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등에 속한 활동가들이 지난 9월8일 오전 11시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 앞에서 ‘충남 공공도서관 성평등 도서 열람제한에 대한 국가인권위 공동진정 제기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차제연 제공
[비온 뒤 무지개] 한채윤 |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활동가
근래 ‘조기성애화’란 말을 자주 접한다. 특히 성평등, 청소년성문화센터, 성소수자 등을 공격할 때 단골손님처럼 쓰인다. 2020년 한 국회의원은 여성가족부의 ‘나다움어린이책’으로 선정되었고, 해외에서 우수 성교육도서로 상까지 받은 책을 두고 “초등학생의 ‘조기성애화’ 우려”가 있다며 폐기를 요구했다. 올해 9월엔 전국학부모단체연합이란 곳에서 ‘우리 아이 성범죄자 만드는 조기성애화 교육 도구인 음란도서 퇴출하라’는 성명서를 내고 자신들이 지목한 특정 책들을 폐기하라는 압력을 여러 지역 공공도서관에 넣었다. 시대착오적인 도서 검열, 도서관 검열이 아닐 수 없지만 민원에 시달린 도서관에서 해당 책들이 정말 사라지는 일도 벌어진다.
‘조기성애화’란 무엇일까. 정확한 학술적 정의는 모른다 해도 대충 어린 나이에 성적인 존재가 된다는 뜻이라 유추되니, 특히 자녀를 둔 부모들은 이 단어를 듣는 순간 위기감과 불안을 함께 느낀다. 하지만 위험한 것을 다룰수록 정확하게 파악하고 침착하게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살펴보자. ‘성애화’란 사람이나 사물에 성적 특성을 부여하거나 지나치게 강조하는 행위를 뜻이다. 조기성애화란 아동이 이른 시기에 성적 본능에 눈을 뜬다는 의미가 아니라 아동과 청소년을 성적 대상화하는 문제를 가리킨다. 예를 들어, 성인처럼 보이도록 아동에게 하이힐이나 속옷 등을 입게 하고, 아동 모델에게 섹시한 포즈를 요구하고 광고를 만드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조기성애화는 남녀 모두에게 작동하지만 특히 소녀들에게 더 영향을 준다. 어릴 때부터 체중 조절과 화장 등 외모를 꾸며야 사랑받을 수 있다고 압박한다. 조기성애화가 청소년의 섭식 장애로 이어지는 문제를 지적하는 연구도 많다.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탐구하고 긍정하는 대신 성적 대상으로 평가받는 불안에 자존감을 잃는다. 이미 2007년 미국심리학회(APA)는 소녀와 젊은 여성에 대한 성적인 이미지가 확산하는 것이 소녀들의 자아상과 건강한 발달에 해롭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그러니 조기성애화를 방지하고 그 피해를 막으려면 아동을 성적 대상화하는 미디어를 규제하고, 청소년이 미디어가 제시하는 이미지를 비판적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조기성애화에 맞서는 것이 바로 ‘포괄적 성교육’이다. 유엔에서 전세계에 권장하는 성교육 프로그램임에도 한국에서는 되레 ‘조기성애화’ 시킨다는 이유로 공격받는다. 아동과 청소년이 다양한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에 관해 배우고, 동성애자든 이성애자든 모두 함께 어울려 갈 공동체의 이웃으로 포용하고, 사람 외부생식기의 명칭과 구조, 그 기능에 대해 정확히 아는 것이 조기성애화가 아니다. 아동과 청소년을 성적 대상으로 묘사하거나 취급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터넷, 영화, 게임, 광고 등에서 쏟아지는 성별 고정관념과 성적 편견에 맞설 힘을, 성차별과 성폭력에 휘둘리지 않을 힘을 기르는 교육이 필요할 뿐이다.
성경적 성교육을 주장하는 기독교 기반 단체와 국회의원 등이 조기성애화란 단어를 오용하고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 조기성애화를 혐오와 차별을 확산하는 도구로 사용하고 자신들의 입맛대로 교육부의 교과과정도, 성교육 프로그램도 검열한다. 왜곡과 오용에 맞서지 않으면 진짜 조기성애화가 아동을, 청소년들을, 한국 사회 모두를 괴롭힐 것이다. 이것이 지금 우리에게 닥친 위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