 남겼다. 질문이 이어지자 “여성폭력 정의를 정책용어상 바꿔야 한다는 의견을 고려했다”고 말했다. 그보다 석달 앞선 9월6일에는 25년 동안 발표해오던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을 ‘통계로 보는 남녀의 삶’으로 바꿔 공표했다. 이런 움직임은 지자체 ‘여성 지우기’로 이어졌다. 지난해 6월 지방선거 뒤 강릉시 여성청소년가족과는 인구가족과로, 거제시 여성가족과는 가족정책과로, 고양시 복지여성국은 사회복지국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여성을 지우고, ‘가족’, ‘행복’, ‘인구’를 내민 사례들이 숱하게 많다.
타 부처가 시도하는 젠더 불평등을 심화하는 정책에 여성가족부가 장단을 맞추며 등장하기도 했다. 여성가족부 주관 ‘제3차 양성평등기본계획’이 1월26일 통과되자, 이 정권 최고 실세라는 법무부 장관이 기본계획에 언급된 비동의강간죄 개정을 검토하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반대하고 나섰다. 여성가족부는 곧바로 법무부 뜻에 따라 결정을 번복했다. 여성가족부는 해명자료에서 이 번복은 ‘정치적 변경’이 아니라 ‘정부 간 입장을 명확히 정리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법무부는 언론에 비동의강간죄만이 아니라 양성평등기본계획에 나와 있는 성폭력 관련 법률 개정 5개 과제에 모두 반대한다고 밝혔다. 여성 인권은 어떻게 되건 실세 부서인 법무부가 반대하면 모두 따라가는 게 여성가족부의 일인가?
여성가족부는 부처 존치가 결정된 뒤 “성별 임금격차 개선, 양성평등한 일자리 확대, 남녀 함께 일하고 돌볼 수 있는 일·가정 양립 문화 확산 등에 정책 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실제 그런가? 최근 고용노동부는 최대 주 69시간까지 일하는 근로시간 제도개편안을 입법예고했다. 일·가정 양립은커녕 돌봄노동의 여성 전가, 고용노동에서의 여성 배제가 불 보듯 뻔한 개악안이다. 고용노동부의 이런 개악안은 여성가족부가 밝힌 기조와 전면 배치되는데, 이 사안과 관련해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고 어떤 의견을 밝혔나?
이는 ‘여성 없애기’ 프로젝트의 정점일 수도 있다. 여성가족부를 ‘여성 없애기’의 선봉으로 세우는 것. 성평등을 요구하는 시민도, 반대하는 시민도 여성가족부에 먼저 실망하게 하는 것.
국민과 국회는 여성가족부 존치를 택했다. 지금이라도 여성가족부는 ‘여성 없애기’ 선봉에서 내려와야 한다. 정부의 반평화, 반노동, 반평등, 반여성 정책의 들러리, 알리바이 구실을 멈춰야 한다. ‘여성’이라는 현장과 관점, 전문성으로 돌아가 ‘여성 지우기’를 막아야 한다. 더 이상 개악은 막는 최소한의 ‘대안’을 위해 여성가족부 장차관은 사임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월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 윤 대통령 페이스북 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