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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재명의 목표가 친명체제였을까?

등록 2023-09-25 18:49수정 2023-09-26 14:05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21일 오전 서울 중랑구 녹색병원에서 박광온 원내대표의 손을 잡고 대화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21일 오전 서울 중랑구 녹색병원에서 박광온 원내대표의 손을 잡고 대화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뉴스룸에서] 이주현 | 뉴스총괄

국회 본회의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체포동의안이 가결된 21일 밤, 민주당 의총은 살벌했다. ‘가결파’를 향한 ‘부결파’의 성토가 쏟아졌다. 의총장 밖까지 들릴 정도로 고함이 터져 나왔다. “(표결 결과가) 지도부의 논의, 요청, 설득과 다른 방향으로 나왔기 때문에 그 모든 상황에 책임을 지고” 박광온 원내대표가 사퇴했다. 정청래 최고위원이 주재한 당 최고위원회는 곧 입장문을 냈다. “최고위와 의원총회, 중앙위원 규탄대회에서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는 부당한 정치탄압으로 규정했다. 그러하기에 오늘 이 대표 체포동의안에 대한 본회의 가결 투표는 용납할 수 없는 명백한 해당 행위다.” 민주당 최고위는 곧바로 원내대표 선출 작업에 돌입했다.

이상하지 않은가. 이 대표 체포동의안 부결은 당론이 아니라 ‘지침’이었다. 이야말로 원내 지도부가 아니라 최고위가 더 적극적으로 주문한 사안이 아닌가. 왜 원내 지도부가 모두 책임져야 하는가.

아니, 최고위원 모두가 건재한 건 아니었다. 최고위원단에서 유일한 ‘비명’ 송갑석 최고위원이 이튿날 사퇴 뜻을 표하자, 입원 중인 이 대표는 곧바로 이를 수용했다. 이로써 당내 세력 균형 차원에서 친명 지도부의 보완재 역할을 했던 둑이 무너졌다. 세력구도는 친명체제로 잠정 정리됐다.

그리고 닷새 뒤인 26일, 이 대표의 구속영장 실질심사가 열린다. 법원이 구속을 결정하든 영장을 기각하든 ‘당분간’ 민주당 안팎에선 친이재명 깃발이 나부낄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만약 구속될 경우 ‘이재명 수호’ 움직임은 더 강해질 것 같다. 판사가 영장을 기각한다면 검찰의 무리한 수사가 도마 위에 오르며 이 대표를 옹호하는 목소리가 짙어질 것이다. 농도 차이는 있지만 현재 원내대표 후보군도 모두 친명이다. 강경한 민주당 지도부는 정기국회 와중에도 장외투쟁을 도모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24일간의 ‘최장 단식’까지 견딘 이 대표의 정치적 목표가 ‘친명 민주당’은 아닐 터이다. ‘검찰독재’에 맞서 정국을 주도하고 내년 총선에서 승리함으로써 2027년 대선의 교두보를 구축하는 일이다. 만약 이 대표가 계속 민주당을 이끌다 내년 총선에서 패배한다면 검찰의 집요한 수사에 저항한 노력도 물거품으로 돌아간다.

물론, 이 사태는 대통령의 정치적 경쟁자를 먼지털기 수사 하는 검찰에서 비롯한 것이다. 그러나 정치검찰과 맞서는 최전선에 선 이 대표의 리더십에 생채기가 난 건 비명계의 이탈 때문만은 아니다. “불체포 특권을 포기한다”고 했던 석달 전 자신의 약속을 스스로 뒤집은 데 따른 것이다. “자기들 대장을 검찰의 손에 넘겨준 배신자”라며 민주당 가결파를 맹비난한 한 재야 원로조차 “국회 표결 전날 이 대표의 부결 메시지를 보면서 억장이 무너졌다”고 했다. 무도한 검찰 정치를 막아내야 한다는 뜻은 알겠다면서도 ‘이재명 정치’에 대한 실망감을 토로했다.

윤석열 정부 들어 여야 간 정치는 실종됐다. 야당 대표, 그것도 원내 1당의 대표를 ‘피의자’라며 만나지 않는 대통령은 전례가 없다. 그러나 딱한 것은 민주당 안에서의 정치도 실종됐다는 점이다. 민주당 의원들 앞에 부결-가결의 두가지 선택지밖에 주어지지 않았던 것은 계파 간 타협도, 중진의 설득도, 누군가의 중재도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연 이 대표는 역풍을 전혀 고려 안 하고 부결 요청 메시지를 냈던 것일까. 비명계도 무작정 이재명 밀어내기가 목표는 아니었을 터이다. 이 대표가 가결 요청으로 명분을 쌓도록 당내 절충과 타협의 채널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180석으로 출발한 21대 국회 민주당은 숫자로 밀어붙이는 것 외엔 알지 못하는 것 같다.

현재 민주당의 뿌리인 새정치국민회의 ‘창업주’ 김대중 대통령은 당이 오로지 친디제이(DJ) 일색으로 짜이는 것을 경계했다. 소수파와 비주류를 존중하고 함께 가야 당이 국민으로부터 외면받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이제 총선이 200일도 남지 않았다. 사실, 이재명을 죽이고 살리는 것은 검찰이 아니다. 국민의 판단이 생사를 가른다. 민주주의가 권위주의나 전체주의보다 우월한 건 ‘다양성’에서 나온다. 민주당에 민주주의가 있는지 국민이 지켜본다.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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