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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부처 자율성 높인 총액예산제 시행…중기재정계획도 세워

등록 2023-11-20 13:51수정 2023-11-21 02:38

[길을 찾아서] 참여정부 천일야화 41화 예산개혁 2

부처에서 사업별 예산 요청하고
예산당국 주도하는 ‘보텀업’ 대신
분야별 지출한도 등 정해주면
부처에서 예산 짜는 ‘톱다운’ 방식
총액예산제 첫 시행 성공적 안착

3년 동안 경제예산 7~8%p 낮추고
대신 복지예산은 7~8%p 높이는
실질적 ‘중기재정계획’도 첫 시행

GDP의 2.8%였던 국방예산
“임기 말엔 3%로” 제안했으나
노 대통령 “3.2%로 높여야” 반박
2004년 2월27일 노무현 대통령이 참여정부 1주년 국제세미나에 참석,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노 대통령, 로런스 클라인 펜실베니아대 석좌교수, 호르스트 쾰러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밥 호크 전 호주 총리, 도널드 존스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사무총장. 노무현사료관 제공
2004년 2월27일 노무현 대통령이 참여정부 1주년 국제세미나에 참석,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노 대통령, 로런스 클라인 펜실베니아대 석좌교수, 호르스트 쾰러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밥 호크 전 호주 총리, 도널드 존스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사무총장. 노무현사료관 제공

2004년 2월27일(금) 9시 반 참여정부 1주년 기념 심포지엄이 열렸다(신라호텔). 노무현 대통령이 기조연설을 했고, 노동운동가 출신으로서 오스트레일리아 총리를 세차례 역임했던 밥 호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사무총장 도널드 존스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미국 경제학자 로런스 클라인, 국제통화기금(IMF) 쾰러 총재가 토론자로 단상에 올랐다. 호크 전 총리는 강한 어조로 미국을 비난하면서 미국이 팔레스타인과 북한을 지원해야 한다고 매우 진보적 주장을 했다. 또 부국들이 농업개방을 안 해서 빈국들에 고통을 준다고 강력 비판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자칫 오해받을 수 있는 어려운 논쟁을 아슬아슬하게 피해 답변했다.

2004년 2월27일 노무현 대통령이 신라호텔에서 열린 참여정부 1주년 국제세미나에서 참석자들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왼쪽부터 호르스트 쾰러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노 대통령, 밥 호크 전 호주 총리, 도널드 존스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사무총장. 노무현사료관 제공
2004년 2월27일 노무현 대통령이 신라호텔에서 열린 참여정부 1주년 국제세미나에서 참석자들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왼쪽부터 호르스트 쾰러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노 대통령, 밥 호크 전 호주 총리, 도널드 존스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사무총장. 노무현사료관 제공

옆자리에 앉은 변양균 기획예산처 차관이 나에게 총액예산제도 이야기를 했다. 변 차관은 자신의 예일대 석사논문과 서강대 박사논문이 총액예산제를 다루었는데, 박봉흠, 김병일 장관을 설득한 끝에 드디어 총액예산제가 시행된다고 말했다. 변 차관은 총액예산제도에 관한 책을 쓰고 싶은데 공무원이 이런 책을 써도 되는지 조금 신경이 쓰인다면서 노 대통령 의향을 물어봐 달라고 했다. 나는 “책 쓰는 거야 좋은 일이니 얼마든지 쓰세요”라고 권했다.

톱다운(top-down) 예산제로도 불리는 총액예산제는 국가예산의 총액과 부처별, 분야별 지출한도를 예산당국이 먼저 정하면 각 부처가 주어진 한도 안에서 사업별 예산을 편성하고, 최종 조정을 거쳐 정부 예산안을 확정하는 방식이다. 종래 해오던 보텀업(bottom-up)예산제에서는 각 부처가 개별 사업별 예산을 요구하면 예산당국과 해당 부처가 협의해 편성된 개별 예산들이 모여 부처별 예산과 전체 예산이 확정된다. 이 방식은 각 부처가 사업의 우선순위나 국민적 수요를 고려하지 않고 밑져봐야 본전이니 일단 신청하고 보자는 소위 확보주의가 만연하게 되어 국가적 자원이 낭비되는 단점이 있다. 그에 반해 예산편성 순서가 반대인 총액예산제도는 각 부처에서 꼭 필요한 사업을 국가적 우선순위에 따라 실행에 옮길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2004년 6월16일(수) 오후 3시 예산 및 중기재정 회의에 기획예산처에서 김병일 장관, 정해방 재정기획실장, 장병완 예산실장이 참석했고, 청와대에서 조윤제 경제보좌관, 김영주 경제수석과 내가 참석했다(집현실). 사상 최초로 내년 총액예산제를 시행하는데 전체 부처의 3/4이 주어진 한도 내에서 예산을 편성해 성공적이라고 노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이어서 2005~2008년 중기재정계획도 보고했다. 이 역시 사상 최초였다. 전두환 정부 때인 1982~86년, 국민의정부 때인 1999~2002년 중기재정계획이 있기는 했지만, 두번 모두 1년 단위 예산과 연계되지 않아 의미는 제한적이었다. 1년 단위 예산과 연계된 실질적 의미를 갖는 중기재정계획은 참여정부가 처음 세웠다. 그 내용은 3년 동안 경제사업 예산을 7~8%포인트 줄이고 복지예산을 7~8%포인트 늘리는 것이 핵심이었다. 나는 “선진국과 비교할 때 한국 예산구조는 경제예산이 과다하고 복지예산은 과소한 특징이 있다”며 지극히 옳은 방향이라고 발언했다. 그래도 여전히 복지예산은 OECD 평균에 크게 미달하니 국민에게 중기재정계획을 발표할 때 OECD와의 비교를 포함할 것을 권고했다.

국방예산을 두고서는 약간의 논쟁이 있었다. 나는 국방예산을 작년에 약속한 대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현행 2.8%에서 참여정부 임기 말 3%까지만 늘리고 북한을 인도적으로 돕는 예산을 좀 더 쓴다면 더 효과적인 국방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국방은 북한 관계만 있는 게 아니다. 일본, 중국의 막강한 군사력 사이에서 한국이 영향력을 행사하려면 국방예산 증가가 필요하다”며 3.2%를 주장해 약간의 설전이 오갔다.

국방예산을 제외하고는 전체적으로 합의가 잘 됐다. 회의를 마치고 현관에 나와 김병일 장관, 정해방 실장, 김성진 비서관과 함께 기획예산처의 숙원이 해결된 것을 자축했다. 김성진 비서관(뒤에 중소기업청장, 해양수산부 장관)은 자신이 경제기획원 사무관으로 일하던 젊은 시절 중기재정계획을 작성했었는데 드디어 오늘 빛을 보게 되니 감격스럽다고 말했다. 김병일 장관도 “이게 실현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큰 성과다”라며 기뻐했다.

6월19일(토) 9시~1시 재정개혁 국무위원 토론회(과천 중앙공무원교육원). 한국 최초로 도입된 총액예산제와 중기재정계획을 주제로 장관 토론회가 열렸다. 각 부처 장관들이 부처 이해관계를 뛰어넘어 나라를 위한 발전적 아이디어를 많이 제시했다. 기획예산처 정해방 재정기획실장이 총액예산제를 설명하면서 “요즘 기획예산처 주차장이 텅 비었다”는 함축적 표현으로 새 제도의 의미와 효과를 설명했다. 이희범 산자부 장관이 “그 대신 정부 과천청사 주차장이 꽉 찬다”고 받았다. 각 부처 공무원 등이 예산을 따내기 위해 기획예산처에 몰려들던 게 사라졌다는 뜻이다. 정세현 통일부 장관이 남북협력기금 규모를 3천억원에서 6천억원으로 증액해달라고 한 것 말고는 부처에서 요구 사항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자 노 대통령이 “별 논쟁이 없으니 회의를 단축하자”고 말했다. 장관들이 모두 좋아했고 특히 강금실 법무부 장관은 기쁜 표정이 역력했다.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함께 먹고 바로 해산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5년 4월30일 국가재원배분회의 첫날 인사말에서 “오늘 우리가 하는 것은 분권과 자율에 근거한 새로운 제도를 도입해놓고 이를 정착시켜나가기 위해서 토론하는 것”이라며 “첫째로 각 부처에서 가급적이면 주어진 예산을 자율적으로 결정하고 쓰게 한다”고 설명했다. 국무위원 전원이 참석한 가운데 1박2일간 합숙토론회로 진행된 국가재원배분회의는 주요 정책과제에 대한 추진방향을 논의하고 장기적인 국가자원 배분의 우선순위와 핵심원칙을 정한, 정부 수립 이후 처음 있는 행사였다. 노무현사료관 제공
노무현 대통령은 2005년 4월30일 국가재원배분회의 첫날 인사말에서 “오늘 우리가 하는 것은 분권과 자율에 근거한 새로운 제도를 도입해놓고 이를 정착시켜나가기 위해서 토론하는 것”이라며 “첫째로 각 부처에서 가급적이면 주어진 예산을 자율적으로 결정하고 쓰게 한다”고 설명했다. 국무위원 전원이 참석한 가운데 1박2일간 합숙토론회로 진행된 국가재원배분회의는 주요 정책과제에 대한 추진방향을 논의하고 장기적인 국가자원 배분의 우선순위와 핵심원칙을 정한, 정부 수립 이후 처음 있는 행사였다. 노무현사료관 제공

해가 바뀌어 2005년 4월30일(토) 9시반부터 1박2일 일정으로 사상 최초 재원배분 장관회의가 열렸다(과천 중앙공무원교육원). 첫머리 총론 부분에서 나는 발언권을 얻어 세가지를 이야기했다. “첫째, 한국은 경제예산이 과다하고 복지예산이 과소하므로 전자를 줄이고 후자를 늘여야 한다. 둘째, 명목적으로는 복지지출 증가율이 연 9.3%로 되어 있지만 대개 (고령화로 인한 연금지출 확대 같은) 자연증가분이다. 이것을 빼고 나면 취약계층을 돕는 순수 복지지출 증가분은 크지 않다. 이래서야 어찌 동반성장이 가능하겠는가. 셋째, 한국은 유별나게 경제성장에 집착하는 나라인데, 사회지출은 성장과 상충하는 게 아니다. 교육, 의료 등 사회지출의 성장촉진 효과는 매우 크다.”

둘째 날도 종일 토론이 이어졌다. 처음 해보는 회의라서 그런지 중구난방, 좀처럼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회의 말미에 김근태 복지부 장관이 복지지출 중요성을 강조하기에 내가 바로 이어 지지 발언을 했다. “어제, 오늘 이틀간 토론을 했지만 기본수요, 성장, 안전을 방향으로 정한 것 말고는 합의가 없다. 그거야 원래 국가의 할 일 아닌가. 수십년 동안 잘못된 경제우선주의, 복지 경시 풍조를 타파해야 하는데, 그런 방향으로 진전이 없다. 이래서야 백년하청이다.” 회의를 마치고 김근태 장관이 나한테 오더니 “이 위원장이 나하고 생각이 제일 비슷한 거 같아”라고 하기에 내가 이렇게 답했다. “장기적으로 한국이 OECD 평균 복지수준에 도달한다 해본들 뭐합니까. 케인스가 말했듯이 장기에는 우리는 다 죽고 없는데요.”

이틀간 회의 결과는 나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한국에서 오랫동안 맹위를 떨쳐온 성장지상주의, 경제우선주의에 일침을 가한 것이 성과라면 성과라고나 할까. 그리고 재원배분 장관회의가 그 뒤 연례행사로 자리 잡으며 지금까지 예산편성에서 불리한 위치에 서 있던 사회 부처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도 성과였다. 중기재정계획, 총액예산제, 재원배분 장관회의는 참여정부의 3대 예산개혁이라 할만한 큰 변화로서 그 뒤 보수정권에서도 계승하여 오늘날까지 유지되고 있다.

필자 이정우: 1950년 대구에서 나고 자랐다. 1974년 서울대 경제학과 학·석사를 마친 뒤 1983년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7~2015년 경북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한 뒤 명예교수를 맡고 있다. 2003~05년 참여정부 초대 정책실장, 정책기획위원장 겸 정책특보를 지냈다. 공정하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고자 끊임없이 공부하는 경제학자를 자임하고 있다. ‘참여정부 천일야화’ 제목은 그의 친필이다. opinion@hani.co.kr
필자 이정우: 1950년 대구에서 나고 자랐다. 1974년 서울대 경제학과 학·석사를 마친 뒤 1983년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7~2015년 경북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한 뒤 명예교수를 맡고 있다. 2003~05년 참여정부 초대 정책실장, 정책기획위원장 겸 정책특보를 지냈다. 공정하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고자 끊임없이 공부하는 경제학자를 자임하고 있다. ‘참여정부 천일야화’ 제목은 그의 친필이다. opini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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