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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뉴노멀-혁신] ‘염’의 전쟁

등록 2023-10-29 14:33수정 2023-10-30 02:07

염경엽 엘지 트윈스 감독이 선수들을 격려하는 모습. 연합뉴스
염경엽 엘지 트윈스 감독이 선수들을 격려하는 모습. 연합뉴스

김진화 | 연쇄창업가

1994년은 웹 대중화의 원년으로 기억된다. 공개 웹사이트가 등장하기 시작했고, ‘웹의 우드스탁’이라 칭해졌던 최초의 국제회의가 열리며 본격적인 상업화 시대를 예고했다. 알다시피 그로부터 29년간, 웹은 인류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한편 그렇게 세상이 뒤집히고도 남을 세월에도 엘지 트윈스는 단 한 차례도 우승을 차지하지 못하며 팬들을 좌절케 했다. 그리고 올해 드디어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해, 1994년 그때처럼 통합 우승을 노리고 있다.

지난해 정규리그 2위를 차지하며 대권을 넘보는 듯했다가 플레이오프에서 허무하게 무너졌던 트윈스는 감독을 교체하는 강수를 두었다. ‘우승청부사’로 영입된 이는 염경엽 감독이었다. 환영보다는 물음표가 쏟아졌다. 우승이 전무한 이력을 꼬집어, “우승 없는 우승청부사” 같은 비아냥도 들려왔다. 신생 구단 키움 히어로즈를 우승 경쟁팀으로 올려놓기는 했지만, 번번이 우승 문턱에서 좌절했다. 이후 에스케이 와이번스 시절은 그야말로 악몽이었다. 9게임 차로 우승을 목전에 뒀다가 역전을 허용했던 역대급 반전에, 이듬해 경기 중 실신하는 등 건강까지 악화해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그랬던 그가 우승청부사로 복귀한다니 마냥 환영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긴 했다.

숱한 우려를 불식시키며 트윈스는 1위에 올랐고 끝까지 그 자리를 지켜냈다. 유일하게 6할대 승률을 기록했고, 2위와 6.5 게임 차로 꽤 여유로운 독주였다. 시작은 위태로웠다. 주전 포수와 4번 타자가 자유계약으로 이적했다. 시즌 초반 선발로 점찍어 둔 투수들은 부진했고, 설상가상 주전 유격수는 부상으로 이탈했다.

염 감독은 파격적인 선수 기용으로 위기를 돌파했다. 베테랑 김민성이 포수 제외 내야 전 포지션에서 각각 100이닝 이상 출전하는 진기록을 갖게 됐고, 욕받이 대주자로 은퇴까지 고민했던 신민재는 주전 2루수로 확고히 발돋움했다. 중간계투에서도 흔들리던 이정용은 시즌 중 선발 전환이라는 모험을 감수한 끝에 구멍 난 선발 한자리를 메꾸는 환골탈태의 아이콘이 됐고, 부진했던 김윤식을 이리저리 굴리는 대신 여름 캠프를 거쳐 제 궤도에 올린 것 또한 막판 큰 힘으로 작용했다. 편견과 고정관념을 벗어던진 용인술에 팬들은 환호했다.

새로운 시도는 선수 기용에만 그치지 않았다. 염 감독이 지향한 ‘뛰는 야구’는 팬들 사이에서도 논란이었다. 도루 성공도 많았지만 도루사, 주루사 같은 반대급부 또한 급증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트윈스는 끝까지 달리는 야구를 고수했고 염 감독은 선수들에게 실패의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여론도 미묘하게 달라져 결국 뛰는 야구가 상대에게 부담을 주어 공격지표 향상과 득점 루트 다양화에 기여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 힘을 얻게 됐다.

실패는 염경엽에게 핵심 키워드다. 스스로 자신의 실패를 거론하길 꺼리지 않았고, 나아가 지난 2년간 프로야구를 떠나서 느끼고 정리한 ‘실패 노트’를 바탕으로 이제 절반의 성공에까지 이르렀다. ‘실패 콘퍼런스’나 ‘포스트모템’(postmortem) 같은 기술업계의 성찰 경영 기법을 그가 알았을 리 없겠지만, 가장 성공한 실패 활용 케이스로 남을 만하다.

부담감 때문에 초조해지고, 욕심이 생겨 한정된 선수 기용과 뻔한 방식에 매몰됐던 과거의 자신과 싸우겠다는 그의 고백은 비단 야구에만 국한되는 얘기는 아닐 것이다. 남의 실패를 비판하며 대중의 환심을 샀던 리더들이 그 전임자들과 똑같은 실패를 되풀이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남이 아닌 자신의 실패를 털어놓고 하나둘 극복해 가는 모습에 눈길이 가는 이유다. 그런 염경엽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포스트시즌에서 항상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던 그였기에 세상의 편견을 깨기엔 좋은 기회다. 마지막 시험대가 될 한국 시리즈는 다음주 화요일 잠실에서 막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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