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8월 26일 수의를 입고 선고 공판을 기다리는 두 전직 대통령, 전두환과 노태우. 전씨는 1979년 12·12 군사 쿠데타와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무력진압을 통해 정권을 찬탈한 혐의로 구속되어 1997년 4월 대법원에서 반란죄와 내란죄가 확정되어 무기징역형과 추징금 2205억원을 선고받았다. 이후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의해 사면됐지만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박탈당했다. 사진공동취재단
국민의힘에는 박정희의 공화당, 전두환의 민정당에서 물려받은 복종 유전자가 있다. 위에서 결정하면 그냥 따른다. 우리는 쿠데타로 헌정을 중단시킨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군인 출신 대통령 시대를 오랫동안 살았다. 잘못하면 윤석열-한동훈 검사 출신 대통령 시대를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상상만 해도 눈앞이 캄캄하다.
성한용│정치부 선임기자
1979년과 1980년 2단계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신군부는 엘리트 집단이었다. 한국전쟁이 터진 뒤 1951년 경남 진해에서 육군사관학교 정규 4년제 1기로 입학했다. 부산에 피난 와 있던 우리나라 일류 학자들에게 배웠다. 임관 뒤에도 미국에 가서 특수전과 심리전 교육을 받았다.
엘리트 집단 일부의 비뚤어진 자부심은 하나회라는 군부 내 사조직 결성으로 이어졌다. 하나회의 뒷배를 봐주던 박정희 대통령이 쓰러지자 그들은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했다.
1987년 6월 정권이 위기에 몰리자 민정당 총재였던 전두환 대통령은 노태우 대표를 후계자로 지명했다. 1987년 12월 대선에서 노태우 후보가 당선됐다. 그러나 민심은 5공 청산을 요구했다. 노태우 대통령은 1988년 11월 전두환 전 대통령을 백담사로 보냈다.
김영삼 대통령은 하나회를 숙청했다. 5·18 특별법을 만들어 두 전직 대통령을 감옥으로 보냈다. 군인들이 물러난 공백을 검사들이 채워 나갔다.
검찰은 엘리트 집단이었다. 직접 수사권을 쥔 특수부 검사들은 자부심이 강했다. 임기 5년 대통령 권력을 우습게 생각했다. 김영삼 정권 때부터 “정권은 유한하고 검찰은 영원하다”라는 건배사를 외쳤다. 엘리트 집단 일부의 비뚤어진 자부심은 ‘윤석열 사단’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절제와 금도가 있는 검찰권 행사’는 사라졌다. 먼지털기 수사와 기소, 무죄 판결을 걱정하지 않는 풍토가 판을 쳤다. 윤석열 검사는 ‘살권수’(살아 있는 권력 수사)로 일가를 이루었다. 마침내 정권을 집어삼켰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5월2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독선·독단·독주로 위기에 몰린 윤석열 대통령이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세우려는 것 같다. 석과불식(碩果不食)이라는 말이 있다. 가장 큰 과일은 따 먹지 않고 두어 종자로 쓴다는 말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어지간히 급한 것 같다.
18일 국회의원-당협위원장 연석회의에서는 한동훈 비대위원장 찬성 의견이 훨씬 많았다. 그럴 줄 알았다. 국민의힘에는 박정희의 공화당, 전두환의 민정당에서 물려받은 복종 유전자가 있다. 위에서 결정하면 그냥 따른다.
1990년 3당 합당으로 유입된 통일민주당 유전자도 별로 도움이 안 될 것이다. 김영삼 대통령은 ‘민주당 구파’ 출신이다. 민주당 구파는 의리를 최고의 미덕으로 삼았다. 3당 합당 때 의원들이 거의 다 따라간 것도 그래서다.
한동훈 비대위가 들어서면 어떻게 될까? 총선에서 이길까? 쉽지 않을 것이다. 정치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선거도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더 큰 문제는 국정과 민생이다. 한동훈 장관은 타고난 검사다. 검사 시절 재계에서는 그를 ‘저승사자’라고 불렀다. 검사는 잘못을 찾아내서 벌주는 직업이다. 과거를 파헤치는 데 능하다. 미래의 일은 잘 모른다.
윤석열 대통령이 그랬듯이 한동훈 비대위원장도 그럴 것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어떻게든 감옥에 보내려고 할 것이다. 야당과 끝없이 싸울 것이다. 야당과 대화하지 않을 것이다. 타협하지 않을 것이다. 정치는 마비되고 민생은 피폐해질 것이다.
한동훈 비대위가 총선에서 이길 수도 있다. 선거는 전쟁이다. ‘손님 실수’로 이기는 경우도 있다. 민주당이 분열하거나 제풀에 주저앉으면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반사이익을 거둔다.
한동훈 비대위가 성공하면 윤석열 대통령에게 좋은 일일까? 그렇지도 않다고 본다. 지금 윤석열 대통령이 가진 절대 권력이 한동훈 비대위원장에게 이동할 것이다. 국민의힘 사람들의 하늘에는 두 개의 태양이 존재한 적이 없다. 레임덕이 빨라질 수 있다.
어느 쪽이든 윤석열 대통령에게 손해가 나는 일이다. 그런데도 자신의 아바타나 다름이 없는 한동훈 비대위원장을 밀어붙이는 이유가 뭘까?
지기 싫어서 그럴 것이다. 검사 출신도 정치를 잘할 수 있다고 증명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어리석은 생각이다. 정치인의 가장 큰 덕목은 국민에게 져주는 것이다. 민심을 거스르면 결국 큰 대가를 치른다. 민심은 검사 출신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을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쿠데타로 헌정을 중단시킨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군인 출신 대통령 시대를 오랫동안 살았다. 잘못하면 윤석열-한동훈 검사 출신 대통령 시대를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상상만 해도 눈앞이 캄캄하다.
“역사는 반복된다. 한 번은 비극으로, 또 한 번은 희극으로.”
카를 마르크스가 남긴 말이다. 아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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