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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공교육은 누가 죽였나

등록 2023-08-21 18:52수정 2023-08-22 02:38

전국 각지에서 모인 교사들이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역 사거리 인근에서 열린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집회에 참석해 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전국 각지에서 모인 교사들이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역 사거리 인근에서 열린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집회에 참석해 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똑똑! 한국사회] 이주희 |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공교육은 누가 죽였나?’

공교육이 아직 죽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누가 이런 질문을 한다면 그 답은 무엇일까? “내 새끼 지상주의”, “전교조”, “과도한 학생인권 보호”, “진보세력” 등의 답이 그간 어지럽도록 담론장에 넘쳐났다.

그런데 권력과 달리 권위는 누가 무너뜨리기보다는 스스로 무너져내리는 것에 가깝다. 공교육은 교육에 대한 순수한 갈망이 아닌, 선망받는 지위의 공급을 제한하기 위한 기득권의 욕망을 대리하는 순간부터 사교육에 밀려 권위를 상실했다. 일부 학부모와 학생이 제도의 빈틈을 이용해 교사를 괴롭히는 것은 병든 교육의 원인이 아니라 증상일 뿐이다. 교사는 학생의 서열 높은 대학 진학을 지원하기 위한 사교육의 보조 매니저로 전락한 지 오래다. 모두 잘 알지 않는가? 우리 사회가 경쟁에서 진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

그런 만큼, 교사가 노동조합을 조직했기 때문에 권위를 실추시켰다는 주장은 더욱 황당하다. 심지어 노동운동이 미약하고 이에 적대적인 미국에서조차 교사노조는 강력한 조직력으로 교권을 보호한다. 안타까운 교사들의 연이은 극단적 선택은 노동권을 제대로 지켜내지 못해서 발생했지, 그 반대가 아니다. 왜 기간제 교사의 죽음은 정규 교사만큼 주목받지 못하겠는가. 왜 노련하고 경험 많은 교사나 관리자보다 경력이 짧고 학부모보다도 젊은 교사가 어려운 민원을 가장 많이 처리해야 했겠는가. 학교는, 교육청은, 교육부는 그동안 도대체 무엇을 한 것일까? 교권과 학생인권은 상충관계에 있지 않다. 또 다른 힘없는 집단 간 갈라치기 전략은 그만두어야 한다.

코로나19로 비대면 수업이 진행되던 시기, 나는 사회학과 학부생 배다연과 유지수, 대학원생 김은지, 이주은과 함께 원격등교로 인한 고교 유형별 교육불평등 실태를 조사한 적이 있다. 특히 외고와 일반고를 최근에 졸업했던 다연과 지수는 서로의 생생한 경험에 기초해 연구대상자의 면접 내용을 분석하여 연구에 현실감을 더했다. 위기는 정상 시기에는 잘 드러나지 않던 학교 유형별 보유 자원과 대처 역량의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교육을 외부적으로 서열화한 주체인 특목고와 자사고는 서비스 정신과 정보력에 기반해 동질적이고 우수한 소속 학생들에게 내부적으로는 평등한 교육을 제공했다. 반면, 평준화된 교육을 대표하는 일반고는 원격등교에 적응하는 데 오랜 시간을 낭비했을 뿐 아니라 비교과 활동마저 축소되면서 우수한 소수 학생에게 상을 몰아주는 것 같은 선택과 집중 현상이 더욱 악화하였다. 그러나 우리 논문의 가장 큰 반전은 이로 인해 드러났던 학교의 새로운 의미였다. 특목고와 자사고 학생들의 경우 학교의 대처 역량을 높이 평가했음에도 학교에서의 공부가 손쉽게 사교육으로 대체 가능했다는 점에서 배움의 공간이라는 의미가 크게 퇴색하였고, 대신 동료로부터 얻는 경쟁과 자극이 가장 큰 소득이라고 인식했다. 역설적이게도, 교내에서의 불평등한 처우에 큰 반감을 느꼈던 일반고 학생들은 학교가 물리적으로 ‘없어져 버리는’ 극단적인 경험을 통해 오히려 교사의 지원과 학교라는 공간의 중요성을 뒤늦게 체감했다. 학업 수준이 이질적이었던 만큼 이들은 학우를 경쟁자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교우 관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의 공간으로 학교를 그리워했다.

그런데도 세상의 모든 불평등이 ‘능력’에 따른 공정이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고 동료는 오로지 넘어서야 하는 경쟁자로만 인식하게 하는 교육 서열화를 계속 지지한다면, 학폭마저 쉽게 무마시킬 수 있는 권력자의 입김이 학교에 작용하는 것을 용인한다면, 시험을 어렵게 내느니 쉽게 내느니 교육의 본질과는 무관한 논쟁으로 일관한다면, 표피적인 문제의식으로 학부모와 학생 탓만 계속하면서 제도 개선에만 매몰한다면, 이미 중병으로 앓아누운 공교육은 그 지리멸렬한 생을 곧 마감할지도 모른다. 아마도 학교를 망친 주범은 이 죽음의 교육제도를 유지해온 우리 모두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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