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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선일보의 반칙, 기자인 척 기자 아닌

등록 2023-07-19 05:00수정 2023-07-19 10:49

양회동 지대장 분신을 민주노총 간부가 방조했다고 보도한 조선일보 2023년 5월17일치 지면.
양회동 지대장 분신을 민주노총 간부가 방조했다고 보도한 조선일보 2023년 5월17일치 지면.

세상읽기 | 김준일 <뉴스톱> 대표

2021년 11월 포털 뉴스제휴평가위원회는 <연합뉴스>의 뉴스 콘텐츠제휴사 지위를 1년간 박탈하는 중징계를 내렸다. 연합뉴스가 ‘홍보사업팀’ 명의로 공공기관과 기업으로부터 돈을 받고 홍보 기사 2천여건을 포털에 전송한 사실이 적발됐기 때문이다. 기사형 광고에는 두가지 문제가 있다.

첫번째는 광고임에도 불구하고 기사처럼 작성해 언론의 신뢰를 떨어뜨린 점, 두번째는 기자가 아닌 홍보사업팀 직원이 기자인 것처럼 기사를 작성했다는 점이다. 당시 연합뉴스 홍보사업팀 임시직 채용공고에 따르면 이들은 ‘보도자료 편집 보조업무’가 주 임무였다. 독자들을 기만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도 다른 언론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조선일보>는 2021년 5월 온라인 속보를 전담했던 ‘디지털724팀’을 해체하고 온라인뉴스 자회사 ‘조선엔에스(NS)’를 설립했다. 속보 위주 가십성 기사를 주로 담당했던 디지털724팀에 조선일보 기자들이 가기 꺼리자, 아예 이런 기사를 전담하는 자회사를 만든 것이다.

문제는 조선엔에스가 언론사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 회사는 정기간행물 등록도 하지 않았다. 단순 서비스업체다. 그래서 별도 홈페이지도 없다. 다른 회사 경력기자 출신인 조선엔에스 직원들은 조선일보 외주를 받아 주로 조선일보 홈페이지와 지면용 기사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법적으로 기자가 아니기에 소위 ‘김영란법’이라 불리는 청탁금지법 적용을 받지 않는다. 하지만 포털 홈페이지에는 이들의 ‘기자 페이지’가 주어져 있다.

그동안 언론계 암묵적인 룰은 기자는 언론사에 소속돼 기사를 쓰는 사람이라는 점이었다. 임시직이든 정규직이든 ‘언론사’에 소속된 것은 변함이 없었다. 기자가 아닌 사람이 쓰는 것은 칼럼이나 오피니언으로 분류됐다. 각 언론사에는 디지털뉴스팀(온라인뉴스팀/속보팀)이 존재한다. 일부는 소위 공채 출신 기자들이 돌아가며 담당하고, 일부는 별도 채용 과정을 거쳐 선발된 전담 기자들이 담당하며, 일부는 언론사 자회사 기자가 담당한다. 그런데 자회사라 하더라도 엄연히 인터넷신문 언론사 소속 기자였다, 그런데 ‘기사는 기자가 쓴다’는 이 관행을 자칭 1등 신문 조선일보가 깬 것이다.

이런 대원칙이 깨지기 시작한 것은 2010년대 초부터다. 수익성이 악화하면서 일부 언론사들이 홍보성 기사를 아예 홍보대행사에 외주 주고 돈을 버는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언론에 대한 불신이 커지자 포털 뉴스제휴평가위원회가 이런 홍보성 기사를 포털에 송고한 언론사를 징계하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홍보팀 혹은 홍보대행사 직원이 광고비를 받고 홍보성 기사를 썼다. 이제는 기자가 아닌 자회사 직원이 조회수 수익을 늘리기 위해 클릭용 기사를 쓰고 있다. 둘의 차이라면 전자는 뉴스제휴평가위원회의 제재를 받아 포털 게재가 금지됐지만, 후자는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조선엔에스 직원들은 조회수가 잘 나오는 기사,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는 기사를 도맡아왔다. 소위 정규직 공채 출신 기자들이 쓰기 꺼리는 기사들이다. ‘위험의 외주화’ 혹은 ‘더러움의 외주화’의 언론 버전이다. 예를 들면 최근 윤석열 정권의 노동탄압에 항의하며 건설노조 간부가 분신자살한 사건과 관련해, 조선일보는 지난 5월16일 ‘건설노조원 분신 순간, 함께 있던 간부는 막지도 불 끄지도 않았다’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다. 이 기사를 쓴 사람은 조선엔에스 직원이었다. 문제는 이 직원은 당사자에게 사실 확인도 최종적으로 안 하고 기사를 내보냈다는 점이다. 옆에 있던 <와이티엔>(YTN) 기자도, 건설노조 간부도, 다른 목격자도 모두 분신을 막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증언해 사실상 오보가 된 상황이다.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부속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의 켈리 리오르단은 2015년 저서 <디지털 시대의 저널리즘 원칙>에서 경계가 모호해진 콘텐츠 유형들과 네이티브 광고가 저널리즘을 위협한다고 적었다. 그리고 뉴스 제공자가 지켜야 할 기본 원칙으로 투명성을 꼽았다. 누가 어떤 과정을 통해 어떤 기사를 썼는지 독자들에게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는 의미다.

법적으로 기자가 아닌 직원이 조선일보 기사 최다 조회수를 기록하는 것이 정상적인가? 조선일보의 자정을 기대해본다. 자정하지 못한다면 포털 뉴스제휴평가위원회가 나서서 제재해야 한다. 한국 저널리즘과 포털 뉴스 생태계의 건강함을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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