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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광주의 기동타격대, 파리의 상퀼로트

등록 2023-05-22 18:48수정 2023-05-23 02:39

​1980년 5·18항쟁 당시 계엄군들이 광주 시내에서 시민들을 쫓고 있다. 5·18기념재단 제공
​1980년 5·18항쟁 당시 계엄군들이 광주 시내에서 시민들을 쫓고 있다. 5·18기념재단 제공

[숨&결] 이광이 | 잡글 쓰는 작가

5·18 관련 특별한 책 한 권이 지난해 12월 나왔다. 5·18기록관이 연작으로 펴내고 있는 ‘10일의 기억―1980.05.27 도청의 마지막을 지킨 사람들’ 중 제4권 <5·18기동타격대 31인의 기억>이다. 낯선 이름의 기동타격대, 그들은 누구인가?

26일은 광주항쟁 아흐렛날, 계엄군이 도청을 무력진압하기 하루 전날이다. 긴장감이 오르는 오후 3시, 항쟁지도부는 기동타격대를 편성했다. 임무는 시내 순찰, 계엄군 동태 파악, 그리고 도청 사수. 7개 조 40여명의 무장결사대였다. 대원증을 발급받고 전투경찰복 차림에 방석모를 썼다. 전사했을 때 신원 확인을 위해 이름과 주소, 연락처를 쓴 쪽지를 주머니에 간직했다. 1965년생 안용순이 제일 어리고, 고등학생 또래가 서넛, 대부분 20~30대였다. 학력은 부대장 이재호가 유일한 대졸이고, 국졸이나 중고 퇴학이다. 직업은 양화공이 많고, 재단사·노가다·트럭·조수·용접공·자개공·다방 디제이, 무직도 여럿이다. 이들은 항쟁 기간 순찰을 하고 주검을 수습하는 ‘기동순찰대’ 일을 했다.

2조 김삼규는 형이 계엄군 총에 맞아 죽었다. “이건 전쟁이다, 원수를 갚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래서 광주공원에 가서 총을 들었다”고 구술했다. 비슷한 일을 겪은 사람들이 시민군이 됐다. 5조 남영관은 도청에 집중된 주검들을 수습했다. 머리가 깨지고, 한쪽 눈알이 없고, 얼굴이 틀어진, 초여름 썩기 시작한 몸을 염하여 태극기로 덮는 일을 했다. 구술을 받아 집필한 박해현 연구원은 ‘이런 일을 기동순찰대원들이 했다. 참혹한 시신을 직접 수습한 이들의 경험은 끝까지 죽음을 무릅쓴 항쟁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였다’고 서문에서 쓰고 있다.

오후 6시, 대변인 윤상원이 “우리는 오늘 패배하지만 내일의 역사는 우리를 승리자로 만들 것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귀청한 시각. 기동타격대원들은 주먹밥으로 최후의 만찬을 들고 현장에 투입됐다. 27일 새벽, 1조는 한국은행 앞에서 계엄군과 총격전을 벌이다 체포. 2조는 터미널 근처에서 계엄군의 집중사격을 받고 체포. 3조는 도청 정문에서 기습 공격을 받아 3명 전사. 4조는 도청 2층 민원실에서 항전하다 체포 뒤 3명 행불. 5조는 금남로에서 위협사격을 받고 체포. 6조는 옛 시청사거리에서 항전하다 조장 박인수 피격. 7조는 도청 근처에서 트럭에 탄 채로 체포됐다. 기동타격대는 26일 15시 창설해 27일 06시까지 절체절명의 15시간을 옥쇄했다. 이날 도청 안에서 16명이 피격 사망했다. 대원들은 사망·행불 6명을 포함, 10여명이 총상을 입었다. 산 사람들은 전원 군사재판에 회부돼 내란죄로 복역했다.

당시 수습위원 고 윤영규 선생의 1997년 구술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더 큰 희생을 막으려고 무기를 회수했는데 이들은 끝까지 총을 내놓지 않았어요. 그중 한 사람이 이런 말을 합디다. ‘선생들만 애국자요? 우리도 애국 한번 합시다’, 그 말을 듣고 망치로 얻어맞은 충격을 받았어요. 무등갱생원 사람들이 한 그 말이 평생 내 가슴을 찔러요. 지금도 여전히 진짜 애국자들은 구두닦이, 넝마주이 했던 그네들이고 우리는 가짜였구나,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어요.”

기동타격대는 프랑스혁명의 ‘상퀼로트’(Sans-culotte)를 닮았다. 상퀼로트는 귀족들이 착용하는 속바지를 입지 않은 사람, 한마디로 ‘상놈’이라는 뜻인데 정작 혁명은 파리의 빈민 대중인 그들이 이끌었다. 메린 윌리엄스는 ‘그들은 불량배인가? (…) 공화국의 안전을 위해 자신의 마지막 피 한 방울을 흘릴 줄 아는 사람, 혁명의 모든 적들의 귀를 자를 날카로운 사브르를 항상 지니고 있던 사람’(<상퀼로트는 누구인가?>)이라고 썼다.

‘우리도 애국 한번 합시다’, 이 말투에서 구한말 창의군의 냄새가 난다. 그렇게 말하면 꼭 그렇게 돼버릴 것 같아 차마 뱉지 못하는 말, 양아치. 지만원씨가 ‘양아치’라고 했던 기동타격대는 마지막 순간까지 등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5·18의 주체였고, 민중항쟁의 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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