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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 계절의 이름은 기후위기

등록 2023-04-19 18:43수정 2023-04-20 02:35

지난달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한 시민이 외투를 벗은 채 걸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한 시민이 외투를 벗은 채 걸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숨&결] 박성민 | 전 청와대 청년비서관

대학생들 사이 우스갯소리로 벚꽃 꽃말은 중간고사란 말이 있었다. 벚꽃이 만개할 때가 중간고사 시험 기간과 겹치기 때문이다. 일반인들이 이곳저곳 꽃구경 다니며 눈호강 할 때, 대학생들은 칙칙한 도서관에서 책과 씨름해야 했다. 그나마 도서관으로 향하는 길에 꽃나무 몇그루라도 있다면 운이 좋은 편이었다. 제대로 흐드러지게 핀 벚꽃무리는 보통의 대학생들에게는 말 그대로 ‘그림의 떡’ 같은 존재였다.

그런데 올해 갑자기 벚꽃 구경을 할 수 있게 됐다. 올해 서울의 벚꽃 개화일은 지난달 25일. 기상청은 기상 관측이 시작된 1922년 이래 역대 두번째로 빠른 개화라고 했다. 실제 벚꽃 개화 시기는 점점 앞당겨지고 있다. 2010년대 초반에는 4월 중순에 개화했는데 2010년대 중후반 4월 초로 앞당겨지더니, 2020년에는 3월27일에 개화했다. 올해는 3월25일로 더욱 앞당겨졌다.

벚꽃 구경을 할 수 있게 된 여유가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론 낯설고 두려웠다. 너무 빠른 기후위기 진행 속도를 보여주는 것 같아서 말이다. 이른 벚꽃 개화는 3월 날씨가 너무 따뜻했기 때문이다. 벚꽃만이 아니다. 과거 순차적으로 피던 다른 봄꽃들이 한꺼번에 뒤섞여 개화하더니 거의 한꺼번에 꽃잎이 떨어졌다. 최근엔 다시 쌀쌀한 날씨가 이어져 친구들과 도대체 옷을 어떻게 입어야 하느냐는 푸념까지 오갔다. 널을 뛰는 봄 날씨 속에서 자연스레 기후위기가 피부로 느껴진다.

생각해보면 ‘이상한 날씨’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2020년 여름엔 밤마다 비가 쏟아졌다. 두달 가까이 이어진 비 소식은 장마라기엔 너무 길었고, 비 내리는 모양새도 희한했다. 밤새 천장이 무너지기라도 할 듯 비가 쏟아지더니 아침엔 무슨 일이라도 있었냐는 듯이 해가 쨍하고 나타나는 날이 여럿이었다. 에어컨 없는 작은 하숙방에서 쏟아지는 비 때문에 창문을 열 수 없어 밤마다 괴로워하며 잠을 청하던 그 시절 기억이 생생하다.

그해엔 장마철 최장 기록이 경신됐다. 기상청은 중부지방과 제주도의 장마철이 각각 54일과 49일로 역대 가장 길었다고 발표했다. 밤마다 내리는 비에 더위와 습기로 잠 못 들던 새벽 불현듯 떠오른 생각. ‘날씨가 참 이상하다. 우리나라 날씨가 이제 동남아시아와 비슷해지는 건가.’ 당시 멋진 할머니가 되는 게 꿈이라고 말한 친구가 있었는데, 나의 마음속에는 ‘우리가 무사히 늙어갈 수 있긴 할까? 지금 누리는 이 계절, 이 날씨를 나중에도 온전히 만날 수 있을까?’라는 반문이 가시지 않았다.

익숙한 날씨는 평소엔 너무 당연하지만, 지금은 그 당연한 게 의심받고 있다. 그래서 기후위기의 심각성에 ‘공감한다’는 이들이 주변에 많다. 하지만 그런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며 안심하기엔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온 건 아닐까. 지구의 온도 상승엔 가속도가 붙는 추세인데, 이를 반전시킬 계기나 움직임은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지구 온도 상승 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이내로 제한하자는 파리기후협정(2015년)이 맺어졌지만, 전세계 국가들이 밝힌 온실가스 감축 약속을 이행하더라도 이번 세기말 지구 온도는 2.5도 높아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유엔기후변화협약 사무국, ‘2022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 종합보고서’)

지구 평균기온이 2.4도 이상 상승하면 지표면의 30%가 사막화된다고 한다. 이는 우리가 살아갈 세상이 붕괴한다는 의미다. 사람도, 경제도, 성장도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곳이 사라지게 된다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안타까운 건 이런 상황에서도 정부 정책은 거꾸로 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달 21일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가 내놓은 제1차 탄소중립계획안은 2030년까지 산업부문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14.5%에서 11.4%로 하향 조정했다. 많은 이들이 걱정하는 이 위기 신호를 산업계와 정부만 느끼지 못하는 걸까.

벚꽃의 진짜 꽃말은 ‘삶의 아름다움’이라고 한다. 미래 세대에게 벚꽃 꽃말은 기후위기로 기억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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