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옷을 입고 검은 마스크를 착용한 교사들이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열린 ‘7·29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집회’에서 교사의 교육권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똑똑! 한국사회] 방혜린 | 전 군인권센터 활동가·예비역 대위
권리와 권한은 둘 다 권세 권(權)이라는 한자를 쓴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권’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종종 권리와 권한을 혼용하곤 한다. 최근엔 교권이라는 단어의 쓰임이 그렇다. 노동자로서 교사의 권리부터 교사가 행사할 수 있는 권한까지 그 층위가 매우 다양하게 펼쳐져 있음에도 어째서인지 관련된 논의나 보도에서는 ‘교권’이라는 단어 하나로 함축돼 버렸다. 정부와 여당은 벌써 문제를 ‘교권 실추’와 ‘교권 강화’로 정리하는 분위기다. 교권 강화를 위한 첫 타깃으로 학생인권조례가 떠올랐다.
나는 교권이라는 단어의 불명확한 쓰임이 군대의 지휘권과 유사하다고 생각했다. 사전에서 지휘권은 “지휘관이 계급과 직책에 의해서 예하 부대에 대해 합법적으로 행사하는 권한”으로 정의된다. 권한의 구조는 수직적이고, 권한의 행사는 본질에서 타인을 침해하는 권력 행위다. 그래서 지휘관은 부대를 지휘할 수 있는 권한과 더불어 동시에 법규에 따라 권한 행사의 범위, 체계 등에서 제한을 받고, 과정이나 결과에 책임을 지게 된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서 지휘권은 권리와 권한의 논의가 뒤섞인 채로 사용된다. 2022년 7월6일 국방부가 배포한 ‘대통령 주재 전군 주요지휘관 회의 개최’ 보도자료를 보면, 야전 지휘관 지휘권 보장과 관련해 “소대장 지휘활동비를 인상하고, 주임원사 활동비를 현실화하는 등 창끝부대 리더들의 실질적 근무 여건을 개선”, “열악하고 특수한 환경에서 근무하는 장병들의 수당 인상” 등을 정책개선 사항으로 언급하고 있다. 근무 여건 개선은 군인임과 동시에 임금노동자이기도 한 직업군인의 노동환경과 처우를 개선하는 노동권 영역에 해당하는 과제지만, 이것을 지휘권의 영역으로 취급하는 것이다. 조금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2019년 6월10일 보도된 ‘향군, 군단장 해임 청원 반대 ‘강한 훈련은 군인 본분’’이라는 ‘조선일보’ 보도를 살펴보자. 훈련과 관련한 지휘관의 지휘권은 보장되어야 하며, 지휘권을 흔들어 대는 것은 결국 군의 전투력을 약화하는 행위라고 규탄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군단장 해임 청원은, 당시 육군 7군단에서 있었던 환자를 대상으로 한 무리한 훈련 참가 강요 등 인권침해 행위가 원인이었다. 이처럼 지휘권은 직업군인의 권리가 됐다가도, 부하들을 맘대로 부릴 수 있는 특권이 되기도 한다.
권리와 권한은 같은 한자를 쓸지언정 전혀 다른 층위에 놓인 개념이다. 권리는 기본적으로 수평적이고 평등하다. 직위와 신분, 고하와 관계없이 누구나 보장받아야 할 자격이다. 교사와 학생, 지휘관과 병사라고 하여 행복할 권리, 폭력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권리, 안전한 환경에서 노동할 권리가 차등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한편 권한은 수직적이고 불평등하다. 권한은 행사하는 사람과 적용받는 사람의 수직적 권력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권한은 행사하는 이에게 배타적 권력을 부여하고, 상대방에게는 따를 의무를 부과한다.
권한과 권리가 섞이기 시작하면, 권한을 가진 이에게 배타적 특권을 행사할 적절한 ‘권리’를 보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가 커진 것이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기 쉽다. ‘교권이 붕괴한 것은 학생에게 강제력을 행사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라거나, ‘병사들이 사소한 것까지 신고할 수 있어서 부대를 지휘할 수 없다’ 같은 주장이 나오는 것도 이런 착각 때문이다. 이 착각 속에서 정말 중요한 것, 악성 민원인에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을 권리나 구명조끼 없이 입수하라는 부당한 명령을 거부할 권리 같은, 구성원이 보장받아야 할 고유의 기본적 권리들은 뒤로 밀리고 만다. 그 혼란 속에서 위험에 노출된 교사가, 해병대원이 숨졌다.
교육 현장에서는 교권과 학생 인권이, 군에서는 지휘권과 장병 인권 보장이 대립항인 것인 양 따지는 이들이 많다. 우리는 언제쯤 누군가의 권리를 빼앗는 방식으로 다른 이의 권한을 보장할 수 있고, 이것 또한 권리라는 착각에서 깨어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