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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15년 만에 다시 등장한 ‘괴담 몰이’

등록 2023-06-13 18:35수정 2023-06-14 10:59

도쿄전력이 후쿠시마 제1원전에 보관 중인 방사성 물질 오염수 바다 방류 설비 시운전을 시작한 12일 오후 국회 앞에서 ‘일본 방사성 오염수 해양투기 저지 2차 전국 행동의 날 전국 어민대회’가 열리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도쿄전력이 후쿠시마 제1원전에 보관 중인 방사성 물질 오염수 바다 방류 설비 시운전을 시작한 12일 오후 국회 앞에서 ‘일본 방사성 오염수 해양투기 저지 2차 전국 행동의 날 전국 어민대회’가 열리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전국 프리즘] 김기성 | 수도권데스크

대검찰청은 긴급회의를 열어 ‘인터넷 괴담’ 처벌에 대한 법리 검토와 수사지휘는 검찰이, 수사는 경찰이 각각 맡기로 했다. 대검 관계자는 “괴담에 대해 많은 사회적 혼란이 발생하고 있어 예의 주시 중이다. 전혀 근거가 없고 유포 과정 등에서 좀 심했던 것이 사실로 보여 가만히 두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경찰청 고위 관계자도 “부정확한 정보나, 사실과 다르게 정부 정책을 비난하는 글이 넘쳐나 심각한 문제로 판단하고 있다. 이를 찾아내 처벌할 것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놀라지 마시라. 위 기사는 2008년 5월6일 <한겨레> 기사 중 일부다. 지금처럼 ‘막강 파워’를 과시했던 당시 검찰과 경찰이 이른바 ‘광우병 파동’과 관련해 내놓은 일종의 사회안정 대책이었다. 유언비어 유포로 정치권과 국민 사이에 불필요한 갈등이 유발됨에 따라 사회적 혼란을 막기 위한 조처였던 셈이다.

그 후 15년이 흘렀다. 그리고 이제 다시 정부와 여당 수뇌부는 이런 말을 되풀이한다.

“민주당이 가짜뉴스와 괴담 정치에 심각하게 중독돼 사회를 극심한 혼란과 갈등으로 병들게 하고 있다. 과학이 아닌 괴담을 통해 불안감을 키우는 구태를 국민들께서 엄중히 심판해줄 것으로 확신한다.”(6월1일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

“미국산 쇠고기 먹으면 광우병 걸리고 다 죽는다는 광우병 사태와 똑같다. 생선과 해산물을 먹으면 위험해지고 소금값도 오를 것이라는 민주당의 주장에 과학적 근거가 어디 있느냐.”(6월7일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

“근거 없는 유언비어에 대응하고, 과감하고 지속적인 소비 촉진책으로 수산업계가 굳건히 버틸 힘을 만들어내겠다.”(6월7일 조승환 해양수산부 장관)

정리하면 ‘민주당과 일부 세력이 과학을 배척하고 부풀려 조작된 오염수 괴담 등으로 사회를 극심한 혼란과 갈등으로 몰아넣고 있다. 광우병 사태 때와 똑같다’는 것이다. 이들 말처럼 15년 전과 똑같다면 조만간 ‘똑같은 수사’가 진행될 듯싶다.

광우병 파동을 회고해보자. 2003년 노무현 정부 시절 미국에서 광우병 사례가 발견됐다. 거의 모든 국가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막았다. 그러나 2008년 이명박 정부는 무제한 수입을 허용했다. ‘걱정’에 휩싸인 엄마들은 유아차를 끌고 거리로 나섰고 국민은 촛불을 들어 저항했다. 검경은 광우병 우려는 괴담이라며 칼을 빼 들었다.

아랑곳하지 않은 국민은 광우병에 대한 불안감을 씻어낼 수 있는 과학적 근거를 요구했다. 특히 ‘검역주권’을 미국에 송두리째 던져준 정부를 규탄하며 강력하게 저항했다. 결국 ‘괴담론’만 펴던 보수정권은 수입 소의 특정 부위 수입을 금지하고 월령을 30개월 이하로 제한하는 등의 조처를 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검역도 강화됐다. 결과적으로 정책 결정권자에 대한 주권자의 불신과 걱정이 경제외교의 자존심을 그나마 바로 세운 것이다.

초읽기에 들어간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의 현실을 곱씹어보자. 정부 여당의 말대로 당시와 똑같다. 1인당 연간 수산물 소비량 1위라는 우리나라 국민의 당연한 걱정을 ‘괴담’으로 몰고 있는 것이다.

야당이 오염수 안전성의 과학적 검증을 요구하면 ‘이재명 사법리스크 덮기’, 객관적 증명을 주장하면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 무마’, 오염수 방류에 대한 국제적 대응을 제의하면 ‘국민 선동’이라며 일갈한다. 물론, 이에 동조하며 걱정하는 국민도 한통속으로 본다.

중세 유럽을 뒤흔든 마녀재판이 그랬다. 일단 잡아놓고 ‘너 마녀지?’ 묻는다. 억울한 당사자는 ‘아니요’라고 답한다. 그러면 곧바로 ‘그래? 그럼 스스로 마녀가 아님을 증명해봐’라며 모진 고문을 하다가 화형에 처했다.

이제 정부 여당은 되레 주권자인 우리에게 묻는다. ‘오염수 걱정은 괴담이지?’ 우린 ‘아니다. 우려다’라고 답한다. 그러면 그들은 이렇게 요구한다. ‘뭐가 걱정이고 우려인지 너희가 증명해봐’라고….

player00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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