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오전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여야 11인 원로회 출범 조찬에서 참가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정세균 전 국무총리, 강창희 전 국회의장, 신영균 국민의힘 상임고문, 권노갑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 정대철 헌정회장, 김원기 전 국회의장, 김형오 전 국회의장, 문희상 전 국회의장. 연합뉴스
성한용 | 정치부 선임기자
75주년 제헌절인 7월17일 정치 원로 11명이 ‘11인 원로회’를 결성했다. 강창희·김원기·김형오·문희상·박희태·임채정·정세균·정의화 등 전직 국회의장 8명과 신영균 국민의힘 상임고문, 권노갑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 정대철 헌정회장이다.
원로회는 앞으로 매달 셋째 주 월요일에 만난다. 김형오 전 의장은 첫 모임 결과를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는 정치의 복원을 강력히 염원한다. 정치의 중심은 어디까지나 국회라는 데 인식을 같이한다. 이를 위해서는 여야 간 대화가 최우선이다. 대통령께서는 국회를 늘 존중하고 접촉하고 대화해야 한다.”
개인적 욕심이나 출세와 거리가 먼 원로들이 앞으로 나선 것은 정치 양극화로 인한 우리 사회의 갈등과 분열이 너무나 심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모름지기 정치인이나 유권자들은 원로들의 조언을 새겨들어야 한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은 원로들의 진심 어린 충고를 무시하기로 결심한 것 같다. 바로 다음날 국무회의에서 “이권 카르텔, 부패 카르텔에 대한 보조금을 전부 폐지하고, 그 재원으로 수해 복구와 피해 보전에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카르텔과 수해 복구 재정이 무슨 관련이 있다는 것일까? 뚱딴지같다.
도대체 왜 그럴까? 짐작건대 윤석열 대통령의 최우선 관심사는 내년 국회의원 총선거 승리인 것 같다.
카르텔, 반국가세력 같은 자극적인 단어를 입에 달고 산다. 문재인 전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을 ‘카르텔-반국가세력’ 굴레에 가두고 국민의힘 고정 지지층을 결집하면 총선에서 이길 수 있다고 계산했을 것이다.
그런가? 선거는 알 수 없다. 윤석열 대통령의 계산이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틀릴 수도 있다. 문제는 윤석열 대통령이 총선에서 이기든 지든 달라지는 것이 별로 없다는 데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총선에서 이기면 어떻게 될까? 기분이 좋을 것이다. 국민의힘이 국회의장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그뿐이다.
대통령 마음대로 국회에서 입법을 밀어붙일 수 있을까? 노동 개혁, 교육 개혁, 연금 개혁을 윤석열 대통령이 하고 싶은 대로 추진할 수 있을까?
그럴 리가 없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20년 총선에서 절대다수 의석을 확보했지만 하고 싶은 입법을 다 하지 못했다. 여론 때문이다. 국회선진화법 때문이다. 총선은 승자독식이 아니다.
반대로 윤석열 대통령이 총선에서 지면 어떻게 될까? 대통령 자리에서 당장 내려와야 할까?
그렇지 않다. 대통령은 자연인이 아니라 5년 임기가 보장된 헌법 기관이다. 총선에서 야당이 이겨도 대통령 탄핵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본인이 사퇴하지 않으면 윤석열 대통령은 남은 임기를 지금처럼 여소야대 상황에서 보내야 할 뿐이다.
결국 윤석열 대통령이 총선에서 이기든 지든 지금과 달라지는 것은 별로 없다. 대통령으로서 국정을 수행하려면 야당의 협조를 받아야 한다.
그렇다면 총선 승리는 머리에서 지워야 한다. 지금부터 정치를 복원해 야당과 적극적으로 대화하고 타협하는 것이 옳다. 그게 윤석열 대통령에게도 이익이다. ‘여야 간 대화가 최우선이고 대통령은 국회를 늘 존중하고 접촉하고 대화해야 한다’는 원로들의 조언은 그러한 심모원려를 담고 있다.
김진표 국회의장이 제헌절 경축사에서 선거법 개정 협상 마무리와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을 제의했다. 선거제도나 권력구조는 여야 정당이나 국회의원들의 협상에 맡겨서 될 일이 아니다. 대통령이 먼저 적극적으로 나서고 야당의 대선주자급 지도자가 호응해야 겨우 가능성이 열리는 고난도 정치 기획이다. 1987년 개헌과 1988년 선거법 개정이 그렇게 이뤄졌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국회의원 정수 30명 축소를 제안한 것은 선거법 협상을 총선 직전까지 교착시키고 마지막에는 ‘소선거구제+병립형 비례대표제’로 돌아가기 위한 의도일 것이다. 민주당은 권역별 비례대표제 등 비례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선거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당론은 없는 상태다. 윤석열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돌파구를 열 수 있다.
개헌도 마찬가지다. 4년 중임제로 개헌하려면 윤석열 대통령 임기를 1년 줄이고 다음 대선을 2026년 지방선거와 함께 치르는 것이 합리적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결단과 개헌 논의 주도가 필요하다. 성공하면 윤석열 대통령은 역사에 남는 대통령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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