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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형근의 낮은 목소리] 우리끼리 드는 촛불도 힘이 될까

등록 2023-09-12 19:30수정 2023-09-13 02:36

함께 사는 친구의 아픔, 그 한복판에 가닿으려 한다. 시민모임과 이주노동자센터의 구성원 일부는 내년 초에 국민통합정부와 반군이 있는 미얀마 국경 지역 난민촌을 지지 방문한다. 직접 와서 연대해주면 큰 힘이 되겠다는 현지의 전언을 듣고 결심한 일이다. 우리가 힘이 된다니 힘이 난다. 당신도 같이해주시면 기쁘겠다.
일러스트레이션 노병옥
일러스트레이션 노병옥

조형근 | 사회학자

“그날 이른 아침, 잠에서 깨어난 꼬봉윈은 그의 책상 위에 죽어 있는 나비 한 마리를 발견했다.” 소설의 첫 문장이다. 도시에서 어느 날 갑자기 나비들이 죽기 시작한다. 이유를 모르는 채 나비는 계속 죽어가고 조사단은 결국 해체된다. 이야기는 이렇게 끝난다. “그리고 어느 날 밤 꼬봉윈이 악몽을 꾸다 잠에서 깨어났다. 꿈속에서 그는 나비 한 마리가 되어 있었다.” 현대 미얀마를 대표하는 작가 띳싸니의 단편소설 ‘나비’의 줄거리다. 1988년 8월8일에 일어난 미얀마의 8888 민주항쟁 중 죽어간 7000여명을 나비에 비유한 문제작이다.

미얀마라는 이름은 뭐랄까, 해독되지 않는 기호 같다. 아는 게 거의 없다. 어느 날 군부 쿠데타 소식이 들려왔을 때 슬프고 화가 났지만 그게 다였다. 지금은 다르다. 미얀마라고 하면 심장 어딘가가 아릿해진다. 수많은 나비들이 떠오른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그 이야기를 하고 싶다.

2021년 2월1일에 군부 쿠데타가 일어났다. 1주일 전 군부 대변인은 “권력 장악을 하지 않겠다고는 말 못 하겠다”며 쿠데타를 공공연히 예고했다. 최고사령관 민 아웅 흘라잉 장군은 회의에서 국민의 권력을 뺏을지 의논했다. 거리에서는 군을 지지하는 폭도들이 죽창을 들고 폭력을 행사했다. 사람들은 ‘우리의 선거를 존중하라’는 소셜미디어 캠페인을 벌이면서도 시위는 엄두도 못 냈다.

선출된 정부가 너무 허약해서 그랬을까? 아니다.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이 이끄는 민족민주동맹은 2020년 총선에서 83.2%라는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2015년 총선 때 76%의 지지보다 더 늘었다. 민주주의를 향한 미얀마인들의 염원은 군부의 위협에도 꺾이기는커녕 더 강해졌다. 하지만 미얀마 헌법상 정부는 군부를 통제할 권한이 없다. 국방장관도 최고사령관도 군부 스스로 임명한다. 헌법 개정도 불가능하다. 개헌은 의원 75% 이상의 찬성으로만 가능한데, 군에 개헌 저지선 25%가 할당되어 있다. 1962년 쿠데타 이후 군부는 수십년간 특권을 매개로 뭉치며 독자세력이 됐다.

내가 어쩌다 미얀마와 인연을 맺게 됐을까? 우연일 뿐이지만 의미가 있다. 쿠데타 뉴스를 접하고 분노했지만, 제3세계의 쿠데타는 일상이었다. 그런데 무언가 달랐다. 탄압이 끔찍한데 저항도 완강했다. 시민들이 직장과 학교를 그만두고 싸운다고 했다. 한두달 지나면 잠잠해지겠거니 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싸우고 또 싸웠다.

2021년 3월 무렵, 몇명이 움직였다. 파주에서 미얀마 민주화운동을 지지하는 촛불시위를 열었다.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는데 우리끼리 촛불을 든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내 마음속 무력감이 깊었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아 촛불을 들었다. 지역의 모임들이 돌아가며 촛불모임을 이어갔다.

촛불은 미약했다. 하지만 무언가 더 하고 싶게 했다. 국내의 미얀마인을 수소문해서 강연을 들었다. 처음으로 뉴스에 나오는 것 이상의 이야기를 들었다. 영국에 맞선 독립운동, 모든 민족들 간의 평등을 약속한 1947년의 팡롱협정, 1962년의 군사 쿠데타와 협정의 파기, 8888 민주항쟁 등 아름답고 슬픈 미얀마 현대사를 접했다.

조금 알고 나니 조금 더 하고 싶어졌다. 쿠데타와 내전, 코로나19가 겹치면서 부모 잃은 아이들이 늘었는데, 기존의 후원은 대부분 끊겨서 고아원들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고아원 한곳의 식비는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십시일반 2021년 6월부터 미얀마 북부의 고아원 한곳을 돕는 ‘미얀마연대파주시민모임’이 시작됐다. 파주 외 다른 지역 분들도 동참하면서 지금까지 진행 중이다. 현재 21명의 원생들이 건강하게 생활하고 있고, 올해부터는 다시 학교도 다닌다고 한다. 성인이 된 한명은 지금 양곤에 머물면서 한국 이주노동을 위한 시험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시민모임’의 미얀마 돕기에 판을 깔아준 곳은 파주이주노동자센터 샬롬의 집이다. 센터는 좀 더 근본적인 문제를 고민했다. 미얀마 노동자들이 공동체를 만들어 스스로 돕고 고국도 도울 수 있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지난해 11월 말 파주 거주 미얀마공동체가 탄생했다. 센터가 발판이 되어주면서 공동체는 점차 제 발로 서고 있다. 시민모임도 씨앗자금을 후원하며 마음을 보탰다.

지난 8월5일, 이주노동자센터에서 제1회 미얀마의 날 행사가 열렸다. 한국인 선주민과 미얀마 이주민들이 함께 노래하고 이야기하며 친교를 다졌다. 독재는 필요하지 않다며 미얀마 민중가요 ‘아로마씨’(필요치 않아)를 함께 불렀다. 한국 민중가요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도 함께 불렀다.

지난주에 민주화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미얀마 유학생 한명을 만났다. 결국 사그라든 8888항쟁 때와는 다르다고 힘주어 말한다. 의사, 변호사, 교수 같은 전문직 종사자들까지 직장을 그만두고 거리에서 장사를 하며 살 정도로 시민불복종운동이 강고하단다. 특히 젊은 세대가 대거 참여하고 있어서 희망이 크다고 했다. 민족과 종교의 차이를 넘어 군부에 맞서 투쟁하고 있다고도 했다. 이주노동자센터의 미얀마 통역 미모뚜는 미얀마 국민통합정부(임시정부) 한국대표부에 참여하고 있다. 너무 화가 나서 도움이 되는 모든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 슬픈 싸움이 끝나고 나면 승려가 되어 업보를 참회하며 살려고 합니다.” 그의 눈동자가 깊고 굳다. “한국 사회에서 같이 살아가는 이주민과 친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자면 그들의 가장 큰 아픔을 외면할 수 없지요. 그 한복판에 가닿아야 합니다.” 파주이주노동자센터를 이끌고 있는 김현호 성공회 신부의 말이다.

함께 사는 친구의 아픔, 그 한복판에 가닿으려 한다. 시민모임과 이주노동자센터의 구성원 일부는 내년 초에 국민통합정부와 반군이 있는 미얀마 국경 지역 난민촌을 지지 방문한다. 직접 와서 연대해주면 큰 힘이 되겠다는 현지의 전언을 듣고 결심한 일이다. 우리가 힘이 된다니 힘이 난다. 모든 것이 부족한 난민촌에 작은 도움이라도 보태려 한다. 외롭게 싸우는 게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우리끼리 든 촛불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다. 당신도 같이해주시면 기쁘겠다. (농협 351-1260-5855-13 파주이주노동자센터 샬롬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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