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력 있는 중소 소프트웨어 업체가 대기업을 거치지 않고 직접 일감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대폭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2013년 11월26일, 한 경제지 기사의 내용이다. 그해 공공 소프트웨어 시장의 대기업 참여 제한 정책을 도입한 미래창조과학부가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을 추가 개정한다는 소식을 다룬 이 기사의 제목은 ‘중소 소프트웨어(SW) 업체 하도급 족쇄푼다’였다.
10년 만인 2023년 11월26일, 초유의 ‘행정망 먹통’ 사태가 벌어지자 또 다른 경제지는 이런 제목의 사설을 썼다. “행정망 네번째 먹통…대기업 규제 족쇄 풀고 과감히 투자하라”. 공공 소프트웨어 사업에 대기업을 배제한 것은 잘못이며 중소기업보다 더 나은 기술과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면 대기업의 참여를 막을 이유가 없다는 논리였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하고, 미래창조과학부도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 바뀌었다. ‘족쇄’의 의미도 변했다. 공공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10년 전 ‘중소기업의 하도급 족쇄’라 불리던 현상을 막기 위해 도입된 제도가 이제는 ‘대기업의 족쇄’라 불리고 있다.
공공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대기업의 참여를 제한하는 정책은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을 개정해 2013년 1월1일부터 도입됐다. 당시 정부는 대기업의 독과점을 막고 중소기업과 상생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자산 총액 합계가 10조원 이상인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속하는 대기업에 대해 사업 금액과 관계없이 입찰 참여를 제한했다. 국방·외교·전력 등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사업 중 대기업이 참여할 수밖에 없다고 인정되는 사업에만 예외를 뒀다.
정책 도입 결과, 공공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중소기업이 주 사업자가 된 경우가 2010년 19%에서 2022년 62.5%까지 크게 증가했다. 참여 기업 수도 2008년 1334개 수준에서 2020년 3936개로 3배가량 늘었다. 선수들이 다양해진 것이다. 하지만 시장에서 ‘대기업 족쇄를 풀어달라’는 요구가 빗발치는데다 ‘행정망 먹통’ 불똥까지 튀어, 과기정통부의 ‘개선안’은 곧 나올 조짐이다. 지난 6월 토론회에서 과기정통부가 밝힌 기본 입장은 “소프트웨어 산업 발전에 걸림돌로 작용한 대기업 구축(SI) 업계의 폐쇄적 시장 구조와 하도급 관행이 여전한 상황에서 이 제도의 전면적인 폐지는 곤란하다”였지만 말이다.
임지선 경제산업부 기자
sun21@hani.co.kr