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양평군 강상면의 김건희 일가 땅과 남양평 나들목(IC). 김혜윤 기자
[뉴스룸에서] 이재명ㅣ기획부국장
아직은 지도에만 존재하는 고속도로를 두고 격렬한 논란이 일고 있다. 야당은 ‘김건희 여사 일가 특혜 의혹’을 제기하고, 정부는 괴담 수준의 ‘트집 잡기’라며 되레 성을 낸다. 과연 그러한가?
‘서울-양평 고속도로’ 노선 변경을 둘러싼 논란은 2032년 개통 예정이던 이 고속도로의 종점이 왜 바뀌었는지에 대한 의문에서 비롯됐다. 야당은 예비타당성 조사까지 마친 노선을 국토교통부가 대통령 처가에 특혜를 주려는 의도로 바꿨다고 의심한다. 반면 여당과 국토부는 ‘공교롭게’ 종점 인근에 윤석열 대통령 처가 땅이 있었을 뿐이라고 반박한다. 바뀐 노선이 환경이나 정체 해소, 양평 주민들에게 더 도움이 된다고도 주장한다.
국토부의 노선 변경에 결정적 명분을 제공한 양평군이 어떤 내부 절차와 논의를 거쳐 이런 제안을 했는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국토부 주장대로 경제성이나 환경성이 우월한지, 절차적 문제는 없었는지도 검증 대상이다.
확실한 건 노선 변경이 현 정부가 들어선 지난해 5월 이후 결정됐고, 바뀐 노선으로 고속도로가 들어서면 김건희 여사 일가가 수혜를 누린다는 사실이다. 또 대통령의 권한은 매우 광범위하고 영향력 또한 강해서 이 사업과 직무 관련성이 없다고 볼 수 없다. 이런 요소를 고려하면 국토부의 의도나 특혜 여부를 떠나 이 사업에는 명백한 ‘이해충돌’이 발생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지금껏 이에 대해선 아무런 해명이나 조처를 하지 않고 있다. 공직 윤리에 무지하거나 알고도 침묵하는 뻔뻔함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이해충돌을 단순하게 표현하면 사익과 공익이 상충하는 상황이다. 공직자가 공적 직무를 이용해 자신이나 특정인의 이익을 추구할 가능성이 있는 상황을 일컫는다. 여기엔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행사하는 공직자에 대한 일종의 불신이 깔려 있다. 물론 오로지 국가와 사회의 이익에 충실한 공무원을 찾을 수 없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그보다 사익을 좇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게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이고, 실제 인류 역사에서 부패가 없던 시대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이런 합리적 의심이 이해충돌 방지 제도를 둔 이유다. 관료제의 핵심 원리인 권한의 위임은 ‘신탁’이다. 믿고 맡긴다는 뜻으로 이는 대리자(공직자)에 대한 신뢰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신뢰는 어떻게 가능할까? 인간의 내면, 즉 의도나 양심을 측정할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신뢰를 얻으려면 불공정하게 보이는 겉모습을 제거해 공정성의 ‘외관’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의심이나 오해를 살 상황을 만들어선 안 되고, 불가피하게 그런 상황이 초래됐다면 관련 정책 결정에 참여하지 말아야 한다. “누구도 자기 사건의 재판관이 될 수 없다”는 격언처럼 판사가 아무리 법률과 양심에 따라 내린 판결이라고 항변해도, 자신이 사건의 당사자이거나 사건에 이해관계가 있다면 누구도 이를 공정하다고 받아들일 수 없다.
회피나 제척 외에도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뒤지지 않는 이해충돌 방지 제도를 두고 있다. 공직자와 그 가족의 재산과 변동 내역을 해마다 등록하고 고위 공직자에게는 이를 공개하는 의무를 둔 것이 그중 하나다. 이 제도의 목적은 누구 재산이 많은지가 아니라 재산변동 내용을 ‘공개’함으로써 공직을 이용해 사적인 이익을 취하지 않았는지를 감시하는 데 있다. 또 공직자에게 직무와 관련이 있는 주식 거래를 금지하고, 기존 주식은 매각하거나 백지신탁하도록 강제한다. 헌법상 권리인 재산권을 제한하면서까지 ‘권력과 재산’ 둘 중 하나만을 택하도록 한 이유는 그만큼 이해충돌 해소가 부패 예방은 물론 정부 신뢰 확보에 결정적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대통령 가족의 사적 이익과 결부된 양평 고속도로 노선 변경은 이해충돌에 대한 현 정부의 인식과 태도를 가늠하는 시금석이다. 대통령이 자신에게 발생한 이해충돌은 외면한 채 다른 공직자와 국민에게 어떤 명분으로 “헌법과 법률”을 준수하라고 지시할 수 있겠는가.
거듭 강조하지만 노선 변경 과정에서 대통령 처가에 이익을 주려는 의도가 있었다면 그건 이해충돌을 넘어선 범죄 행위다. 이게 문제가 되지 않더라도 노선 변경안 추진에 따른 실제적 이해충돌이 어떤 식으로든 해소되지 않는다면 정치적 논란과 공정성 시비를 결코 피해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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