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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사람 곁에 머무는 사람의 가치

등록 2023-11-15 18:44수정 2023-11-16 02:39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똑똑! 한국사회] 조기현 | 작가

“일보다 사람이 힘들다.”

무슨 진리라도 되는지 항상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말이다. 돌봄노동자를 마주할 때마다 이 말을 곱씹는다. 돌봄노동은 일이 곧 사람이고, 사람이 곧 일인 노동이니까. 서비스를 매개로 돌봄노동자와 이용자로 만나지만, 결국 일대일 관계 속에서 감정을 주고받는 일이니까.

이번주 초, 경남돌봄노동자지원센터에서 다양한 돌봄노동자가 모이는 자리를 만들었다. 지금까지 장애인, 노인, 아이 등 돌봄서비스 대상자라는 경계에 따라, 따로 떨어져 이야기를 나눠왔던 것 같다. 하지만 사람을 위한 노동자라는 점에서 경계 없이 이야기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원래는 수영 강사였어요.”

그는 30대 중반 남성 요양보호사였다. 대부분 중고령층 여성인 요양보호사 직군에서 흔치 않은 청년이었다. 코로나19로 수영장이 폐쇄되면서 실직했고, 당시 어머니도 한창 아플 때였다. 실직과 어머니 돌봄이 겹쳐지며 급하게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땄다. 한 요양시설이 3주 동안 코호트 격리하는데, 3주 동안 그 안에서 숙식을 함께할 돌봄인력을 뽑는다는 소식을 듣고 지원했다. 자신에게 잘 맞고 보람 있는 일을 한다고 깨닫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스스로 매기는 가치와 달리 사회적으로 부여되고 인정받는 평가는 박하다는 점을 몸소 느낀다. 요양보호사를 한다는 말에 친한 친구는 ‘그런 일을 왜 하느냐’고 반문했고, 아들이 하는 일에 관한 얘기가 나오면 답을 피하는 어머니의 모습도 봤다. 이 일은 정녕 모두가 하고픈 일이 될 수는 없을까? 그는 답을 찾기 위해 임금 인상, 멘토링, 경력 인정과 승진 등 아이디어를 떠올려본다.

“제가 젊었을 때 아이 맡길 데가 없어서 발을 동동 구른 기억이 나요. 보육교사로도 일했는데 그때 바쁜 부모들이 늦을 때마다 죄인처럼 미안해하는 모습을 봤어요. 어린이집에 늦게까지 남은 아이들이 불안해하는 모습도요.”

아이돌보미 중년 여성은 그런 순간들 때문에 지금의 길을 선택했다고 했다. 누군가 발을 동동 구르지 않고, 일과 양육 사이에서 죄인이 되지 않고, 아이가 안정감을 느끼며 자라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늘 아이와 소풍 가는 마음으로 출근하지만, 이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세상이 모르는 것 같을 때 기운이 빠진다. 그저 아이를 맡기면 그만인 ‘일손’이 아님을 강조하고 싶다고 했다. 한 아이가 온전하게 사회구성원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손잡아 주는 일임을 세상이 알아주면 좋겠단다.

“21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어머니 장례식에 동네 거지들이 와서 막 울더라고요.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가 참 많이 베풀면서 살았구나, 싶었어요.”

장애인활동지원사로 일하는 한 중년 여성은 어머니 이야기를 했다. 베푸는 것으로 다른 사심을 채우려고 하지 않고, 베푸는 삶 그 자체를 지향하며 살자는 마음을 어머니에게 상속받았다. 그런 마음이 지금의 길을 걷게 했다. 최근엔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남성 청소년을 돌보는데, 하교 시간이면 문제가 생긴다고 했다. 학교에서 쌓인 스트레스가 폭력으로 나타난다. 차 안에서 주먹질하거나 자신에게 욕을 내뱉는다. 학교에서 벌어지는 문제를 해결해 줄 수는 없지만, 활동지원사로서 아이 마음에 벌어진 문제는 같이 해결하고 싶어서 함께 산책도 하고 노래방도 간다.

각자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에 최선을 다하지만, 결국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이기에 갈등이 없을 수 없다. 돌봄노동자와 이용자 간 갈등이 생겼을 때, 갈등을 함께 풀어나갈 기관이 있기를 바란다.

돌봄서비스 속에는 돌보려는 마음들과 돌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돌봄노동자가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다는 건 돌봄서비스 질이 좋아진다는 걸 넘어서는 건지 모른다. 사람 곁에 머무는 사람의 가치가,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온전히 존중받는 것이기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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