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국내에서도 낯설지 않은
‘길거리 피아노’(Street Piano)의 효시는 영국 설치미술가 루크 제럼의 프로젝트 ‘플레이 미, 아임 유어스’(Play me, I’m yours)였다. 매주 다니던 빨래방에서 그 누구도 서로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공공장소에 피아노를 갖다놓으면 사람들이 모이고 자연스레 대화를 나눌 것이란 발상이었다. 2008년 영국 버밍엄에서 시작된 프로젝트는 금새 다른 도시들로 퍼져 나갔다. 삭막한 도시에서 ‘외로움’이란 열쇳말은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다.
전 세계 최초로 외로움 담당 장관을 둔 곳도 영국이다. 2018년 1월 문화·미디어·스포츠부를 외로움 담당 부처로 지정하고, 해당 부처의 정무차관이 외로움 담당 장관을 맡도록 했다. 당시 영국 인구 6600만여명 가운데 900만명(약 14%) 이상이 항상 또는 자주 외로움을 느낀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약 20만명의 노인은 한달 이상 친구·친척과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영국 정부는 국민들이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에 대처하는 방법을 제시하겠다고 선언했다. 2018년 10월 외로움 대비 범정부 전략 ‘연결된 사회’를 발표하며, 광범위한 실태 파악과 외로움 극복 네트워크 구축 등에 나섰다. 영국 정부는 그해 사업 예산으로 2천만파운드(약 328억원)의 기금을 조성했다.
영국 윌리엄 왕자 부부가 지난해 5월13일 10시59분에 영국 500여개 라디오 방송국에서 진행된 ‘정신 건강 미닛’ 1분 방송을 통해, 외로움을 느끼는 누군가를 도울 수 있도록 작은 친절의 행동에 나서자고 호소했다. 영국 외로움담당부 홈페이지 갈무리.
2019년부터 진행된 ‘외로움에 대해 이야기 하기’ 캠페인은 고독과 고립에 대한 ‘낙인’을 줄이기 위한 것이었다. 지난해 5월에는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 500여개를 1분간 중단하고 외로움을 느끼는 친구에게 손을 내밀도록 독려하기도 했다. 또 영국 정부는 의료기관의 접수 담당자를 대상으로 고독사 위험에 처한 이들을 식별할 수 있는 교육을 실시하는가 하면, 차를 타고 가는 동안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돕는 ‘행복 택시’ 프로젝트를 벌이기도 했다. 위성을 이용한 ‘케어 뷰’(Care View) 앱은 지역사회에서 고립된 이들을 찾아 나서는 수단으로 활용된다. 항상 닫혀 있는 커튼 등 이웃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징후가 발견되면 전문 자원봉사자들과 연결되도록 했다.
영국의 ‘행복 택시’ 프로젝트. 외로움을 느끼는 이들이 차를 타고 가는 동안 대화를 하면서 고민을 나눌 수 있도록 배려한다는 것이 취지다. 영국 외로움담당부 홈페이지 갈무리.
일본도 2021년 내각관방에 고독·고립대책 담당 부서를 설치했다. 집안에만 틀어박혀 지내는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에 대한 대책을 넘어서 고독·고립에 관련된 상황별로 약 150개의 지원 제도를 두고 있다. 영국과 일본의 외로움 담당 장관들은 2021년 6월 온라인 회담을 열어, 양국 간 공조에도 나서기로 했다. 프랑스에서는 세대 간(고령자-청년) 동거 프로젝트를 실시하고 있는데, 외로움 퇴치가 주된 목적이다.
우리 정부는 지난 연말 처음으로 정부 차원의 고독사 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2021년 기준 고독사로 숨진 이들은 3378명인데, 최근 5년간 증가 추세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사회관계망 지표(2022년)를 보면, ‘도움이 필요할 때 의지할 사람이 있다’고 한 국민이 영국과 일본은 각각 93%, 89%인데 견줘 우리는 80%에 그친다. 지난 18일 정부가 ‘제1차 고독사 예방 기본계획’을 발표한 배경이다.
지난해 소속 공무원들의 잇단 극단 선택 이후, 세종시는 ‘외로움전담관’을 두기로 했다. 직원들의 정신건강을 일상적으로 살피겠다는 취지다. 이달부터 전문 심리상담가 2명이 근무를 시작한 데 이어, 6월 말부터는 외로움전담관이 본격 업무에 투입된다. 고독·고립에 대한 국가 차원의 관심과 대처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황보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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