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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남종영의 인간의 그늘에서] 슈퍼 저탄소 소는 억울하다

등록 2023-05-24 18:26수정 2023-05-24 19:06

인간의 그늘에서
과거 가축 개량의 목표는 ‘점도 많은 고기를 얻는 것’이었는데, 최근 소와 관련해서는 ‘탄소를 적게 배출하는 소’로 바뀌었다. 남종영 기자
과거 가축 개량의 목표는 ‘점도 많은 고기를 얻는 것’이었는데, 최근 소와 관련해서는 ‘탄소를 적게 배출하는 소’로 바뀌었다. 남종영 기자

남종영 | 기후변화팀 기자

인간이 지구의 물리·화학적 시스템을 바꿀 정도로 지질학적 초강대자가 되어 자연사를 움직이는 지금의 시대를 ‘인류세’라고 한다. 인간으로 인해 기온이 높아지고 해수면이 상승하는 등 자연의 변화와 더불어 동물 또한 진화의 중요한 분기점을 통과 중이다. 평생 케이지에 갇힌 닭은 비대해졌고, 도시로 나온 여우는 먹이를 구걸하고, 북극곰은 땀을 뻘뻘 흘리는 얼음 위에서 멸종을 앞두고 있다.

또 다른 문제의 동물은 소다. 기후위기가 심해지면서 ‘온실가스 배출원’이자 ‘기후악당’으로 취급받고 있다. 식품 1㎏ 만드는 데 배출되는 온실가스가 1㎏일 때, 온실가스 배출계수가 1이라고 한다. 소고기의 배출계수는 16.6인데, 소고기 1㎏을 만들 때 온실가스 16.6㎏이 배출된다는 뜻이다. 쌀의 배출계수 0.8이다. 소고기가 쌀보다 단위 무게당 20배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셈이다.(물론 우리가 밥 한그릇 먹듯이 소고기 한그릇을 먹진 않는다,)

이렇게 온실가스가 많이 나오는 이유는 소가 반추동물이기 때문이다. 반추동물은 다른 동물은 먹을 수 없는 풀을 에너지로 만드는 특별한 능력을 지녔다. 장내 미생물의 도움을 받아 거친 풀을 소화하고 이 과정에서 생성된 메탄을 트림으로 내보낸다.

메탄은 이산화탄소보다 빨리 사라지긴 하지만 효과는 더 센 온실가스다. 상황이 이런지라 세계 각국은 소에서 나오는 메탄을 줄이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있다. 사료에 섞어 먹일 메탄저감제를 개발하고, 최적의 운동량과 도축 월령을 찾아내고, 유전자를 분석해 메탄 적게 내는 소끼리 교배한다. 이렇게 소를 개량해 자국의 고유 배출계수를 설정하고 기후변화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는 게 국가적 목표가 됐다. 온실가스 걱정 없는 소고기라며 많이 먹도록 하는 건 산업계의 목표다.

영국 엘지시(LGC·생화학 분야 표준기관)의 짐 오먼드 박사는 이를 ‘슈퍼 저탄소 소’ 만들기라고 한다. ‘고기 많은 소’를 만들던 시절은 지났다. 현대 축산은 기술에 의존해 기후변화를 극복하려는 기후공학의 세속적 실천장이 돼버렸다.

최근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서 ‘탄소중립을 위한 식품소비 단계의 온실가스 감축 대안과 효과 분석’ 보고서를 냈다. 국내에선 식품의 전주기 온실가스를 분석한 보고서가 없었던지라 반가웠다.

보고서를 보면, 한국인의 먹고 마시는 행위와 연관된 일체의 활동에서 2019년 한해 6억8639만t의 온실가스를 배출했다. 국내 온실가스 총량의 16%에 이른다. 소고기를 예로 들자면, 사료 작물의 재배, 이를 위한 비료의 생산과 운송, 소가 내뿜는 메탄, 분뇨에서 나오는 아산화질소, 식품 가공업체에서 쓰는 전기 그리고 가공식품 운송 등 식품 생산→가공→유통→소비 단계의 여러 행위들이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흥미로운 것은 식품의 가공·유통·소비 단계에서 나오는 배출량이 작물 재배나 가축 사육 등 1차 생산 단계에서 나오는 배출량의 네배나 된다는 사실이다. 연구팀은 “식품부문의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서는 식품 가공과 소비 부문의 에너지 사용과 관련된 감축 전략 마련이 필수”라고 지적했다.

그런데도 농림축산식품부의 기후변화 대책은 슈퍼 저탄소 소를 만드는 것 같은 식품 생산 단계에 집중돼 있다. 기후위기는 사람의 잘못으로 일어났는데, 정작 사람은 안 바꾸고 소만 바꾸려 해선 문제를 풀 수 없다.

보고서는 나름대로 대안을 추려 제시했다. 단 하나의 원인이 있고 그것만 해결하면 된다는 단일 관점 본능에 빠지지 않고, 기업의 이윤, 개인의 욕망과 자연이 얽혀 형성되는 기후위기 복잡계에서 쓸 수 있는 다양한 대안을 제시했다. 가장 효과가 큰 건 저탄소 식생활을 권장하는 영상을 보여줘 사람의 태도를 바꾸는 캠페인이었다. 이렇게 할 때 온실가스 감축량은 207만t으로, 2050년 농업분야 감축 목표의 22.3%를 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 네명 중 한명이 하루에 한끼 육류가 적은 지역 기반의 저탄소 식단을 따르면 어떻게 될까? 교통수단에서 나오는 온실가스 배출량(2018년 기준)의 3분의 2를 줄일 수 있다. 사람들의 인식 개선을 통해 대체육 소비를 늘리고 식품 폐기물을 줄이는 것도 각각 두번째, 세번째로 좋은 온실가스 감축 방안이었다.

현대인의 과식 성향 그리고 과도한 가공식품과 육식 소비, 이를 조장하며 성장해온 식품산업과 손도 대지 않고 쓰레기통에 처박히는 음식까지, 우리의 변덕스러운 혀와 돈을 벌려는 욕망이 기후위기를 일으켰다. 부려먹고 잡아먹더니 이제는 소를 개조하려고 한다. 소는 지금도 실험실에 들어간다.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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