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오전 ‘문화예술허브 변경 추진 반대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린 북구 주민 500여명이 대구시청 산격청사 앞에서 항의 집회를 열었다. 연합뉴스
[전국 프리즘] 김규현 | 전국부 기자
“이 실장, 내 생각 틀맀나? 내 생각이 틀맀나 이 말이다!”
지난해 인기리에 종영한 제이티비시(JTBC)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진양철(이성민) 순양그룹 회장이 한 대사다. 순양그룹의 미래는 자동차라고 주장하는 자신을 향해 사람들이 반대하는 상황에서 비서실장에게 묻는 장면이었다. 진 회장은 “승산 있다는 내 확신을 독단이라 카고, 포기 몬 하는 내 진심을 아집이라 카지?”라며 되묻는다. 진 회장의 말은 한편으로 대단해 보이고, 한편으로 안쓰러워 보였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독단적인 그의 모습이 내심 불편했지만, 드라마의 결말이 예상 가능했기에 큰 문제는 아니었다.
경상도 사투리에 느릿한 진양철 회장의 말투는 누군가를 떠올리게 했다. 바로 홍준표 대구시장이다. 간간이 큰소리로 호통치는 듯한 말투도 꽤 닮았다.
‘거짓말쟁이 홍준표 시장’, ‘대권 꿈도 꾸지 마라’. 지난 10일 오전 대구시 북구 대구시청 산격청사 앞에 내걸린 펼침막에 쓰인 문구들이다. ‘문화예술허브 변경 추진 반대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린 북구 주민 500여명이 집회를 열고, 대표단 3명은 삭발도 했다. 대구시청 산격청사(옛 경북도청 터)에는 국립근대미술관, 국립뮤지컬콤플렉스 등 문화예술허브가 조성될 예정이었는데, 지난 5일 대구시가 문화예술허브를 달성군 옛 대구교도소 터로 옮겨 조성하겠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대구시는 시 공무원의 65%가 산격청사에서 근무 중인데, 신청사 건립이 늦어지면서 대통령 임기 안에 공간을 비워줄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는 점을 이전 이유로 들었다.
대구시는 공식 발표에 앞서 지난달 31일 문화체육관광부에 이런 방안을 검토해달라고 공식적으로 요청했고, 지난 1일 ‘서문시장 10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에게도 건의했다고 밝혔다. 애초 이 정책은 윤 대통령 지역 공약이었다. 윤 대통령 당선 때부터 문화예술허브가 들어선다고 기대하던 북구 쪽은 정작 대구시 발표 전까지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한다. 상대적으로 문화 인프라가 부족한 서부권(서구·달서구·달성군)에 문화예술허브가 들어서는 것은 반대만 할 일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이해당사자와 여론 수렴 과정은 전혀 없었다는 점이 500여명 주민이 분노한 이유다.
홍 시장 취임 뒤 이런 일이 종종 일어나는 게 새삼스럽지는 않다. 신청사 건립이 대표적이다. 대구시는 코로나19 대응으로 신청사건립기금을 대부분 소진해 청사 건립 재원이 부족해지자, 지난해 9월 일부 터를 팔아 충당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그러자 신청사가 들어설 예정인 달서구 주민들이 ‘원안 추진’을 요구하며 반발했다. 대구시의회도 시 계획을 받아들이지 않고 관련 예산을 전액 삭감해, 신청사 건립은 현재 중단된 상태다. 제2대구의료원 건립 계획 무산 때도, 전국 첫 인권위원회 폐지 때도 여론 수렴 과정은 없었다.
홍 시장이 반대 여론을 아예 듣지 않는 것은 아니다. 국립공원 지정을 앞둔 팔공산에 케이블카 설치를 공약했다가 불교계 반대로 중단했고, 성서·칠곡행정타운 터를 매각하겠다고 했다가 주민들의 반대로 철회했다. 시정특별고문 활동비를 최대 300만원으로 정했다가, 시의회 지적에 100만원으로 낮추기도 했다.
홍 시장은 문화예술허브 논란과 관련해 지난 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대구 미래 50년을 구상하는데 특정 구·군청을 보고 시정을 추진하지 않습니다. (…) 도시의 균형 발전과 신속한 업무 추진을 고려해서 모든 시정을 추진합니다. 혁신에 저항이 왜 없겠습니까?”라고 썼다.
진양철 회장의 “내 생각이 틀맀나?”라는 대사를 떠올리게 한다. 드라마의 결말은 정해져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대구 미래 50년’의 결말은 그렇지 않다. ‘해피엔딩’일 수도 ‘새드엔딩’일 수도 있다. 폭넓게 이해당사자의 목소리를 듣고 공감대부터 만든 뒤 정책을 발표한다면 좀 더 ‘해피엔딩’에 가까워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gyuhy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