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오후 서울 지하철 국회의사당 앞 도로에서 서울 서초구 초등학교 선생님의 49재를 맞아 열린 ‘공교육 멈춤의 날’ 행사 시작에 앞서 참석자들이 카네이션으로 헌화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세상읽기] 김인아 | 한양대 교수(직업환경의학)
최근 많은 이들이 안타까워하는 노동자들의 죽음이 있었다. 얼마 전 영화로도 만들어졌던, 콜센터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고교생도 있었고, 최근 많은 사람의 공감을 사고 있는 학교 선생님도 있다. 이러한 노동을 우리는 감정노동이라고 부른다. 감정노동을 하는 노동자들이 소진을 겪을 가능성이 크고 정신건강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학술적으로 감정노동은 상품판매 및 이에 대한 서비스를 매개로 하는 고객서비스와 사람에 대해 직접 서비스를 제공하는 형태로 나눌 수 있다. 한국에서는 고객서비스만을 감정노동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으나 인간을 대상으로 한 서비스업 역시 감정노동의 주요한 영역이다.
한국에서는 콜센터 폭언이나 백화점 고객의 갑질 등으로 감정노동이라는 용어가 보편화하면서 고객을 상대하는 업무를 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보호조치들이 하나씩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콜센터에 전화를 걸면 나오는 안내 멘트가 ‘사랑합니다 고객님’이 아니라 산업안전보건법상의 노동자 보호조치를 이야기해주는 것으로 바뀐 것이다. 이제는 전화를 끊을 수 있는 권리도 생겼다. 그렇다고 노동자들의 어려움이 모두 해소된 것은 아니지만 반의 반발쯤은 나아지고 있다.
사람에 대한 직접 서비스 중 일부를 돌봄노동이라고 부른다. 보육교사, 요양보호사, 노인생활지원사, 아이돌보미, 사회복지사 등 다양한 직업군이 포함된다. 이들은 아동이나 학생, 노인이나 환자, 장애인처럼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을 직접 상대한다. 사람들에게 직접 무언가를 하는 일을 하다 보니 예기치 못한 갈등이 많이 생긴다. 갑질이라는 다양한 상황이 생기기도 하고 학대나 괴롭힘이라는 오해도 받는다. 더구나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이 상대적 약자이다 보니 무조건적 희생을 강요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이번에 우리가 놓치고 있던 부분이 드러났다. 공무원이어서 그나마 상대적으로 안정된 일자리라는 학교 교사들의 문제다. 돌봄노동이라는 용어 속에서 한발 비켜나 있던 돌봄노동의 영역이 드러난 것이다. 변화한 학교 환경에서 양육과 돌봄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게 된 선생님들의 괴로움을 에스엔에스 목소리에서 종종 접할 수 있게 되었고, 정신건강의 어려움을 호소하며 치료를 받고 있는 선생님들이 늘고 있다는 사실을 지켜보면서도 이렇게 충격적인 상황이 발생하기 전까지 선생님들의 목소리를 진지하게 듣고 대책을 마련하지 못했다.
학교에는 정식 공무원이 아닌 기간제 교사들도 있다. 이들 역시 정신적 위기 상황을 겪고 있다. 보육교사 등 다른 돌봄노동자들도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 언론에 보도되지는 않지만 장애인이나 노인을 돌보는 일을 하는 노동자들도 보호자들과의 갈등이나 학대를 했다는 오해로 괴로워하다가 사망하는 경우도 있다. 이번 일이 교사들만의 일회성 일로 마무리되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 모두 돌봄이 필요한 사람이고 우리는 누군가의 돌봄을 받으며 살아가고 누군가의 돌봄 속에 죽게 될 것이다. 선생님이나 보육교사나 요양보호사나 노인돌보미 다 사람들을 챙기고 돕는 사람들이다. 그들 역시 보호받아야 할 노동자다.
다만, 이들의 자살 예방에 대한 해결책을 논의할 때 주의할 것은 자살 동기를 단순화해서 말하는 것이 유사한 상황에 놓여 있는 사람에게 자살을 부추길 수 있어 매우 위험하다는 점이다. 학교폭력을 둘러싼 갈등을 해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자살예방백서에서 노동자들의 자살 이유로 가장 흔히 언급되는 경제적 어려움이나 정신적 건강 문제는 불안정한 고용 형태와 불합리한 업무 분장과 부담, 직장 내에서의 다양한 갈등과 가족 내에서의 문제 등이 복잡하게 얽혀서 발생한 문제이기도 하다. 그들이 죽게 된 이유를 하나로 설명하고 그걸 해결하면 자살 문제가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은 위험하다. 하나의 구멍을 막아도 다른 구멍이 터질 수 있고, 한국의 직장은 상상외로 경쟁적이고 빠르게 변하며 사회에서의 개인은 고립되어 있다.
1만3352명. 2021년 한해 자살로 사망한 사람들이다. 이 중 약 40%인 4990명은 사망 당시 직업이 있었던 일하는 사람들이다. 하루 14명의 노동자가 사망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자살률이 세계적으로 높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인데 그들 중 많은 이들이 일하는 사람들이었다는 점은 종종 잊힌다. 우리가 노동자들의 자살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