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권’은 번호·그림 등을 기입한 표로, 추첨을 통해 일치하는 표에 대해 상금·상품을 주는 것을 말한다. 서양에선 로마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BC 63~AD 14)가 로마 복구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연회에서 복권을 팔고 노예·선박 등을 나눠줬으며, 동양에선 기원전 100년께 중국 진나라에서 만리장성 축조 등 국방비를 모으기 위해 복권을 발행했다는 기록이 있다.
‘로또 복권’은 16세기 이탈리아를 그 기원으로 본다. 1519년 제노바 지방의회선거는 후보자 90명의 이름 중 5명을 제비 뽑는 방식으로 진행했는데, 베네데토 젠틸레가 이에 착안해 90개 번호 중 5개를 추첨하는 로또 5/90 게임을 만들었다고 한다. ‘운명’이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로토’(Lotto)가 복권을 의미하는 영어 ‘로터리’(Lottery)의 어원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한국의 첫 정식 복권은 ‘올림픽 후원권’이다. 1947년 12월 런던올림픽대회 참가 경비를 마련하려고 후원회가 액면가 100원짜리를 140만장 발행했다. 1등 상금은 100만원 남짓이었는데, 쌀이 한 가마니에 8300원이던 시절이니 당첨되면 말 그대로 ‘대박’이었다.
지난해 우리나라 복권 판매액(6조4292억원)은 역대 최대로, 전년(5조9753억원)보다 7.6%나 늘었다. 종류별로는 로또(5조4468억원)가 단연 1위였다. 만 19살 이상 성인 가운데 1년 내 복권을 사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56.5%나 됐다. 전체 성인 인구 4300만명 중 절반 이상이 복권을 산 셈이니, 이쯤 되면 ‘국민 소비문화’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최근 ‘로또 복권 조작 논란’으로 나라가 떠들썩했다. 1057회차(3월4일)에서 2등 당첨이 무려 664건이나 쏟아졌고, 이 중 103건이 서울 동대문구의 한 판매점에서 나온 까닭이다. 논란이 확산하자 복권위원회는 오는 10일 국민 150명이 참관하는 ‘대국민 로또 추첨 공개 생방송’을 열기로 했다.
‘복권은 경제가 어려울수록 더 잘 팔린다’고 한다. 실제 기획재정부의 ‘2022년 복권 인식도 조사’를 보면, 복권이 좋은 이유에 대해 “희망·기대를 가질 수 있어서”라는 응답이 40.5%(전년도 39.2%)로 1위를 차지했다. 결국 ‘로또 조작 논란’에 국민이 앞다퉈 목소리를 높인 것은, 어려운 시기 운에 기대어 걸었던 실낱같은 희망마저 무너졌다는 분노 탓이었던 셈이다.
유선희 산업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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