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여름 모자 아래 손수건을 덧쓴 한 노인이 폐지가 가득한 수레를 끌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말고] 김유빈 | ㈔지역공공정책플랫폼광주로 이사
최근 서문을 읽다 마음이 무너져 뒷장으로 넘기지 못한 책이 있다. ‘우리는 가난을 어떻게 외면해왔는가’(조문영, 2019)의 서문은 서울 국일고시원 화재 참사 희생자들에게 보내는 송경동 시인의 애도시로 마무리된다. “고시생이 아닌 만년 고시생이 되어/ 이 세상의 모든 고난과 눈물과 아픔을 밑줄 그으며 읽어야 하지/ 이 세상의 모든 가난과 차별과 멸시와 모멸을 견뎌야 하지/ 부디 굶어 죽지 말고 얼어 죽지 말고 타 죽지 말고 목매달지 말고 탄불을 켜지 말고/ 부디 버려진 인간들에게도 건투가 있기를.”
선진국 반열에 진입한 나라에서 빈곤은 멀리 떨어진 의제처럼 보이기도 한다. 당장 포털사이트에서 빈곤을 검색했을 때 가난한 나라들의 비쩍 마른 아동들 사진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빈곤은 우리 주변 가까이에 있다. 길거리에서 주변을 관찰하면 늘 만나는 빈곤은 노인 빈곤이다. 특히 우리 사무실 근처는 광주역 근처 원도심에 있는데 신도심에서는 보기 어려운 고물상들이 많이 있고 재활용품을 팔러 오시는 어르신들을 자주 본다. 날씨가 어떻든 어르신들은 손수레 가득 재활용품을 싣고 아주 느리고 위태롭게 걸어간다. 2022년 한국노인인력개발원에서 발간한 ‘폐지수집 노인의 현황과 실태’를 보면 이들 어르신들의 1인 연간 시장가치(연간수입)는 2020년 1,135,640원에 불과하다.
올 여름 광주에서는 폭염 특보에 폐지를 줍던 어르신이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발견 당시 그의 체온은 41.5℃에 가까웠다. 폐지수집 어르신들에게 지원금을 지급하자는 제안이 있었고 광주시는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으나 이후 그들을 지원하는 조례 등의 법적 근거가 부족하고 정책적 준비가 돼 있지 않음을 확인할 뿐이었다. 그뿐 아니다. 도시재생·재개발에 고물상이 사라지거나 도시 외곽으로 이전했을 때 자신의 업장도 업장이지만 어르신들의 생계에도 어려움이 생긴다며 답답해하는 지역 고물상 상인의 인터뷰 기사에서도 이 사안에 대한 어떤 대안을 찾을 수 없었다.
앞서 실태조사를 보면 광주 지역 폐지수집 어르신 수는 577명으로 추정된다. 물론 지역에서도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사회적기업 ‘끌림’이 폐지 수거용 경량 손수레를 개발했고 손수레에 광고를 붙여 광고료도 지급했다. 지자체 중 첫 시도였다. 이런 신선한 일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고 또 구조적인 접근도 해야 한다고 본다. 노인 빈곤을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은 결국 사회적 약자를 바라보는 담론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덧붙여, 실태조사에서 폐지수집 노인 수를 229개 기초지자체에 요청했을 때 약 180곳만 제공하였다고 한다. 광주 지역 사례만 소개했지만 폐지수집 노인, 노인 빈곤의 문제는 비단 광주의 문제만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 차원에서 실태를 파악할 수 있는 공통의 장치를 만들어 일괄적으로 지속해서 수행하게 하는 것도 필요하다.
거리에서 폐지수집 어르신을 보며 안타깝다거나 동정의 마음을 가지고 이 부족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들을 동정할 자격이 없으며 우리는 각자 자신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내고 있다고 믿는다. 다만 그들이 끌고 가는 수북이 쌓인 재활용품들이 그들 삶의 무게 같다고 느꼈을 때나 너무 더운 여름날 카페에 들어가면서 땡볕에 폐지를 밟는 어르신을 지나쳤을 때에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에 대한 무력감과 늙음에 대한 존중이 없는 사회에 대해 분노가 들었다. 이 글을 쓰며 지난 9월 지역에서 폐지수집 80대 어르신이 교통사고로 사망한 소식을 접했다. 부디 그들의 죽음에 우리 사회가 익숙해지지 않기를 바란다. 그들과 내가 함께 건투하기 위한 일을 찾아보고 행동해야겠다. 부디 버려진 인간들에게도 건투가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