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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명청교체기 조선의 선택을 생각한다

등록 2023-05-02 19:17수정 2023-05-03 02:37

미국을 국빈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4월26일 오전(현지시각) 백악관에서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열린 공식 환영식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과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워싱턴/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미국을 국빈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4월26일 오전(현지시각) 백악관에서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열린 공식 환영식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과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워싱턴/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기고] 정재훈 | 경북대 사학과 교수

지난달 30일 윤석열 대통령이 5박7일간 미국 국빈방문을 마치고 귀국했다. 윤 대통령은 이번 방미 기간 가치동맹에 기초해 미·일과는 일방적 협력을, 러·중과는 거리를 두는 새로운 외교질서를 명확히 했다. 현시점에서 이런 가치동맹은 얼마나 가치가 있을까.

한국은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라는 세계 최강대국에 둘러싸여 있다. 이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한반도는 오랜 동안 중국, 근대에 들어서는 일본, 러시아라는 강대국과 이웃해야 했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숙명은 이 땅에서 외교를 단순하게 다른 나라와의 관계 설정을 넘어 생존을 위한 중요한 기제로 삼도록 했다. 쉽게 말해, 우리에게 외교는 언제나 존망이 달린 문제였다.

한반도 최초로 이뤄진 삼국통일에서 당과의 관계가 그랬다. 신라는 당과의 외교를 바탕으로 삼국통일을 이룩했지만, 외교가 끝나는 지점에 전쟁이 있었다. 고려 때에는 거란의 침입에 맞선 서희의 외교가 있었고, 몽골간섭기에도 비록 반식민지 상황이지만 저항을 통한 자존의 노력이 있었기에 원 제국과 특수 관계를 만들 수 있었다.

더 나아가 조선은 시작부터 원명교체기라는 중국의 변화에 외교적으로 대응해야 했다. 또 조선 중기에는 명청교체기 병자호란으로 인해 임금이 세번 절하고 아홉번 머리를 찧는 항복의 예를 표하는 전대미문의 사건도 있었다. 그로 인해 인조와 그의 신하들은 망해가는 명나라에 명분을 지키느라 나라를 전쟁의 참화 속에 빠뜨렸다는 비판을 두고두고 받아야 했다.

하지만 최근의 연구는 정반대의 역사적 사실을 밝혀주고 있다. 광해군의 중립외교는 인조반정 이후에도 변함없이 지속됐다. 또 후금(청)이 침략 명분으로 삼았던 인조의 ‘절화교서’(絶和敎書)는 후금과의 전쟁을 대비하라는 내용의 국내용 교서일 뿐이어서 ‘명분에 사로잡힌 조선이 전쟁 원인을 제공했다’는 지적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병자호란의 직접적인 발발 원인은 홍타이지 황제즉위식에 참석한 조선 사신들이 목숨을 걸고 절하기를 거부한 사건이었다. 조선 사신들의 이런 행위는 만주의 야인들이 역사의 변방에서 대청제국으로 태어나려는 순간에 재를 뿌리는 행위였고, 화가 난 홍타이지는 ‘조선이 전쟁을 자초했다’며 거의 전 병력을 동원해 병자호란을 일으켰다. 정묘호란 이후 명청 사이에서 균형을 추구했던 조선 조정으로서는 피할 수 없는 전쟁이었던 셈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인조를 비롯한 조선 조정은 지금까지도 명분에 집착해 전쟁을 불러일으켰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현실에서 명분과 실리는 완전히 분리되기보다는 한 몸인 경우가 많다. 명분을 선택한다는 것은 그 명분에 부합하는 실제 이익을 함께 추구한다는 의미다. 아직 신생국에 불과한 청과 쇠망의 길로 들어서기는 했지만 당시 세계 최강 군사력을 보유한 명 사이에서, 과연 청을 일방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최선이었을까?

명이 망하고 청나라가 중국 대륙을 제패한 역사적 사실을 아는 우리로서는 쉽게 말할지 모르지만, 당시 위정자들로서 최선은 명과 청 사이에서 적절하게 살길을 모색하는 것 아니었을까. 쉽사리 청나라에 예를 표하고 그 아래로 들어갔다가, 명의 보복을 받는다면 그 결과는 과연 누가 책임을 질 수 있었겠는가.

작금의 현실을 명청교체기에 비견해보자면, 즉 과거 인조와 조선 조정을 쉽게 비판하는 관점에서 우리의 선택은 미국보다는 중국이어야 옳을 것이다. 전성기를 구가하던 미국과 새로운 전성기를 향해 달려가는 중국은 과거 명, 청의 모습과 정확하게 비교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우리 정부는 중국이 아닌 미국 일방으로 가치동맹을 역설하고 있을까? 명분에만 집착하다가 전쟁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고 비판하던 관점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판단이다.

당연하게도 중국이든 미국이든 국가 사이에서 영원한 자기의 편은 있을 수 없다. 국익에 따른 선택, 그리고 그것을 합리화하는 명분이 있을 뿐이다. 후대인들의 사후적 비판은 쉽지만, 당대 위정자로서 처신은 신중함과 균형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명청교체기 두 나라 사이에서 균형을 잃지 않고 나름 자존의 길을 모색했던 우리 조상들도 전쟁을 피할 수 없었는데, 과연 이런 역사적 사실에서 우리 위정자들은 어떤 교훈을 얻고 있기는 한 것인지 깊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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