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13일 영등포구 여의도동 국회 의원회관 제1간담회실에서 박주민·김성환·이용우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과 경제개혁연대(소장 김우찬), 사단법인 기후솔루션(대표 김주진) 주최로 열린 ‘1400만 주주시대 주주가치 제고 및 이에스지(ESG) 강화를 위한 주주제안 제도 개선 방안’ 토론회.
[세상읽기] 김우찬 | 경제개혁연구소장·고려대 경영대 교수
우리나라 회사들에도 이에스지(ESG) 경영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기후위기 등 환경문제(E)와 이해관계자에 대한 사회적 책임(S)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상황이고, 거버넌스(G)의 핵심인 일반주주의 이익도 더는 소홀히 다룰 수 없는 시대가 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 세가지 요소 중 환경과 사회적 가치 보호는 그 강도와 속도를 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너무 급진적이면 주식회사의 본질이 흔들리고, 너무 미온적이면 보호 대상인 환경과 사회적 가치는 물론 주주이익에도 반하기 때문이다. 새롭게 부상하는 각종 친환경 산업을 선점할 기회를 상실하는 것은 물론 시장진입 규제에 직면하거나, 사고에 따른 제재와 손해배상 책임, 평판 훼손 위험에도 노출될 수 있다.
어려운 문제인 만큼 경영자는 이를 혼자 결정할 것이 아니라 회사의 주인이고 본인을 뽑아준 주주의 의견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 문제는 그런 경영자가 많지 않다는 점이다. 오히려 환경과 사회적 가치 보호를 빌미로 사익을 추구하거나 그린워싱을 통해 주주와 고객을 속이는 경영자도 있다.
그런데 다행히 제대로 된 이에스지 경영을 하도록 주주가 경영자를 압박할 수 있는 유효한 수단이 있다. 미국에서 활발히 사용되고 있는 권고적 주주제안 제도가 그것이다. 우리나라 주주제안처럼 주주총회 안건으로 채택돼 표결까지 이뤄지는데, 찬성표를 아무리 많이 받아도 회사가 이에 따를 법적 의무가 없어서 권고적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하지만 상당한 영향력이 있다. 절반 정도의 권고적 주주제안이 주주총회 전 회사에 의해 수용되고 실제 이행되기 때문이다. 회사로서 표 대결 할 명분이 없기 때문이다. 또, 표결이 이루어진 경우에도 주주로부터 높은 지지를 받은 안건은 사후적으로 이행되는 경우가 많다. 경영자로서는 주주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 부담스러울 뿐만 아니라, 분노한 주주들이 이듬해 본인의 이사 선임 안건에 반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통계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2022년 무려 627건의 권고적 주주제안이 제기되었다. 기후변화, 플라스틱 공해, 로비활동, 근로조건, 성과 인종의 다양성 등 안건 내용도 다양하다. 만약 우리나라에 권고적 주주제안 제도가 도입된다면 우리나라 상황에 맞게 로비활동이나 인종 다양성에 관한 안건보다는 미세먼지, 산업재해, 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 관한 안건이 제기될 것으로 예상된다.
성공 사례도 많다. 권고적 주주제안을 활발히 하는 뉴욕시 연금의 경우 포드, 지엠, 제너럴일렉트릭을 상대로 회사의 로비활동이 파리협정(지구 평균기온 상승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2도 이내로 억제)에 부합하는지 스스로 검토해 보고서 형태로 제출할 것을 제안했는데, 회사들이 이를 전격 수용했다. 듀크 에너지와 도미니언 에너지를 상대로는 회사의 투자활동이 탄소중립 이행계획에 부합하는지 자체 검토한 보고서를 작성해 제출하라고 요구했는데 마찬가지로 회사들이 이를 받아들였다. 듀폰과 유니언 퍼시픽을 상대로는 성과 인종별로 고용 현황을 담은 공평고용보고서 공개를 제안했으나 해당 회사들의 거부로 결국 표 대결이 이뤄졌는데 주주 84%와 86%가 찬성해 결국 해당 회사들이 제안 내용을 수용하였다.
우리나라에서 권고적 주주제안 제도를 도입한다면 상법 개정을 통한 방법이 효과적이다. 개별 회사 정관 개정으로도 도입할 수 있으나 지배주주가 반대하면 불가능하다. 지난해 경제개혁연대가 네덜란드 연금으로부터 위임받아 에이치디씨(HDC)현대산업개발 주주총회에 권고적 주주제안 제도 도입을 위한 정관 개정안을 제출한 사례가 이를 증명한다. 일반주주의 전폭적인 지지에도 불구하고 40% 지분을 보유한 지주회사의 반대로 부결되었기 때문이다.
경영자들은 권고적 주주제안이 이사회의 권한을 제약하고 남발될 것을 우려한다. 하지만 앞서 소개한 여러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정보공개를 요구하는 제안이 주를 이루고 있어 이사회의 권한을 제약한다고 볼 수 없다. 또, 제안에 필요한 주주의 지분 요건을 적절한 수준에서 정하고, 미국에서처럼 증권당국의 승인을 전제로 안건 채택 거부권을 회사에 부여한다면 어렵지 않게 남발을 막을 수 있다.
정부와 재계는 권고적 주주제안 제도의 도입을 무조건 반대만 할 것이 아니라 이에스지 경영을 한 차원 승화시킬 좋은 기회로 삼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