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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소민의 그.래.도] 쉿, 진짜 혁신은 시골에 있다는데

등록 2023-09-22 10:00수정 2023-09-22 10:11

그.래.도
경상남도 하동 악양면 매계마을 나눔밥상에서 매일 수요일 점심이 공짜다. 김소민 제공
경상남도 하동 악양면 매계마을 나눔밥상에서 매일 수요일 점심이 공짜다. 김소민 제공

김소민 | 자유기고가

누가 시골이 후지다 하나? 지역을 잠깐 힐링이나 하는 곳으로 취급하는 도시 사람이라면 상상도 못할 이야기를 들려 드리겠다.

‘햇빛연금’ ‘바람연금’ 들어나 봤나? 1천여개 섬이 있는 전라남도 신안군에서 준다. 중앙정부는 꿈도 못 꾸는 기본소득에 가깝다. ‘신재생에너지 개발이익공유제’다. 천일염으로 유명한 신안은 풍력, 태양광 발전 하기에 입지 조건이 딱이다. 햇빛, 바람 누구 건가? 모두의 것이다. 그런데 발전해 나온 수익은 왜 기업만 가져가나? 왜 발전소 탓에 피해는 지역 주민이 보고 싼 전기는 도시에서 펑펑 쓰나?

신안군은 2018년 조례로 못 박았다. ‘여기서 재생에너지 발전사업 하고 싶어? 그러면 이익의 30% 주민에게 돌려줘.’ 섬별로 조합을 만들었다. 조합비 1인당 1만원 내면 사는 내내 이익을 배당받는다. 가구당이 아니라 애 어른 안 따지고 한 사람당이다. 지난 2년 동안 발전 수입 75억원을 주민들에게 나눴다. 태양광발전으로 24㎿를 생산하는 자라도는 주민 한명당 한 분기에 17만~51만원, 안좌도(96㎿)는 12만~36만원, 지도(105㎿)는 11만~26만원, 사옥도(45㎿)는 22만~60만원, 임자도(100㎿)는 10만~40만원씩 받았다. 발전소에서 가까이 살수록 배당액도 크다. 지역 소상공인들 살리도록 배당은 지역화폐로 준다. 신안군에서 낸 자료를 보면, 2030년까지 태양광 2GW, 풍력 8.2GW 생산을 목표로 삼고 있는데 그때가 되면 군민 한 사람당 월 50만원이 돌아갈 거란다. 조심! 중앙정부에 이런 요구 했다가는 공산당으로 몰릴지 모른다.

경상남도 하동 악양면 매계마을은 지리산 자락에 있다. 주민은 95명인 작은 마을인데 북카페, 마을식당, 사랑방이 있다. 다 공유공간이다. 식당에선 매주 수요일 밥이 공짜다. 매계마을은 올해부터 이 공유공간 지붕에 태양광발전을 올릴 계획이다. 매달 100여만원 수익을 예상한다. 그 돈은 마을 전체를 위해 쓴다. 하동군이 ‘탄소 없는 마을’로 선정했는데 그 이름 걸맞게 마을에 리필스테이션도 만들 예정이다. 기름 등을 대용량으로 들여와 마을 사람들이 각자 용기에 필요한 만큼 덜어 가는 거다. 세제로 시험해 봤는데 반응이 좋았다.

매계마을은 주민들이 평생 친구들하고 신나게 놀며 여생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요양원도 만들 계획인데, 이 동네 사람들은 뭘 하고 놀까 걱정 말라. 오만가지 프로그램이 돌아간다. 인문학 강의, 동아리 모임…. 내가 방문한 지난달 28일은 하필이면 그 노래방 기기가 마을회관에 설치되는 날이었다. 당신은 놀 줄 안다고 자부하나? ‘단장의 미아리고개’에 맞춰 토끼춤을 춰 본 적 없다면 말을 마시라. “당신은 철사 줄로 두 손 꽁꽁 묶인 채로… 으쌰라 으쌰.”

전남 곡성 죽곡면엔 이상한 도서관이 있다. 죽곡농민열린도서관이다. 대출기한이 없고 조용할 필요도 없다. 마을 아지트다. 여기 모여 마을학교 프로그램 등을 꾸린다. 이 마을은 아이 하나에 ‘선생님’이 여럿이다. 마을학교 ‘토란 선생님’은 70대 할아버지다. 자기는 농약 치고 개량종으로 농사짓지만, 아이들한테는 그렇게 못 가르치겠나 보다. 할아버지는 아이들이 비교해볼 수 있도록 토종, 개량종, 필리핀 왕토란을 준비했다. 아이들이 키운 토란으로 마을축제도 벌였다. 주민 도예가는 아이들과 함께 도자기를 빚는다. 아이들은 생태농업도 배운다.

무엇보다 이 마을 아이들은 ‘자치’를 체험한 적이 있다. 자유의 핵심은 자치 아니겠나. 여기 박진숙 죽곡농민열린도서관장은 쉬운 일 어렵게 일하는 데 도가 튼 사람이다. 뭐든 주민 한 사람, 한 사람 설득하고 꼬셔서 같이 한다. 2019년 주민자치연구모임을 만들었을 때도 그랬다. 죽곡면주민자치준비위원회엔 10살 초등학생부터 83살 할아버지까지 들어왔다. 다들 똑같은 발언권을 가졌다. 이들이 또 주민들을 찾아가 이야기를 한땀, 한땀 듣고 마을 의제 21가지를 만들기도 했다.

혁신이란 무엇일까? 미세먼지 자욱한 하늘에 윤석열 대통령이 좋아하는 드론이 날아다니면 혁신일까? 교육은 뭘까? 이주호 교육부 장관이 추진하는 인공지능(AI) 디지털 교과서를 보며 죽도록 공부하는 걸까? 자유란 뭘까? 중앙정부가 생각하는 유일한 자유는 소비의 자유 같다. 앗, 이 말은 취소한다. 반국가 세력으로 몰려 압수수색 당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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