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처음부터 노조에 대한 정서적 반감과 노-노 갈등을 이용해서 지지층을 결집하고 내년 총선에서 이기려는 선거 전술 아니었을까? 한상혁 위원장 면직도 방송을 서둘러 장악하기 위한 정지 작업 아니었을까?
7일 오후 전남 광양시 금호동 희망1길에서 한국노총 긴급 투쟁결의대회가 열리고 있다. 한국노총은 윤석열 정권 심판투쟁에 돌입했다. 연합뉴스
성한용 | 정치부 선임기자
윤석열 대통령은 올해 신년사에서 노동 개혁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웠다. 노동 개혁의 출발점은 노사 법치주의라고 했다. 노사 법치주의야말로 불필요한 쟁의와 갈등을 예방하고 진정으로 노동의 가치를 존중할 수 있는 길이라고 했다. 동의할 수는 없지만, 그 나름대로 일리는 있어 보였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5월23일 국무회의에서 민주노총 건설노조의 서울 도심 집회를 콕 집어서 강하게 비판했다. “집회, 시위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타인의 자유와 기본권을 침해하거나 공공질서를 무너뜨리는 행위까지 정당화된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했다. 동의할 수는 없지만, 그 나름대로 일리는 있어 보였다.
하지만 그 뒤는 이상했다. “과거 (문재인) 정부가 불법 집회, 불법 시위에 대해서도 법 집행 발동을 사실상 포기한 결과, 확성기 소음, 도로 점거 등 국민이 불편을 감내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고 있다”고 했다.
그런가? 경찰이 집회와 시위 현장에서 법 집행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까지 전임자를 탓하고 있다.
어쨌든 대통령의 ‘준엄한’ 지시는 즉시 위력을 발휘했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5월31일 민주노총 집회를 앞두고 서울 남대문경찰서에서 열린 경비대책회의에 기동복을 입고 나타났다. 캡사이신(최루액)을 현장 지휘관 판단으로 사용하라고 지시했다. 이태원 참사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경찰의 진압 방식도 확 달라졌다. 민주노총이 설치한 고 양회동씨 분향소를 곧바로 철거했다. 포스코 광양제철소에서 고공 농성을 벌이며 저항하던 김준영 금속노련 사무처장 머리를 진압봉으로 때려서 연행했다.
경찰의 진압이 지나쳤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명백한 불법을 경찰이 그냥 두고 볼 수는 없는 일이다. 현장 판단과 매뉴얼에 따라 단호하면서도 냉정하게 법을 집행하면 된다. 고도로 훈련된 경찰은 그래서 필요하다.
그러나 경찰관도 사람이다. 대통령이나 경찰청장이 이런 식으로 자꾸 몰아붙이면 사고가 날 위험이 점점 커진다. 경찰관들도 위험해진다. 걱정이다.
경찰의 진압은 그렇다고 치자. 윤석열 대통령이 공언했던 노동 개혁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노동 개혁은 노·사·정의 대화와 합의, 그리고 국회 입법이 필요하다.
한국노총은 7일 긴급 중앙집행위원회를 열어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참여 중단을 결정했다. 7년5개월 만에 사회적 대화 기구의 문이 닫힌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에게 묘수가 있을까? 없는 것 같다. 정부·여당은 별로 걱정하는 분위기도 아니다. 이쯤 되니 ‘노동 개혁의 출발점은 노사 법치주의’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신년사가 진심이었는지도 의심스럽다.
혹시 처음부터 노조에 대한 정서적 반감과 노-노 갈등을 이용해서 지지층을 결집하고 내년 총선에서 이기려는 선거 전술 아니었을까?
윤석열 대통령은 임기 두달 남은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을 면직했다. “지휘·감독 책임이 있고, 본인이 직접 중대 범죄를 저질러 형사 소추되는 등 정상적인 직무 수행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명분이다. 역시 ‘법대로’ 논리다.
면직 처분이 법적으로 타당한 것인지는 법원에 의해 곧 가려질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도 2020년 검찰총장 시절 법무부의 정직 2개월 징계에 대해 법원에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해서 인용 결정을 받아낸 일이 있다.
하지만 정치적으로는 별 실익이 없는 면직을 도대체 왜 했는지 의문이다. 해답은 후임자 인선에 있는 것 같다.
윤석열 대선후보 선대위에서 미디어소통 특별위원장을 지낸 이동관 대외협력특보가 방송통신위원장 후임으로 거론되고 있다. 사실이라면 ‘독립적 운영’이 가장 중요한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에 대통령 특보를 낙하산으로 내려보내는 것이다.
그래서 의심스럽다. 결국 한상혁 위원장 면직도 방송을 서둘러 장악하기 위한 정지 작업 아니었을까?
법은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규범이다. 법 없이 공동체가 유지될 수 없지만, 법만으로 공동체가 유지될 수도 없다. 법무부 장관, 검찰총장, 경찰청장이 법치주의를 강조하는 것은 당연하다.
대통령은 정치인이다. 국정의 최고 책임자다. 법치에 머물면 안 된다. 비전을 제시하고 갈등을 조정하고 사회적 대타협을 이끌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만이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과제다. 가능할까?
shy9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