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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우리가 결정하게 하라” [신영전 칼럼]

등록 2023-07-16 18:37수정 2023-07-17 02:37

다음 위기를 위해 대비해야 할 것이 수없이 많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 더 나아가 국제사회의 정책 결정 장소를 권력자, 다국적 제약회사, 원자력 마피아, 그 권력에 기생하는 전문가의 음침한 담합공간이 아니라 확 트인 일반 시민의 아크로폴리스로 옮기는 일이다.
고대의 흔적이 남아있는 그리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위키미디어 코먼스
고대의 흔적이 남아있는 그리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위키미디어 코먼스

신영전 | 한양대 의대 교수

1등과 꼴찌를 동시에 할 수 있을까? 지난 3년여 코로나 대응에서 시민 참여가 그랬다. 코로나 백신 접종 완료율만 보아도 87%로 일본(81%), 영국(73%), 미국(67%) 등 선진국 중 가장 높았다. 그러나 정책결정에 시민의 참여는 없었으니 꼴찌다. 시민은 전문가의 의견을 들은 정부의 결정에 무조건 따라야 했다.

이런 일방적 결정의 후유증은 크다. 이 시간에도 코로나로 인한 사망자가 발생하고, 코로나보다 몇배 치명률이 높은 니파, 에볼라 등 바이러스 유행의 가능성도 남아 있는 상황에서 국민은 대응을 평가하고 준비하는 데 관심을 두지 않는다. 대유행이 또 온다 해도 어차피 정부가 결정할 테니 고민해봤자 소용없다는 심리가 작동하고 있다.

그렇다면 문제다. 첫째, 이번 코로나 대응의 일등공신은, 현장 보건의료 인력의 헌신도 있지만, 시민들의 높은 참여율이었다. 다시 유행이 와도 역시 그것이 제일 중요하다. 하지만 다음 유행 때에도 이번처럼 일방적으로 지시한다면 그때 국민의 행동은 이번과는 다를 것이다. 증거도 있다. 유엔의 2023년 ‘세계 어린이 현황’에 따르면 팬데믹 이후 우리 국민의 백신에 대한 신뢰도는 48%나 감소했는데 이는 세계 55개 조사국 중 가장 큰 폭의 감소다.

둘째, 과학자라 해서 모든 것을 아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가능한 한 과학적 근거에 기반을 둔 결정을 해야 하지만 그럴 수 없는 순간이 있다. 유행 초기 근거가 절대적으로 부족할 때다. 또한 유행이 장기화하면서 문제가 복합적인 사회문제들로 중첩될 때 세부 분야 전문가들의 역할은 극히 제한적이다. 이때 필요한 것은 민주적 합의다. 무엇이 우리에게 최선인가를 공론의 장에서 토의하고 결정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우리 사회에서 토론은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이도 많다. 하지만 토론은 민주사회의 기초다.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투표로 뽑았다고 민주주의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히틀러도 합법적으로 선출된 권력이었다. 반인륜적 인체실험도 과학의 이름으로 자칭 ‘과학자’들이 한 것이다. 권력자의 지침에 따라 토론하지 않거나 토론에 제압과 모욕 전문가를 내보내는 지금의 한국 사회를 민주사회라 할 수 없다.

또한 ‘변이’ ‘유전자’ ‘방사선’이니 하는 전문적인 논의에는 애초에 일반 시민이 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문제다. 평범한 국민이 그 결정에 참여하지 못하면 국민은 영원히 권력-자본-과학의 담합세력에게 지배당할 수밖에 없고, ‘그들’이 내리는 결정에 이익은 ‘그들’이 누리지만, 정작 일반 시민은 제일 먼저, 가장 큰 피해자가 될 것이다. 환경학자 데이비드 마이클스의 말처럼, 이익에 기생하는 ‘청부 과학자’는 지구가 멸망하기 전까지는 “환경오염이 종말을 초래한다는 증거가 아직 확보되지 않았다”는 논리를 구사한다. 생태학자 리처드 레빈스는 과학발전에 따라 예측능력이 향상될 것이라는 믿음은 인간의 희망일 뿐, 과학기술은 또 하나의 혼란변수로 작동하여 현실의 불확실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고 했다.

생명 관련 과학윤리에서 첫번째 원칙은 “먼저, 해를 끼치지 말라”이고, 두번째는 “충분한 정보가 제공된 상태에서 (피해를 볼 수 있는) 당사자가 결정하는 것이다”. 이 두가지를 무시한 전문가는 과학자가 아니다. 따라서 국민은 당당히 “우리가 알 수 있게 충분히 설명하라” “우리가 결정하게 하라” 요구할 권리가 있다. 코로나 사망률이 10배 이상 높은 고령자들과, 방사능 오염수의 영향을 더 많이 받을 어린이, 젊은 세대들에게 더 많은 발언 기회를 줘야 한다.

다음 위기를 위해 대비해야 할 것이 수없이 많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 더 나아가 국제사회의 정책 결정 장소를 힘 있는 권력자, 다국적 제약회사, 원자력 마피아, 그 권력에 기생하는 전문가의 음침한 담합공간이 아니라 확 트인 일반 시민의 아크로폴리스로 옮기는 일이다.

역사 속 민주주의의 궤적을 탐색한 사학자 김민철은 책 <누가 민주주의를 두려워하는가>에서 여전히 많은 권력자가 민주주의를 혐오하거나 두려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주의를 두려워하는 자가 범인이라는 이야기다.

코로나 유행 시기, 과학이란 이름으로 격리, 백신패스, 예방접종과 관련된 결정에서 시민을 배제한 이들이 누구인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처럼 무해하다고 판단할 충분한 과학적 근거가 없고 초래할 문제가 복합적인 상황에서 과학을 무기로 삼는 이가 누구인가? 국민이 아니라 이권과 정권에 부역하는 전문가가 누구인가? 그런 자가 방류 과정에 검증자로 참여하면 무슨 소용이 있나? 누가 시민 없이 과학을 논하는가? 그가 범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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