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을 약속하던 거대 서사들이 붕괴한 시대다. 일상의 작은 실천을 통해 우리가 정의한 대로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비전은 매력적이다. 작은 실천이 단단한 구조에 ‘균열’을 낼 것이라고. 하지만 균열이 전복은 아니다. 누추한 현실과 구조는 여전하고, 때로 더 강화되곤 한다. 나쁜 기업에 대한 불매운동을 응원해도 자본주의가 응징되지는 않는다. 마을 공동체의 삶이 아름다워도 세상의 차별과 불평등은 엄연하다.
조형근 | 사회학자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봤다. 그들은 더 이상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생각할 시간은 이미 왔다가 지나갔다. (…) 이제 오직 한가지만이 중요했다. 두 사람은 그것이 서로가 서로에게 요구할 수 있는 유일한 것임을 알았다. (…) 본능적으로 그들은 ‘작은 것들’에 집착했다. ‘큰 것들’은 안에 도사리고 있지도 않았다. 자신들에게는 갈 곳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다. 미래도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작은 것들에 집착했다. 그들은 서로의 엉덩이에 난 개미 물린 자국을 보고 웃었다. 잎사귀 끝에서 미끄러지는 어설픈 애벌레에, 혼자서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뒤집어진 딱정벌레에, 강에서 늘 벨루타를 찾아내어 물곤 하는 작은 물고기 한쌍에.’
인도의 작가이자 사회운동가 아룬다티 로이의 소설 <작은 것들의 신>에서 연인들이 사랑을 나누는 장면이다. 불가촉천민 남성 노동자 벨루타와 공장주의 여동생, 쌍둥이 남매를 키우는 이혼녀 암무가 서로 사랑한다. 카스트제도와 성차별의 관습을 어기고 몰래 사랑하는 둘은 그저 하루의 기쁨에, 작디작은 것들에 몰두한다.
금지된 사랑의 끝은 슬프다. 불가촉천민이란 운명에 충심인 벨루타의 아버지는 아들의 밀회를 목격하고 충격받아 공장주 집에 찾아가 사실을 털어놓고 자식을 죽이겠다며 울부짖는다. 그사이 영국에서 온 공장주의 딸이 쌍둥이 남매와 놀다가 익사한다. 공장주 집안 사람들은 벨루타가 아이들을 유괴하다가 공장주의 딸을 익사하게 하고, 암무를 성폭행했다는 누명을 씌운다. 벨루타도 암무도 비극적 최후를 맞는다.
아름답고 처연한 문장들 사이로 굵직한 주제들이 관통한다. 수천년 이어온 카스트제도의 덫이, 성차별의 벽이, 제국주의의 유산이 삶을 파괴한다. 공산당조차 순수하지 않다. 지역 공산당 지도자는 공장주와의 거래로 얻는 개인적 이득을 지키려 하고, 공장 노동자 중 유일한 정식 공산당원인 벨루타를 해고하라고 공장주에게 권한다. 불가촉천민에 대한 다른 노동자들의 반감에 편승한다. 누명 쓴 벨루타를 보호하지도 않는다.
<작은 것들의 신>은 구원이나 계몽, 해방을 약속하는 큰 이야기들이 어떻게 “역사의 악령”이 되어 “이 세상에서 아주 작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을 뿐인 약한 자들의 삶을 파괴하는지 증언한다. 단지 비극성에 대한 고발에 그치지 않는 데 힘이 있다. 이 약하고 사소한 존재들은 각자의 모양대로 세상에 “구멍”을 남긴다. 구멍은 그들의 죽음 후에도 뚫린 채 남아 세상에 균열을 내고 무언가를 남긴다. 그 구멍 속에 “작은 것들의 신”이 있다. 작가는 “세상의 지극히 작은 것과 큰 것 사이의 연관성을 밝혀주고, 그 연관성이 어떻게 인간 삶을 형성하고 인간관계를 결정짓는가를 보여주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밝힌다.
미국의 사회학자 제프리 골드파브는 <작은 것들의 정치>에서 암무와 벨루타의 사랑을 묘사하면서 두 연인이 자신들의 존엄과 행복을 구원하기 위해 수천년간 자신들을 규정해온 카스트 질서로부터 자유로운 그들만의 자율적 세계를 창조했다고 말한다. 자신들의 사랑을 통해 일상적 삶의 작은 상호작용 속에 배태된 자유의 잠재력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골드파브는 1968년 ‘자유의 봄’ 당시 동구권 여러 나라에서 일어났던 일상생활에서의 작은 실천들이 어떻게 1989년 이후 공산당 붕괴와 이행에 영향을 미쳤는지 분석한다. 반공주의 같은 큰 슬로건이 아니라 식탁에서의 정담이, 합법처럼 진행된 비합법 서점에서의 책 유통이, 비정치적인 문학클럽에서의 토론이 세상을 바꾸는 밑거름이 됐다. 2001년 9·11테러 이후 미국의 일방적인 ‘테러와의 전쟁’에 맞서는 사람들의 실천도 그런 방식이었다. 온라인에서 생겨난 몇몇 사람들의 목소리가 전세계로 확산하면서 반전시위와 행동으로 이어졌다. 사람들이 마치 자유로운 사회에서 사는 것처럼 행위하자 자유로운 사회가 실제로 도래했다. 상황을 새롭게 정의하자 상황이 바뀌었다.
해방을 약속하던 거대 서사들이 붕괴한 시대다. 일상의 작은 실천을 통해 우리가 정의한 대로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비전은 매력적이다. 작은 실천이 단단한 구조에 ‘균열’을 낼 것이라고. 하지만 균열이 전복은 아니다. 누추한 현실과 구조는 여전하고, 때로 더 강화되곤 한다. 나쁜 기업에 대한 불매운동을 응원해도 자본주의가 응징되지는 않는다. 마을 공동체의 삶이 아름다워도 세상의 차별과 불평등은 엄연하다.
오히려 정반대 시각도 있다. 철학자 미셸 푸코는 권력이 미시적인 것 속에서 작동한다고 통찰한다. 우리의 일상에, 사소한 삶 속에 권력이 늘 작동하고 있다. 권력에서 자유로운 외부 따위란 없다. 이제 푸코에게 묻게 된다. 권력의 외부가 불가능하다면, 우리의 작은 실천들은 어떻게 가능한가?
결국 이 작은 공간조차 경합의 장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큰 것과 작은 것이, 권력과 욕망이, 저항과 포섭이 얽히고 다투는. 작은 것에 주목하는 이유는 여기에 자유의 가능성이 충만해서가 아니다. 여기서 사랑하고 사람답게 살고 싶어서다. 자유롭고 평등한 우정의 관계는 큰 구조를 바꾼 다음 만들어야 할 나중의 과제가 아니다. 큰 것과 작은 것 사이의 딜레마를 논리로 해결하기는 어려워도 우리에겐 할 수 있는 것이 있다.
지난 5월 초, 우리 마을에서는 큰 잔치가 열렸다. 결혼 30주년을 맞은 이웃의 사연이 시발점이 됐다. 그 시절 노동운동을 하며 감옥을 오가다 결혼식을 못 올렸던 것. 이웃들이 ‘리마인드 웨딩’을 치러주겠다고 나섰다. 폐가 된다며 부부가 저어한 덕분에 모두가 주인공이 되는 ‘아모르 파티’가 됐다. 우리 집 마당에 무대와 런웨이, 객석을 만들고, 세살부터 여든까지 십시일반, 정성과 재주를 모아 파티를 열었다. 세대와 성별, 국적과 빈부 차이를 뛰어넘어 잠시간 평등한 축제의 공동체를 경험한 느낌이다. 이렇게 ‘작은 것들의 신’이 우리 마을에 잠시 깃들었다. 간혹 칼럼에서 사는 마을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이것만이 올바른 삶의 방식이라거나, 이렇게 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하려 함이 아니다. ‘아모르 파티’(Amor fati), 운명을 사랑한다면 누구든, 언제 어디서든 사랑하며 살 수 있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