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동학 전 최고위원과 박성민 전 최고위원 등 청년 정치인들이 지난 12일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당 쇄신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돈봉투 사건과 가상자산 의혹 등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연합뉴스
[숨&결] 박성민 | 전 청와대 청년비서관
‘국민은 언제나 옳다.’ ‘민심은 냉정하고 정확한 것이다.’
정치권에 들어와 이 두 문장이 실재하는 진실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2020년 총선, 2021년 서울·부산시장 재보궐선거, 이후 2022년 대선을 지나며 ‘국민의 눈은 속일 수가 없다’는 확신을 얻었다.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가 전세계를 강타했고 국민은 성공적인 방역 정책의 연속적 추진을 위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 지지를 몰아줬다. 정략적 목적으로 오로지 상대 당을 공격하고 극우세력과 결탁해 각종 실언과 집회만 일삼던 당시 야당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은 처참하게 심판받았다.
하지만 2021년 민주당 소속 지자체장 성비위 문제가 연이어 발생했고, 이후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참패했다. 당시 민주당에서 선거전략과 관련한 여러 이야기가 나왔는데, 결과적으로 리스크(성비위 문제)를 최대한 드러내지 않고 상대 후보를 강하게 공격하는 네거티브 전략을 사용했다. 정치 초보였던 나 또한 유세 현장에 갈 때마다 좁혀지지 않는 격차와 싸늘한 민심을 느낄 수 있었지만, 내부에선 여론조사 결과를 부정하며 ‘실제 투표에선 근소한 차이로 이길 것’이라는 근거 없는 낭설을 떠드는 이들이 늘어나더니 서로가 서로를 안심시켰다.
상대 후보를 더 자극적인 말로 공격하고 우리의 잘못을 외면할수록 우리의 한계는 드러난다. ‘그래서 뭐? 너희가 그런 말 할 자격이 있나’라는 게 시민들의 반응이다. 우리 잘못을 국민이 눈을 크게 뜨고 보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뿌리부터 바뀌지 않고는 상대의 실수나 결함을 양분 삼아 성장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이제 더는 ‘왜 우리만 갖고 그러냐, 상대가 더 나쁘다’와 같은 전략은 힘을 쓸 수 없다. 우리 안의 문제를 직시하고 인정해 바뀌겠다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한, 상대를 향해 쏘는 화살은 그대로 우리에게 돌아온다.
최근 2021년 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의혹과 김남국 의원 가상자산(암호화폐) 거래 사실이 불거지며 민주당을 향한 실망과 비판이 커지고 있다. 그런데도 민주당의 도덕성이 회복 불가한 수준으로 훼손됐다는 비판에 ‘왜 우리만 도덕적이어야 하는가, 우리는 왜 늘 손해만 보는가’라는 일부 소속 의원들의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고 한다.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염치나, 도리가 없음을 자인하는 말들이 부끄러움도 없이 나오는 현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지난 12일 국회에서 몇몇 민주당 청년 정치인들과 함께 돈봉투 사건 진상조사단 구성과 소속 의원 가상자산 보유 현황 전수조사 등을 주장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이후 쏟아지는 악성댓글과 메시지, 온라인상에서 ‘코인 8적’이라 불리며 조롱당했지만 솔직히 큰 타격은 없었다. 비판에 익숙하기도 했고, 올바른 일이라고 생각했기에 후회는 없었다. 하지만 이후 다른 청년들이 집단으로 비난받고, 필요한 말을 해야 할 때 주저하게 만들 배타적인 분위기가 조성되자 위기감이 느껴졌다. 그런 움직임들이 당의 자정작용을 해치고 당내 민주주의를 후퇴시킬 수 있기 때문에.
샤츠슈나이더의 <절반의 인민주권>에서는 정당을 기반으로 한 민주정치가 기능하는 구조를 이렇게 설명한다. ‘얼핏 보기에는 전혀 조직되지 않고, 무질서하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대합실의 군중들이 저마다의 방향을 찾아가는 건 몇개의 개찰구와 시간표 때문이다.’ 지금 우리의 정치는 과연 국민에게 어떤 개찰구와 어떤 시간표를 제시하고 있을까. 옳은 길을 찾아가게 하긴커녕 외려 국민의 눈을 가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지난 23일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14주기였다. “자신의 안일과 입신을 위해 대의를 저버리지 않는다. 수단과 방법은 타협하고 조정할 수 있지만, 원칙과 신념은 결코 포기할 수 없다”던 노 전 대통령의 정신을 다시 떠올린다. 마지막 남은 정치의 가능성이 있다면, 흔들리지 않는 원칙과 신념을 지키는 길에서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염치 있고, 부끄러움을 아는 정치를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