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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소민의 그.래.도] 방조도 폭력이다

등록 2023-11-23 19:09수정 2023-11-24 02:40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주한이스라엘대사관 앞에서 열린 ‘이스라엘은 반인도적 전쟁을 끝내라’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이스라엘 국기 위에 평화 메시지를 붙이는 행위극을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주한이스라엘대사관 앞에서 열린 ‘이스라엘은 반인도적 전쟁을 끝내라’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이스라엘 국기 위에 평화 메시지를 붙이는 행위극을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김소민 | 자유기고가 

2015년 11월 프랑스 파리에서 이슬람국가(IS) 테러로 시민 130여명이 숨졌다. 파리 에펠탑, 미국 워싱턴 백악관과 뉴욕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등 세계 랜드마크들이 프랑스 국기를 상징하는 파랑·하양·빨강 삼색 조명으로 물들었다. 남산 서울타워는 세가지 색깔 조명을 돌아가며 켰다. 페이스북은 프로필 사진에 삼색을 입힐 수 있도록 했다. 에스엔에스(SNS)엔 ‘프레이 포 파리’(파리를 위해 기도해요)라는 해시태그(#)가 넘쳐났다. 2017년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 차량 테러로 5명이 숨졌을 때도 너도나도 에스엔에스 프로필을 바꾸고 ‘런던을 위해 기도해요’라는 해시태그를 달며 연대했다.

그 전에도, 그사이에도, 그 이후에도 매년 서울 절반 남짓 크기인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의 군사작전으로 사람들이 숨졌다. 2008년 1391명(318명은 18살 이하), 2012년 167명, 2014년 2203명, 2021년 232명…. 올해는 전쟁이 시작되기 전인 9월까지 팔레스타인 사람 230명이 유대인 정착민과 이스라엘군에 살해당했다. 세상은 조용했다.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애도는 누가 인간으로 여겨지는지를 드러낸다.

‘하마스가 먼저 공격했다.’ 지난달 27일 유엔 총회에서 193개국 가운데 120개국이 휴전 촉구를 결의할 때, “하마스 규탄이 빠졌다”며 미국은 반대했고 한국은 기권했다. 그런 식으로 따지자면 ‘먼저’, ‘거대한 감옥’이 있다. 2006년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하마스가 압승하자 이스라엘은 6m짜리 장벽을 쌓고 가자지구를 봉쇄했다. 가자 어부들은 물고기를 잡다가 총질당한다. 원자재, 물, 전기, 식량, 의약품 모든 반입을 이스라엘이 통제하며 예사로 끊었다. 가자의 수원지는 이스라엘 폭격으로 오염됐다.

‘먼저’, 나크바(대재앙)가 있었다. 미국이 이스라엘 국가를 승인한 뒤 1948년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 75만명을 삶터에서 몰아냈다. ‘먼저’, 유럽의 인종주의 제국들이 있었다. 1917년 수에즈운하 이권을 노린 영국은 ‘밸푸어 선언’으로 아랍인과 유대인이 섞여 살던 땅에 유대인 독립국가 건설을 지지한다고 약속한다. 유럽의 파시즘은 유대인을 죽이고 몰아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을 학살했다. 팔레스타인은 식민지, 그들의 비명은 75년 동안 묻혔다. 대대손손 거대한 감옥에 갇혀 고사하는 것 이외에 어떤 선택지가 주어졌나? 그 고통에 응답하지 않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 고통을 더해온 나라들은 양비론을 내세우며 ‘우아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건 미화한 표현이다.

한국 등이 양비론 뒤에 숨어 있는 동안 이스라엘 공격으로 가자 사람 1만여명이 숨졌다. 사망자 10명 중 7명은 어린이나 여성이다. 유니세프는 가자에서 매일 어린이 136명이 숨지고 있다고 밝혔다. 연료, 수도, 전기 등을 끊은 이스라엘은 병원, 구급차, 난민캠프, 빵집까지 폭격했다. 4살 아이 아메드 샤바트는 가족 15명을 잃고 난민촌으로 피했으나 그곳마저 폭격당해 두 다리를 잃었다. 이것이 학살이고 인종청소가 아니라면 무엇일까?

25년 전부터 팔레스타인 해방에 천착해온 노동자연대의 한 40대 후반 활동가는 처음 팔레스타인 상황을 접했을 때 “1980년 광주에서 일어난 일을 알게 됐을 때 같은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내가 안다고 믿었던 세상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그는 요즘 ‘슬픈 희망’을 본다. “사람들이 조금씩 더 팔레스타인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어요.”

지난 18일 서울 광화문 팔레스타인 연대 집회에 100여명이 모였다. 최규진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사무국장은 이 자리에서 지난 11일 가자지구 의사로부터 들은 현지 상황을 전했다.

“그 의사가 근무하는 병원에서 이달 말까지 산모 50명이 출산을 앞두고 있는데 아기와 산모를 살릴 수 있을지 막막하답니다. 폭격이 계속돼 의약품 수송차가 병원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의료진마저 저격수 탓에 병원의 다른 건물로 쉽게 이동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는 간절히 호소했습니다. ‘이미 너무 많이 죽었다. 지금 죽어가는 사람들만이라도 살릴 수 있게 당장 폭격을 중단시키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해달라.’”

세계 각지에서 가자 공습을 규탄하는 시위가 열리고 있다. 23일 이스라엘은 전쟁은 계속하겠지만, 나흘간은 일시적으로 전투를 멈추겠다고 밝혔다.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건 거짓말이다. 방조도 폭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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