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27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인근에서 열린 감염병 전담병원 회복기 지원 확대 촉구 결의대회에서 보건의료노조 조합원들이 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말고] 김희주 | 양양군도시재생지원센터 사무국장
‘늙고 병들 텐데 서울 아닌 곳에서 잘 지낼 수 있을까?’
최근 생애전환기 건강검진을 받고 예상치 못했던 몸의 적신호와 마주한 것을 계기로 지방에서 병원에 다니는 일의 어려움을 절감하고 있다. 어려서부터 골골거리는 잔병치레에 지병도 있었고 사무직 노동자답게 각종 근골격근계 증후군과 함께 40년을 살아왔다. 그래서 적당히 나쁘고 적당히 관리해야 하는 몸을 다시 한번 확인할 줄 알았다. 하지만 조금 더 심각했다. 몇 군데 장기에서 추적 관찰이 필요한 증상을 발견했다.
연고도 없는 강원도 양양이란 곳으로 이주했기에 사전 정보가 거의 없었다. 걱정도 두려움도 지방에서 살면서 더 선명하게 맞닥뜨렸다. 가장 불편한 건 병원이었다. 인구가 3만이 채 안 되는 양양은 병원이 많지 않다. 건강 고위험군 주민이 많은데 의료인프라는 취약하다. 이비인후과, 피부과, 산부인과, 안과, 소아과 등은 아예 없어서 속초나 강릉으로 가야 하는데, 대중교통은 불편한 데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운전은 부담스러웠다. 지금까지는 적당한 불편을 감수하며 지내왔는데, 전문 검사와 처치가 필요한 질병을 맞닥뜨린 뒤로 고민이 커졌다.
병가를 내고 전문의가 있는 강릉의 병원에 갔고, 더 큰 병원으로 가라는 안내에 따라 상급종합병원으로 가야 했다. 그 여정 속에서 머릿속에 계속 떠오른 생각은 ‘지금이라도 서울의 병원에 가야 할까?’였다. 양양에서 강릉으로 다니는 것도 번거로운데, 더 불편할 게 뻔한 서울 병원을 알아보는 게 왜 당연하다고 생각하는지 의문을 품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지방 병원이 서울에 비해 부족하다는 걸 전제하고 있구나. 그런데 서울에서 수많은 병원에 다닐 때 나는 그 병원과 의사의 실력에 의구심을 가진 적이 있었나?’
서울에서는 회사나 집 근처 아무 병원이나 갔다. 역에서 가깝거나 늦게까지 진료하거나 하다못해 이름이 마음에 들어서 갔다. 병원을 찾으면서 의사의 출신 학교나 경력을 확인하거나 평판이나 후기를 검색해 본 적도 없다. 의사라는 전문가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지역커뮤니티 카페에서 강릉과 속초의 여러 병원과 의사들을 열심히 검색했다. 왜 그랬을까? 무의식적으로 지방의 병원은, 지방의 의사는 서울보다 못할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불안했기에 조금이라도 더 정보가 필요했다. 그리고 이 근거가 불충분한 불신이 지방에서 살아가는 어려움의 결과이기만 한 게 아니라 원인이기도 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방 의료체계가 흔들리고 필수의료 인력이 부족하다는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속초의료원은 전문의 이탈로 응급실 운영을 단축했고, 파격 조건에도 지원자가 거의 없었다. 강릉아산병원은 심장내과 전문의 4명이 수도권 병원으로 이직하면서 한꺼번에 퇴사했다. 이러한 이탈에는 부족한 보상이나 시설 문제 등이 있겠지만 나 같은 환자의 소극적인 불신도 어느 정도 영향을 주는 게 아닐까? 공공의료의 위기는 민간의료 의존도를 높이는데, 민간은 인구 규모와 시장성에 더 민감하기에 전체 의료인프라의 붕괴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는 지방소멸의 원인이자 결과로 상호작용하는 악순환 관계에 있다. 그로 인한 암울한 미래 역시 지방에서 늙어갈 내게 고스란히 돌아온다는 걸 생각하면, 옴짝달싹할 수 없는 덫에 걸린 기분이 든다.
지역커뮤니티 카페에서 서울 병원에 가야 할까 고민하는 이들의 게시글과 동조하는 댓글을 무수히 만났다. 서울로 간 이들도 강릉의 병원으로 향하는 나도 각자의 최선을 선택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지난 몇주간 이어진 걱정에서 자유롭지 않고, 여전히 마음 한편에 불안감을 안고 병원 문을 열 것이다. 불신도 불안도 아직은 버리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