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넷 막내가 열일곱 큰 오빠에게 술잔을 올린다. 아픈 다리를 붙잡고 힘겹게 절을 한 뒤 한라봉 껍질을 떼어 술잔에 넣고 두 손을 모아 안부를 묻는다. 지난 3일 제주 봉개동 4·3평화공원 각명비 앞에서 만난 강경자 할머니는 소박하고 정갈하게 제사를 올렸다. 국화꽃 한 송이, 한라산 소주 한 병, 한라봉 두 개…. 75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붉어진 눈가가 겹겹이 쌓인 슬픔을 증명한다. 6월항쟁, 5·18민주화운동과 달리 4·3은 이름 짓지 못한 역사로 남아 있다. 비극의 역사를 규명하고 희생자와 유족들의 명예회복에 힘쓰지 못할망정 어떤 이는 ‘격이 낮은 기념일’이라는 실언으로 제주 사람들의 마음에 비수를 꽂았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할 시간에, 해야 할 것부터 하자. 쓸모없는 소음들 사이로 4·3은 올해도 이름 없이 지나갔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