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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약자들이 보이는 거리

등록 2023-07-05 18:32수정 2023-07-06 02:40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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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 유지민 | 서울 문정고 1학년

지난 5월 대구에 다녀왔다. 낯선 도시에서의 당일치기 여행을 계획할 때만 해도 이곳에서 일생일대의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처음 가는 곳이라 더 긴장했던 그날. 여느 때처럼 동선을 꼼꼼히 계획했다. 갔다가 낭패 보는 일이 없도록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으면서 내가 선호하는 메뉴가 있는 곳을 검색했다. 그렇게 찾은 대구 동인동의 한 식당, 입구 앞에 3㎝가량 턱이 있었다. 수동휠체어를 타고 그럭저럭 갈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런데 내 휠체어를 본 사장님이 도움을 주셔서 더 순조롭게 들어갈 수 있었다. 놀라운 경험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식사를 마치고 가게를 나오는데, 사장님이 나를 불러 세웠다. 문 앞에 휠체어나 유아차를 끌고 오는 손님을 위한 경사로를 놓으려 했지만 맞는 크기의 제품을 찾지 못했다며 나에게 경사로 구매처를 물어온 것이다. 내가 먼저 가게 주인에게 경사로를 놓아줄 수 있느냐고 여쭤보거나 구매처를 알려드린 적은 많다. 하지만 역질문을 받은 건 처음이었다. 놀랍기도 반갑기도 했다.

비장애인의 입장에서 장애인 이동권을 의식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당사자가 아니면 문제라는 사실조차 알아차리기 힘들기 때문이다. 가게 앞 턱이 아주 높은 편도 아니었는데 그 작은 턱조차도 나와 같은 이들에게는 장애물이 된다는 것을 사장님이 인지하고 있다는 게 놀라웠다.

식당 주변 거리를 떠올려 보니 곳곳에 경사로가 꽤 많았다는 걸 깨달았다. 대구경북연구원에 따르면 2021년 11월 기준 대구 노인 인구 비율은 17.5%로 8개 특별·광역시와 특별자치시 가운데 부산 다음으로 높단다. 식당이 위치한 동산동은 2018년 기준 65살 이상 고령 인구가 전체 인구의 25.3%에 달했다. 장애인도 6.2%를 기록했다. 실제로 여행 내내 지팡이, 카트, 스쿠터 같은 보행 장비의 도움을 받아 이동하는 어르신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건물들에 경사로가 잘 놓일 수 있었던 까닭이 단지 이동 약자가 많기 때문만은 아니다. 지자체의 적극적인 지원책도 있었다. 대구 중구청 누리집(홈페이지)에는 ‘휠체어로 갈 수 있는 가게 현황’ 메뉴가 있다. 휠체어 이용자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중구 내 가게 100여 군데의 편의시설 설치현황(장애인 전용 주차구역, 장애인 이용 가능 화장실 등)을 상세하게 표시했다. 대구 명물인 근대골목과 김광석길 등 중구 소재 관광지 중심으로 경사로 설치 사업도 하고 있었다. 더불어 시 차원에서도 접근성을 높이려는 캠페인을 꾸준히 펼쳤다. 4년간 시민 대상으로 ‘장애서포터즈’를 뽑아서 장애인식개선을 꾸준히 펼쳐왔고, ‘휠체어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진짜 맛집’이라는 공익광고를 하기도 했다.

사장님이 경사로를 놓아야겠다고 결심한 계기를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편의시설을 원하는 수요자가 많은 동시에 적극적인 지원이 있었다. 비장애인 시민과 함께하는 인식개선도 꾸준히 진행했다. 톱니바퀴가 맞물리듯 접근성 향상을 위해 갖추어야 할 요소들이 조화를 이룬 셈이다. 아직 모든 면에서 완벽하게 편의시설이 갖춰진 건 아니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불편함과 편견을 겪는 이들의 존재를 그렇지 않은 이들이 다른 곳에 비해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사장님은 내가 다음에 방문할 땐 경사로를 마련하겠다고 말씀하셨다. 여행을 마친 뒤에도 며칠간 이 한마디를 곱씹었다. 경사로가 없어서, 심지어는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음에도 매장이 좁다며 출입조차 거부당하는 게 일상이었던 나에겐 기억에 남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여행을 다녀오고 몇주 뒤 소셜미디어 메시지로 사장님이 내게 반가운 소식을 전해오셨다. “가게에 경사로를 놨으니 꼭 다시 오세요!” 다양한 사람을 거리에서 만나기 위해서는 다양한 사람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다양한 몸과 정체성을 가진 이들이 거리에서 거절의 불안 대신 환영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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