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사람 살리는 의사’ 뽑는 정원 논의

등록 2023-11-21 18:44수정 2023-11-22 02:43

정부가 지난달 19일 의대 정원 확대를 비롯한 의료 인력 확충 등을 담은 필수의료 혁신 전략을 발표했다. 사진은 충북대병원의 모습. 연합뉴스
정부가 지난달 19일 의대 정원 확대를 비롯한 의료 인력 확충 등을 담은 필수의료 혁신 전략을 발표했다. 사진은 충북대병원의 모습. 연합뉴스

[한겨레 프리즘] 박현정 | 인구복지팀장

돌이 채 안 된 첫아이가 한시간 간격으로 구토를 이어가던 밤, 아이 엄마인 대학 동기는 집에서 가장 가까운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로 내달렸다. 자정을 넘긴 시간에도 북적이는 응급실 한쪽에서 한참을 기다려 의사 진료를 받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아이가 왜 아픈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듣지 못한 채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친절하기 어려운 듯한 응급실 의사를 기다리는 것보단 아침 일찍 동네 소아과에 가는 게 낫겠다 싶었다. 다음날 알게 된 병명은 장염. 아이들에겐 흔한 병치레란 걸 그땐 몰랐다. ‘초보 부모’를 무서움과 혼란스러움에 빠뜨리는 증상에 관해 잘 설명해주는 의사 선생님이 있으면 좋겠다고, 그는 말했다. 하지만 동네 의원에서도 2~3분이면 진료는 끝난다.

올해 봄 듣게 된 친구 이야기가 떠오른 건, 최근 지역·필수의료 붕괴 위기를 들여다보면서다. 소아응급실에서 환자(보호자)와 의사 사이 거리는 멀기만 했다. 의사들은 경증 환자가 너무 몰린다고 호소했다. 저출생 추세와 코로나 유행 속에서 소아청소년과 전공의가 줄어들어, 온종일 어린 환자와 보호자를 응대하다 기력을 소진하는 일상이 반복된다고 했다. 사실은 경증인데 스스로 중증이라 여기는 이들이 많다고도 했다.

한겨레 인구복지팀은 전남 완도군 유일의 병원을 비롯해 강원 지방의료원과 상급종합병원, 경북·전남 국립대병원 의사 등 10여명을 수소문해 심층인터뷰를 했다. 서울에 앉아 지역·필수의료 현실을 짐작하는 건 어려웠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농어촌보단 도시로, 비수도권보단 서울로, 비급여 진료가 적은 과목보단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과목으로, 힘은 덜 들고 기대 수익이 많은 분야로 향하고 있었다. 의사를 찾아 먼 거리를 이동할 여력이 없는 지역 취약층 의료공백은 그만큼 커진다. 인구구조 변화와 지역 격차, 시장논리를 따르는 병원과 인력 정책, 지역 경계를 넘어 병의원 문턱을 쉽게 넘을 순 있지만 ‘3분 진료’ 벽을 깨기는 힘든 구조 같은 무거운 과제들이 지역·필수의료 붕괴 위기를 가중하고 있었다.

대한의사협회는 건강보험 수가 인상 등 충분한 보상과 의료사고 면책범위 확대 등으로 지역·필수의료 위기를 넘길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정부 지원이나 건보 재정 투입 확대가 문제를 어느 정도 보완할 수야 있겠지만, 현재 구조를 그대로 둔 채 지속가능한 해법은 아니라는 진단이 우세하다. 특히 한국의 경상의료비(전 국민이 1년간 보건의료 서비스에 지출한 총액)는 2000년 25조원에서 2022년 209조원으로 급증했다. 2000년 4%에 못 미치던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상의료비는 지난해 9.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9.3%를 사상 처음으로 넘어섰다는 분석도 있다.(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부 교수팀) 앞으로 의료비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쓸진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대목이다. 이런 상황에서 환자와 의사 사이 불신을 누그러뜨리지 못하면 의료사고 책임을 덜어달라는 요구도 지지를 얻긴 어렵다.

환자와 의사 사이 간극이 그뿐일까. 의대 정원 확대에 전국 20~60대 1003명 중 67.8%가 찬성했지만(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원이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조사), 서울시의사회 회원 7972명 중 77%는 반대했단다.

의대 입학이 ‘생존 티켓’으로 여겨지는 승자독식 사회에서, 의대 정원 확대가 의사와 환자 간 거리를 좁혀 더 나은 의료구조로 나아가는 전환점이 될 수 있을까. 한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지방엔 사람 살리는 의사가 오지 않아요. 이게 현실입니다. 이런 일을 하지 않는 의사들은 이런 문제를 알 수가 없어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의사는 누구인지, 정원을 늘려 뽑은 의대생을 어떻게 양성할지, 의사 부족을 호소하는 지역 병의원들이 환자 증상에 따라 역할을 나눠 협력하는 구조를 어떻게 현실화할지 종합적 처방을 고민해야 하는 까닭이다.

saram@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교육은 없고 ‘시험’만 남은 로스쿨 [홍성수 칼럼] 1.

교육은 없고 ‘시험’만 남은 로스쿨 [홍성수 칼럼]

[사설] 서울시청 앞 역주행 사고, 원인 밝혀 시민 불안 해소해야 2.

[사설] 서울시청 앞 역주행 사고, 원인 밝혀 시민 불안 해소해야

[김누리 칼럼] 교권을 넘어 정치적 시민권으로 3.

[김누리 칼럼] 교권을 넘어 정치적 시민권으로

[사설] 대통령이 바뀌지 않으면 정무장관 신설이 무슨 소용인가 4.

[사설] 대통령이 바뀌지 않으면 정무장관 신설이 무슨 소용인가

거위 여러분, 깃털 뽑힐 준비됐나요 [아침햇발] 5.

거위 여러분, 깃털 뽑힐 준비됐나요 [아침햇발]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