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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신영전 칼럼] 코사공팽, 다음엔 누가 우리를 지켜줄까?

등록 2023-06-18 18:17수정 2023-06-19 02:39

상황은 절박하다. 7월쯤엔 유동성 위기에 처한 공공병원들이 나타나고, 이대로라면 연말쯤 문 닫는 공공병원이 나올 것이다. 정부지원금을 민간병원에 일회성으로 써버리지 말고 공공병원 지원 육성을 통해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것이 남는 장사다.
민주노총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이 지난 13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보건의료노조 생명홀에서 ‘감염병 전담병원 회복기 지원확대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노총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이 지난 13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보건의료노조 생명홀에서 ‘감염병 전담병원 회복기 지원확대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신영전 | 한양대 의대 교수

이번 코로나19 대유행은 약 1500여명의 사망자를 낸 1912년 타이태닉호 침몰과 닮았다. 당시 타이태닉호 침몰로 인한 1등석 사망률이 남성 67%, 여성 3%였던 반면, 3등석 사망률은 남성 84%, 여성 54%였는데, 코로나19로 인한 피해 역시 가난한 나라, 가난한 국민에게 더욱 혹독했다.

또 다른 공통점은 비극의 인재적 특성이다. 타이태닉호에는 16척의 구명보트와 4척의 접는 보트밖에 없어 승객의 절반밖에 탈 수 없었다. 구명보트 수를 줄이고 돈이 되는 승객을 더 태웠기 때문이다. 전체 병원 수의 5.7%밖에 안 되는 공공병원이 70%의 코로나 환자를 전담해야 했는데 우리에게 더 많은 공공병원이 있었다면, 빅5 병원을 필두로 한 민간병원 병상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면, 입원 거부와 지체로 인한 수많은 비극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더욱이 기존 입원환자도 내보내고, 외래도 문을 닫은 채, 우리 사회의 마지막 보루를 지켰던 공공병원 인력들은 코로나19가 잠시 잦아든 지금, 경영 악화, 임금 체불, 해고 위기에 시달리고 있다. 쫓겨났던 환자들이 그리 쉽게 다시 오겠는가? 지난달 지방의료원을 포함한 공공병원의 병상가동률은 48.5%로 코로나 발생 직전(2019년 12월)보다 30%포인트 낮다. 정부는 공공병원에 입원환자를 내보내라 호통칠 때는 위세가 당당하더니 그로 인한 회복에 4~5년이 걸리는데도, 손실지원금은 지난 4월을 끝으로 주는 흉내만 내다 끝냈다.

상황은 절박하다. 7월쯤엔 운영비를 조달하지 못해 유동성 위기에 처한 공공병원들이 나타나고, 이대로라면 연말쯤엔 문 닫는 공공병원이 나오기 시작할 것이다. 최근 의사 인건비가 턱없이 오르고 있는 상황에서 민간병원의 반도 안 되는 월급조차 받지 못하는 의료인력들의 집단 사퇴가 시작되었다.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상황이 긴박한 만큼 긴급조치가 필요하다. 우선 공공병원이 정상화될 때까지 충분한 액수의 운영비를 신속히 지원해야 한다. 그 내용은 일회성 손실보상이 아니라 양적, 질적 강화가 가능한 획기적인 규모가 되어야 하고 재원 지원은 중앙정부가 주도하고 지방정부가 참여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또한 전국 국립대 병원과 공공병원이 공동으로 필수의료 인력을 각 공공병원에 긴급 파견하여 실력 있는 의사들의 안정적인 근무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중장기 과제는 수없이 많다. 공공병원을 돈벌이로 내모는 독립채산제를 폐기하고 착한 적자를 보상하는 기관 총액예산제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중단된 공공부문 인력 확보를 위한 의과대학, 간호대학 설립을 재추진하고, 공보의(공중보건의사), 군의관 및 전문의 제도 재편 논의에 공공병원을 포함해야 한다. 국립대병원의 소관부처도 보건복지부로 이관해야 한다.

이는 코로나 후유증 대처만의 문제가 아니다. 어린이와 산모들이 병원을 찾아 길을 헤매다 죽어가고, 급속한 고령화와 장기 경제침체에 더불어 홍수, 감염병 등 재난이 거대화, 전지구화되는 상황에서 우리는 지속가능하고 견고한 사회안전망 없이 이 위기의 강을 건널 수 없다. 그 안전망의 마지막 보루가 공공병원이다.

오호통재라. 이런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는 공공병원의 위기에 신속히 대응하기보다는 오히려 ‘공공 수가’ 운운하며, 그나마 공공병원에 지원하던 작은 규모의 재원마저 코로나 위기 속 너무나 ‘조용히’ 있던 빅5 병원 등 민간병원에 넘기려 하고, 국민의 건강정보를 영리보험회사에 넘기는 보험청구간소화법 통과를 독려하는 등 의료민영화 정책에 올인하는 양상이다.

정부지원금을 돈 잘 버는 민간병원에 일회성으로 써버리지 말고 공공병원 지원 육성을 통해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것이 남는 장사다. 스웨덴 등 북유럽 국민이 민간보험에 가입하는 대신 세금을 많이 내는 길을 택한 것은 이념이 아니라 그것이 훨씬 안전하고 이득이었기 때문이다.

‘토사구팽’이란 말은 월나라 왕 구천이 오나라에 승리하자 승리의 주역인 충신 문종과 범려를 숙청한 역사에서 유래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알까? 그 후 얼마 가지 않아 구천은 병사하고 월나라 역시 초나라에 망했다. 문종과 범려가 있었어도 그랬을까?

이런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해 공공병원에 즉각적인 지원을 하지 않는다면, 또다시 코로나19와 같은 재난이 왔을 때 입원 병원을 찾아 헤매다 길거리에서 사망하는 비극은 재현될 것이다. “보세요” 하면서, 보호구 속에서 오래 일하느라 불어터진 손가락을 내보이던 한 공공병원 종사자는 “다음엔 못 할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코사공팽(코로나 사라지자 공공병원 잡아먹는다), 다음엔 누가 우리를 지켜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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