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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장석준의 그래도 진보정치] 노회찬 평전, 제6공화국 시민들의 전기

등록 2023-07-12 18:56수정 2023-07-13 02:36

<노회찬 평전>. 노회찬재단 제공
<노회찬 평전>. 노회찬재단 제공

장석준 | 출판&연구집단 산현재 기획위원

노회찬 전 의원 5주기를 맞아 노회찬재단이 기획하고 이광호 작가가 집필한 <노회찬 평전>이 나왔다. 이 책을 손에 든 이라면 누구든 몇가지 놀라움을 느낄 것이다. 첫번째는 노회찬이 보여주는 다채로운 얼굴이다. 많은 이들이 알던 국회의원 노회찬은 실은 그의 여러 얼굴 중 하나에 불과했다. 특히 지인들도 잘 몰랐던 가정사와 성장 과정의 사연들, ‘인민노련’이라는 낯선 조직명 정도나 알려져 있던 지하 사회주의-노동운동 시절 이야기들은 소설보다 더 흥미롭다. 이런 여러 얼굴을 섭렵하고 나니 비로소 국회의원 노회찬의 그 특출났던 면모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그의 마지막 선택까지도 말이다.

다음으로 놀라게 되는 것은 노회찬의 삶과 얽힌 동시대인들이 참으로 많기도 하다는 사실이다. 저자가 그만큼 발품 팔아 숱한 증언자들을 만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노회찬 자신이 그토록 많은 이들과 거대한 그물망을 엮어나가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노회찬 평전>은 하나의 집단적 전기처럼 읽히지 않을 수 없다. 주인공이 뒤로 밀려나고 다른 사람들 이야기가 너무 많다는 뜻이 아니다. 노회찬이 서 있던 자리 하나하나가 다 고뇌하고 분투하던 당대 민중의 한복판이었다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늘 ‘우리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우리’란 누구인가? 이 역시 그 얼굴이 하나가 아니겠지만,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것은 대한민국 제6공화국을 살아가는 시민들로서 ‘우리’다. 군부독재정권을 참을 수 없어 새 공화국을 대망하던 이들 속에 소년 노회찬, 청년 노회찬이 있었다. 1987년 여름 내내 거리에 쏟아져 나온 이들 사이에, 현실 속 제6공화국과는 다른 결말을 꿈꾸던 혁명가 노회찬이 있었다. 그리고 이런 기대를 철저히 배반하며 시작된 제6공화국의 지극히 타협적이고 보수적인 일상 속에는, 어떻게든 이 질서에 작은 틈이나마 내보려고 안간힘을 쓴 진보정치가 노회찬이 있었다.

천신만고 끝에 국회에 입성한 다음에도 노회찬의 삶은 제6공화국 질서와 빚는 모순, 갈등, 충돌로 점철됐다. 이런 숙명에 맞선 노회찬의 답이 바로 2007년 민주노동당 대통령후보 경선에서 내놓은 ‘제7공화국 건설’ 비전이었다. 이후, 어지러운 우여곡절을 겪은 뒤 촛불항쟁 직후의 예외적 분위기 속에서 그가 다시 제시한 청사진 역시 제6공화국 시대를 끝내는 약속들을 담은 개헌안이었다.

그러나 일단 승리한 것은 제6공화국 쪽이었다. 노회찬의 필생의 무대이면서 또한 거북한 적수이기도 했던 낡은 정치 질서였다. 제6공화국 30여년 동안 한국 사회가 한번도 대통령후보 노회찬을 경험하지 못한 채 그와 작별하고 말았다는 비극적 사실을 통해, 구질서에 도전장을 내밀었던 진보정당운동은 처참히 흔들리기 시작했고 구질서의 남은 수명은 더욱 탄탄히 보장됐다.

이렇게 낡은 질서의 수명이 지겹게 연장된 세월을, 지금 우리는 그가 없는 채로 살고 있다. 더 길어졌어도 좋았을 <노회찬 평전>은 600쪽으로 끝나지만, 제6공화국은 내년에도 간단없이 이어진다. 이 쓰라린 진실을 곱씹고 보니, 그가 남긴 마지막 문장의 의미가 새삼 강렬히 다가온다. 그는 “여기서 멈추었지만”, “당당히 앞으로 나아갈” 남은 이들이 있다. 이제는, 남은 이들이 낡은 정치 질서의 마지막 장을 덮어야 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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