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에서 인태 전략은 태평양-인도양-대서양을 연결하는 미국의 전통적 해양전략으로 중국의 현상변경 시도와 영향력 확대를 억제하기 위한 지정학적 포석이다. 따라서 배타성을 전제로 한 동맹과 집단방위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제2회 민주주의 정상회의’ 인도·태평양 지역회의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문정인 | 연세대 명예교수
“이제 아시아·태평양 시대는 가고 인도·태평양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한국과 미국은 물론 유럽 국제회의에서도 흔히 듣는 이야기다. 지정학적 개념으로서의 인태가 지리적 개념인 아태를 압도하는 형국이다. 정말 아태 질서는 끝났는가? 동의하기 어렵다.
지역질서의 급격한 변화는 강대국 간 큰 전쟁이나 혁명과 같은 강대국 내부의 정치변동 결과로 나타난다. 나폴레옹 전쟁에 따른 빈 체제, 1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연맹 체제, 2차 세계대전 뒤 미-소 대결과 냉전 체제, 소련 해체에 따른 탈냉전 질서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기존의 아태 질서가 아직 건재한데도 일본 아베 전 총리가 제안하고 미국의 트럼프-바이든 대통령이 구체화한 인태 전략과 그에 따른 새로운 지역질서가 아주 짧은 시간에 지배적 패러다임으로 등장했다는 것이 의아할 뿐이다.
1990년대 초 냉전이 끝나자 미국 중심 단극체제 아래서 새로운 지역분화가 일어났다. 유럽연합이 먼저 독자적인 경제권을 구축했다. 이에 질세라 미국도 캐나다와 멕시코를 규합한 북미자유무역지대(NAFTA)를 만들었고 일본과 오스트레일리아(호주)가 주도한 아태경제협력체(APEC·아펙) 결성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아시아·태평양 시대가 열리는 계기였다.
탈냉전 시대 아태 질서는 여러 면에서 긍정적이었다. 아시아와 남·북미, 태평양 연안 21개 국가가 참여하는 아펙은 자유무역을 표방하는 열린 지역주의의 대표적 사례로 자리 잡았다. 선진국과 개도국의 견해 차이 등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 보완으로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RCEP), 아세안자유무역지대(AFTA), 다양한 양자 자유무역협정이 생겨났다. 그뿐 아니라 아시아와 유럽을 연계하는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도 출범하면서 지역 간 자유무역 질서의 초석을 다지기도 했다.
매년 열리는 아펙 정상회의는 최고위급 정치안보 협의의 장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아세안 주도 아래 중국과 러시아를 포함하는 아태지역 안보 협의는 다자안보협력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기도 했다. 서로 다른 정치체제와 가치지향에도 불구하고 역내 교류와 협력이 활성화됐고 나름대로 전략적 공감대도 형성돼 왔다. 90년대 이후 아태지역이 누려온 평화와 번영은 바로 이런 대륙과 해양 세력을 포괄하는 지역질서의 결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태 전략은 ‘자유롭고 열린’(미국) 혹은 ‘평화로우며 번영하는’(한국) 인도·태평양을 지향하면서 포용·신뢰·호혜를 협력의 원칙(한국)으로 제시하고 있으나, 아태 질서와는 크게 상충한다. 당장 그 하부 체제라 할 한·미·일 3국 군사공조, 쿼드, 오커스, 나토의 외연 확대 등만 봐도 그렇다. 본질에서 인태 전략은 태평양-인도양-대서양을 연결하는 미국의 전통적 해양전략으로 중국의 현상변경 시도와 영향력 확대를 억제하기 위한 지정학적 포석이다. 따라서 배타성을 전제로 한 동맹과 집단방위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이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가치외교라는 이분법적 명분을 활용한다. 민주주의 국가들의 연합을 통해 중국·러시아·북한 등 권위주의 국가들의 축에 공동으로 대응한다는 것이다.
경제 분야에서도 인태경제프레임워크(IPEF)라는 닫힌 지역주의를 특징으로 한다. 미국은 통상과 기술 분야에서 중국과의 탈동조화(decoupling)에 동맹과 우방의 참여를 종용하고 있다. 리쇼어링, 니어쇼어링, 프렌드쇼어링 같은 말들이 함축하듯, 인태 전략의 목표는 결국 중국 배제다. 국제통화기금(IMF) 최근 보고서는 이런 지정학·지경학적 진영화가 세계 경제에 치명적 타격을 가져올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중국의 부상을 실존적 위협으로 간주하는 미국과 일본의 시각에서 보면 인태 전략은 충분히 타당해 보일 수 있으나, 역내 여타 국가들의 이해관계와 생각은 크게 다를 수 있다. 두 질서 사이의 양자택일이 가져올 부수적 피해가 매우 크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게다가 아태 질서의 묘비명을 쓰기에는 아직 순기능이 많아 보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나라에서 인태 질서로의 전환을 맹목적으로 수용할 뿐, 그 전환의 적절성에 대한 학문적, 정책적 논의는 미미하기 짝이 없다. 과연 아태와 인태 질서 사이 공존과 조화의 접점을 찾는 것은 불가능한가. 인태 전략에의 편승이 가져오는 지역 수준의 손익계산은 어찌 되는가. 특히 한국과 같은 반도국가가 대륙을 떠나 해양전략에 전적으로 동참하는 게 바람직한가. 한국은 오랜 기간 아태 질서의 최대 수혜자였다. 이제 치열한 토론과 논쟁을 통해 우리 스스로의 답을 찾아가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