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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헌 칼럼] 금융중심지 정책과 제주국제금융센터

등록 2023-10-19 15:56수정 2023-10-20 02:38

한국의 경우 국토가 작아 다수의 중심지 또는 거점지가 중복일 수 있으나, 디지털 전환 시대에 다양한 거점지를 지정하고 네트워크로 연결하여 국가 전체 금융경쟁력 강화를 도모하는 스포크앤허브(spoke and hub) 전략을 추진할 수 있다. 예컨대 부산은 해양과 선박금융, 전주는 자산운용의 사무수탁관리, 제주는 초국경금융에 각각 특화하여 서울의 자산운용업과 협력체계를 구축하는 방식이다.
지난달 22일 제주한라대에서 ㈔국제자유도시센터와 제주한라대가 공동 주최한 ‘제주국제금융센터’ 설립 필요성과 가능성을 모색하는 정책 심포지엄이 열리고 있다. 제주한라대 제공
지난달 22일 제주한라대에서 ㈔국제자유도시센터와 제주한라대가 공동 주최한 ‘제주국제금융센터’ 설립 필요성과 가능성을 모색하는 정책 심포지엄이 열리고 있다. 제주한라대 제공

윤석헌 | 전 금융감독원장

지난달 22일 제주한라대에서 ㈔국제자유도시센터와 제주한라대가 공동 주최한 정책심포지엄에 참가했다. ‘제주국제금융센터 조성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주제로 제주특별자치도 내 역외(offshore)금융센터 조성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마침 같은 달 14일 부산에서 열린 ‘지방시대’ 선포식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제시한 ‘지방시대를 통한 대한민국의 재도약’과 맥을 같이해 시의적절했다.

‘역외금융센터’란 비거주자를 대상으로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국가 또는 특정 지역을 말한다. 제주도에 역외금융센터 조성이 논의된 지 벌써 40여년이다. 1980년대 중반 시작되어 2000년대 초반 활성화됐으나 2009년 초 정부의 금융중심지 선정에서 탈락하면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당시 서울(여의도), 부산(문현), 인천(청라), 일산 및 제주가 신청했고 서울과 부산이 선정되었다. 그러다가 최근 국제금융시장 환경 변화와 금융중심지 사업의 부진 속에 제주 역외금융의 전략적 가치가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국제금융시장 환경 변화로는 두 가지가 눈에 띈다. 첫째, 역외금융센터들이 자금세탁과 탈세 등 과거의 부정적 인식을 불식하고, 국제 간 자금중개라는 긍정적 역할에 집중하는 초국경(cross-border)금융센터로 탈바꿈을 시도하고 있다. 둘째, 동아시아 금융시장에서 동남아와 인도 등 신흥국 경제의 자금 수요 확대가 한국, 일본 등 선진국 잉여자금과 맞물리면서 제주의 역외금융 가치가 높아지고 있다.

한편 그간 한국 정부의 금융중심지 추진이 부진했던 이유로는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 금융산업 발전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다. 한국 경제의 눈부신 성장과 발전은 제조업과 수출 덕분이었고 금융업은 단지 지원 수단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퍼져 있는 가운데, 금융업의 중요성이 간과되었다. 현재는 제조업과 수출의 국제경쟁력 지속 여부가 불확실해져 금융업의 대안 가치가 높아졌지만, 인식 전환은 쉽지 않다. 특히 부동산이 가계 자산의 70%를 웃도는 상황에서 금융은 계속해서 강 건너 불구경하는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둘째, 금융중심지 조성의 장애 요인 가운데 하나가 규제인데, 규제 개선을 위한 실효성 있는 대안 제시가 아쉽다. 금융중심지 추진은 일정 부분 금융개혁과 맞물리는데, 개혁 대상인 금융위원회가 실무 책임을 맡다 보니 실효성 있는 금융개혁 조치가 보이지 않는다. 금융개혁의 큰 그림 없이 땜질식 규제 완화가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금융중심지 경쟁력 강화를 기대하기 어려웠다. 물론 규제 완화도 필요하지만, 금융 불안정과 소비자 피해 예방을 위한 감독 체계 정비를 포함한 금융 시스템 선진화 작업이 더 절실하다.

셋째, 지역균형발전과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 금융공기업 유치가 마치 금융중심지 발전의 핵심인 듯 인식되었으나, 이는 금융중심지 발전의 충분조건은 아니다. 필자가 과문한 탓인지 금융공기업을 중심으로 국제금융센터가 발전한 사례를 알지 못한다. 특히 산업은행 부산 이전을 포함하여 그간의 금융중심지 정책은 지역균형발전은커녕 지역 간 갈등을 조장하여 국가 금융중심지 정책에 총체적으로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 관련해서 금융중심지 자원의 서울 집중에 따른 효율성 제고도 중요하지만, 금융중심지 신청 지역의 지역금융과 제주의 역외금융 등이 서울의 자산운용업과 상호 보완되도록 추진해야 한다. 결국 서울과 지역을 망라하여 국가 전체를 대상으로 금융중심지 청사진을 마련하는 게 핵심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지난달 22일 제주한라대에서 ㈔국제자유도시센터와 제주한라대가 공동주최한 ‘제주국제금융센터’ 설립 필요성과 가능성을 모색하는 정책 심포지엄에서 발제자와 토론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제주한라대 제공
지난달 22일 제주한라대에서 ㈔국제자유도시센터와 제주한라대가 공동주최한 ‘제주국제금융센터’ 설립 필요성과 가능성을 모색하는 정책 심포지엄에서 발제자와 토론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제주한라대 제공

이런 관점에서 국가 금융중심지 정책의 기본 방향 몇 가지를 제언한다.

첫째, 산은의 부산 이전을 법 개정 없이 추진하는 방안은 재고해야 한다. 산은은 산업은행법 제1조에 따라 ‘국가가 필요로 하는 산업의 개발·육성이나 지역개발 등을 위한 자금 공급·관리 책무’가 있고 이로 인해 필요하면 부산 이전을 고려할 수 있다. 다만 국민이 납득할 만한 설명을 제시해야 한다. 관련해서 과거 한국거래소나 국민연금 이전에 대한 부정적 사후 평가도 고려해야 하고, ‘본점을 서울특별시에 둔다’는 산업은행법 제4조에 관한 노조 주장도 경청해야 한다. 결국 국회가 토론회나 공청회 등을 열고 여론을 수렴해 결정해야 한다.

둘째, 지역균형발전의 국가적 중요성에 비추어 금융중심지 정책을 지역 거점지들 간 상호 보완적으로 끌고 가는 것이 중요하다. 참고로 중국은 홍콩을 대외 창구로 활용하면서 상하이, 베이징, 선전, 광저우, 칭다오, 청두 등 다수의 거점지를 키워 국가 전체의 금융 역량을 키우고 있다. 한편 미국은 뉴욕, 시카고, 샌프란시스코 외에 델라웨어주를 운영하고 있고, 영국도 런던 국제금융중심지 외에 저지섬과 영국령 버진섬 등 초국경금융센터를 함께 운영하며, 일본, 독일 등 일부 유럽 국가도 복수의 금융중심지 조성에 힘쓰고 있다. 한국의 경우 국토가 작아 다수의 중심지 또는 거점지가 중복일 수 있으나, 디지털 전환 시대에 다양한 거점지를 지정하고 네트워크로 연결하여 국가 전체 금융 경쟁력 강화를 도모하는 스포크앤허브(spoke and hub) 전략을 추진할 수 있다. 예로 부산의 해양과 선박금융, 전주의 자산운용 사무수탁관리, 제주의 초국경금융 등 지역 거점지들의 특화 업무를 서울의 자산운용업으로 연결하여 자전거의 중심축(허브)과 바퀴살(스포크)처럼 협력 체계를 구축하는 방식이다.

셋째, 섬으로서 제주의 가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내 금융의 촘촘한 규제에서 한 걸음 떨어져 특별자치도로서 자율행정의 독자성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비거주자를 대상으로 금융 규제 완화를 시험하기 위해 규제샌드박스 도입을 고려할 수 있다. 이는 국내 금융의 성급한 규제 완화 부담을 덜고 규제 완화 성공 시 이를 국내 금융으로 확대 적용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닌다. 제주 초국경금융센터의 또 다른 장점은 국내 금융공기업이나 금융사 유치가 성공의 핵심 요인이 아니므로, 국내 다른 거점지와 다툴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다만 법적 기반 구현을 위해 한국의 발달한 정보통신기술 역량을 이용하도록 인프라 지원이 요구된다.

제주의 초국경금융을 포함하여 다양한 지역의 거점지 특성을 살려가는 것은 정부가 선포한 ‘지방시대’ 정책에도 부합한다. 스포크앤허브 전략이 지역 간 협력 관계 구축을 통해 국가의 총체적 금융 역량을 제고하여 금융중심지 정책의 성공에 기여할 수 있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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