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전국 교사들의 집회. 연합뉴스
“일단 모입시다!”
서울 서초구 초등교사 사망 이틀 뒤인 7월20일, ‘굳잡맨’(닉네임)이 고인을 추모하는 첫 주말 집회를 제안했다. 초등교사 온라인 커뮤니티 ‘인디스쿨’(indischool)에서다. 7월22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열린 첫 집회에 5천명이 모인 뒤, 주말마다 3~4만명의 교사들이 광화문이나 여의도 국회 앞에 모였다. ‘남의 일 같지 않다’는 교사들의 분노가 동력이 됐다. 지난 26일 6차 집회에선 6만명(주최 쪽 추산)으로 참가자가 불어났다. 이들은 9월2일 7차 집회를 준비하면서 전국의 초중고 교사 50만명에게 동참을 호소하고 있다.
교사들은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집회를 준비해 왔다. 전교조나 교사노조연맹 등 특정 단체가 주도하는 대신 매주 새로운 교사가 집회 제안자로 나섰다. 첫 집회가 끝나자마자 ‘수학귀신’이 2차 집회를 제안했다. 3~6차 집회는 ‘네시사십분만기다려요’ ‘군밤장슈’ ‘서울서울서울’ ‘크리스피쿠림’이 차례로 손을 들었다. 각 제안자는 오픈 채팅방을 열어, 버스 대절과 손팻말 준비 등 실무를 도와줄 집회 운영팀을 공개 모집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노동조합처럼 투쟁기금(조합비)이 모아져 있지 않기 때문에 비용도 갹출하고 있다. 집회 운영팀이 정산 내역을 올리고 후원계좌를 열면 참가자들이 십시일반 돈을 보내는 식이다.
사실 인디스쿨에서 이런 집단행동은 전례없는 일이다. 2000년 12월24일 창립한 인디스쿨은 원래 초등교사들이 수업자료를 공유하는 온라인 플랫폼이다. 전국 초등교사의 약 79%에 이르는 14만3498명이 가입해 있으며, 보유하고 있는 학습자료가 44만건에 이를 정도로 방대하다. 교사들이 자료를 올리면 다른 교사가 실제 수업을 해보고 피드백을 제공하면서 완성도를 높여왔다. 이 곳에선 모두 실명 대신 닉네임을 쓴다. 일선 교사들이 교실 간 벽을 허물고 수평적 관계에서 나눔을 실천해온 공간이다. 영리활동(기업)과 무관해야 한다는 취지로 가입자격은 현직 초등교사로만 엄격하게 제한한다. 행여 사교육으로 자료가 흘러 들어가는 것을 경계하는 차원이다.
독립성을 지향하는 인디스쿨의 조직 특성상 집회 운영팀이 가장 큰 원칙으로 삼아온 것은 탈정치다. 집회 제안을 한번씩만 할 수 있는 것도 이런 기조와 무관하지 않다. 매주 손팻말에 적을 구호 하나를 정할 때도, 집회장에서 부를 노래를 고를 때도 민주적 의사결정을 거친다. 기존 집회장에서 많이 불리운 ‘임을 위한 행진곡’과 같은 곡들은 배제됐다. 일부 교사는 직접 노래를 만들어 함께 부르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5차 집회에서 불린 ‘꺾인 꽃의 행진’은 응답자 4799명 가운데 4031명의 선택을 받아, 사전에 악보가 공유됐다.
인디스쿨 교사들이 집회 참가만 한 것은 아니다. 교육부는 최근 교권회복 대책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인디스쿨 교사들을 만나 의견을 청취했다. 인디스쿨을 통해 결성된 ‘현장교사 정책 태스크포스(TF)’는 지난 21일 300쪽 분량의 정책연구 보고서를 교육부에 전달하기도 했다. 고인의 49재를 맞아 준비되고 있는 ‘공교육 멈춤의 날’(9월4일)은 교사들에게 또 하나의 관문이 될 전망이다. 29일 오후 2시 기준 참여 서명을 한 전국의 교사가 8만3903명에 이르지만 교육부는 ‘우회파업’으로 규정하며 엄단할 방침이다.
황보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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