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노위 공익위원 자격 완화를”“공무원노조, 개혁의 동반자로”“중앙과 지방 관계변화가 개혁”
의원·전문가 등 자유롭게 발언토론 통해 현안·문제의식 공유노 대통령, 토론 뒤 여러 당부
감사원 보고땐 감사방식 논쟁직무감찰→성과평가 전환 제안감사원은 “분리 불가” 반박도
해임건의안 통과에 김두관 사퇴야당 황당 공세에 윤성식도 낙마당리당략 따른 닭싸움 정치행태
2003년 3월19일 노무현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노동부 업무보고를 받고 “노사정위의 신뢰와 위상을 높이기 위해 적절한 기회에 직접 참여할 계획이며 야당에도 참여를 권고하겠다”고 말했다. 노무현사료관 제공
2003년 3~4월 정부 각 부처가 차례대로 대통령에게 업무보고를 했다. 주요 현안은 무엇이고 올해 무슨 일을 어떻게 하겠다고 밝히는 대단히 중요한 희의다. 대표적인 몇개 부처를 소개한다.
3월19일(수) 오후 3시 노동부 업무보고가 있었다. 장·차관, 실·국장들은 물론이고 국회의원, 관련 전공 교수들도 참석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보고에 만족해하면서도 노동문제가 산적해 있다고 한탄했다. 두산중공업 노사분규 때 권기홍 장관이 창원까지 내려가 직접 조정해 문제를 잘 해결한 것을 칭찬하면서, 앞으로 이런 문제가 생기면 대통령이 직접 관여하겠다고 했다.
노민기 근로기준국장이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조사에 솔선수범할 필요가 있다”고 하자 박봉흠 기획예산처 장관이 조사를 적극 지원하겠다고 응원했다. 노 대통령은 정부개혁실에서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인수위원으로 활동했던 정영애 박사(나중에 청와대 인사수석)가 지방노동위 공익위원 자격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하자 노 대통령이 찬성 의사를 밝혔다. 정병석 중앙노동위 상임위원이 “그럴 필요가 있기는 한데 공익위원 선임은 노사 양쪽의 찬반 투표를 거치므로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실세 장관이 있고, 대통령도 바뀌었으니 노동부 공무원들은 의욕을 갖고 일하라”고 힘을 실어줬다. 그리고 한국의 고질적인 대결적 노사관계를 언급하며 “신뢰가 핵심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 노조에 회사 장부를 공개할 수 있는 기업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마무리 발언은 이랬다. “갈등 조정은 정부의 임무다. 이번 두산중공업 사태가 그걸 잘 보여준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통합이다. 아울러 경쟁력 향상을 도모해야 한다. 신뢰와 투명성이 관건이다.”
2003년 3월24일 노무현 대통령은 김두관 행정자치부장관(왼쪽)한테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전 공직자의 사고 혁명이 이루어져야 행정개혁이 가능하다”면서 공무원들이 스스로 행정혁신에 주도적으로 나서줄 것을 강조했다. 노무현사료관 제공
3월24일(월) 10시엔 행정자치부 업무보고가 있었다. 첫머리에 박주선 의원이 공무원노조를 언급하자 김두관 장관이 “공무원노조를 전교조 수준으로 인정하고 개혁의 동반자로 삼아야 한다”고 진취적 발언을 했다. 역대 행자부 장관 중 이런 전향적 인식을 보인 이는 처음이었다. 남해군수 출신으로 장관에 임명할 때는 일부 반대가 있었으나 그 뒤에 보니 일을 아주 잘했다. 그러나 2003년 9월 야당인 한나라당은 한총련의 미군기지 침입 사건을 이유로 행자부 장관 해임건의안을 통과시켰다. 말도 안 되는 억지였지만 노 대통령과 김 장관은 수용했다.(20년 뒤 이태원 참사를 이유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외교참사와 관련해 박진 외교부 장관 해임건의안이 통과됐으나 윤석열 대통령과 두 장관은 요지부동이었다. 실제 두 장관은 참사에 큰 책임이 있다)
윤성식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가 행자부 업무보고에 참석해 전문가로서 견해를 피력했다. 노 대통령이 공무원들 필독 도서로 추천한 <정부개혁의 비전과 전략>(2002)의 저자이기도 한 윤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중앙과 지방의 관계 변화가 개혁이다. 20~30년 뒤 국민의식, 문화, 정보화, 세계화를 생각하면서 양자 간의 협력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권한과 예산을 무조건 지방정부에 이양한다고 능사가 아니다. 지방 이양이 또 다른 집중과 독선에 빠질 위험도 있으므로 견제장치가 필요하다. 서구는 시민사회가 성숙돼 있으나 한국은 아직 그렇지 못하므로 지방정치가 중요하고, 지방에 인재가 오는 것이 중요하다. 지역인재 할당제는 한시적 조치일 뿐, 근본대책은 아니다. 인재가 지방에 모일 인센티브가 필요하고 지방경제가 살아나야 한다.”
노 대통령은 행자부 업무보고에 대체로 만족한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행정개혁을 10년 이상 계속해야 한다. 행자부가 개혁의 견인차가 되어 달라. 과거 많이 했던 정부조직 뜯어고치기는 하지 않겠다. 합리적 행정, 내용 혁신으로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행자부에서 관리하는 특별교부금 1조8천억원은 문제가 많다. 이것은 장관이 선심성으로 나눠주는 것인데 나쁜 관행이므로 폐지하거나 개선해야 한다(실제 노 대통령은 과거 대통령이 관례로 사용하던 선심성 교부금을 대폭 줄이는 솔선수범을 했다). 모든 조직은 기득권을 버리고 국민에게 봉사해야 한다. 경찰도 치안이나 정책을 위한 정보는 보고하되 정치적 성격의 정보보고는 이제 중단하라. 5년 내내 행정개혁을 하겠다. 일상 업무는 총리에게 위임하고 대통령은 대통령 아젠다에 집중하겠다.” 지난회에서 밝힌, 만기친람형이 아닌 과제집중형 대통령이 되겠다는 선언이다.
2003년 3월28일 노무현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감사원 업무보고를 받고 감사원 회계검사 기능의 국회이관 논란과 관련, “시험운영을 적용해 보고 그 결과에 따라 최적의 제도를 헌법에 담아보자”고 말했다. 왼쪽부터 이종남 감사원장, 노무현 대통령, 정세균 새천년민주당 정책위의장. 노무현사료관 제공
3월28일(금) 오후 감사원 업무보고가 있었다. 이종남 감사원장과 상임위원 6명, 국장 7명이 참석했다. 김병준 정부혁신위원장이 과도한 감사로 공무원들이 복지부동에 빠진다며 종래 직무감찰 중심에서 성과평가 중심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감사원장은 5국이 직무감찰을 하지만 나머지 1-7국의 회계감사와 분리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윤성식 교수도 미국에서도 행정부에 자유재량을 주되 공무원들의 부정을 막기 감사원이 만들어졌다며 부정 적발보다는 정책평가로 감사원 업무 방향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2003년 당시 기준 우리나라 공무원들이 감사받은 횟수와 날짜는 감사원 감사 연평균 1회에 7일, 상급단체 감사에 연평균 2회에 6일, 기타 감사가 20회에 55일이었다. 한해 24회 68일 동안 감사를 받고 있으니, 일을 위해 감사를 받는지 감사받기 위해 일을 하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이러니 공무원의 복지부동이 만연하고 “감사 때문에 일 못하겠다”는 불평이 나올 수밖에 없다.
노 대통령이 국회 기능을 지원하기 위한 감사원의 역할 모색, 국가적 평가인프라 구축, 공무원의 창의적·적극적 업무를 유인할 방안 마련, 행정에 대한 시민통제 또는 시민참여 방안 마련까지 네가지를 주문하며 업무보고가 마무리됐다.
몇달 뒤 2003년 8월 임기가 끝난 이종남 감사원장의 후임으로 윤성식 교수가 깜짝 지명됐다. 윤 교수는 한국과 미국 대학에서 행정학, 경제학, 경영학, 회계학을 공부한 박학다식한 인재였다. 전공과 연구업적, 개혁성까지 딱 적임이었다. 그런데도 국회 청문회 과정에서 한나라당이 기어코 낙마시키고 말았다. 다른 것도 아닌 초등학교 성적이 나쁜 걸 트집 잡았으니 기가 막혔다. 어릴 때 공부 못했던 학생이 대기만성했으면 오히려 상을 줘야 하는 것 아닌가. 대국적으로 정치하지 않고 오직 당리당략에 사로잡혀 닭싸움하듯 정치하는 건 우리나라 정당의 고질적인 문제였다.
끝으로 윤석열 정부 업무보고에 대해 한 마디. 윤 대통령은 지난해 장관 1인만 참석시켜 총리, 비서실장 등 4~5인이 단출하게 업무보고를 받았다. 참여정부의 수십명이 참석한 토론식 보고와는 너무 달랐다. 이래서야 무슨 보고가 제대로 되겠는가. 대통령이 국정 파악에 자신이 없어 그런 것 아니겠냐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런데 며칠 전 발표된 역대 대통령 취임 1주년 국민 지지율을 보니 1위 문재인(78%), 2위 김대중(60%), 3위 박근혜(57%), 4위 김영삼(55%), 5위 노태우(45%), 6위 윤석열(35%), 7위 이명박(34%)에 이어 노무현(25%)이 꼴찌라고 한다. 참여정부는 사면초가였고, 보수뿐만 아니라 진보도 공격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은 나중에 ‘역대 대통령 중 가장 존경하는 인물’ 조사에서 1, 2위를 다투었다. 이걸 보면 당대 지지율과 역사적 지지율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릴 때 공부 못해도 나중에 석학이 되는 경우가 있듯이 대통령도 당대에 욕먹더라도 나중에 역사적 인정을 받는 경우가 있다. 당대 지지율보다는 역사적 지지율이 훨씬 중요하다.
필자 이정우: 1950년 대구에서 나고 자랐다. 1974년 서울대 경제학과 학·석사를 마친 뒤 1983년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7~2015년 경북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한 뒤 명예교수를 맡고 있다. 2003~05년 참여정부 초대 정책실장, 정책기획위원장 겸 정책특보를 지냈다. 공정하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고자 끊임없이 공부하는 경제학자를 자임하고 있다. ‘참여정부 천일야화’ 제목은 그의 친필이다. opini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